삶에서 행복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by 혜빈

예전 학창 시절에 봤던 국어 교과서에는 한 연극의 대본이 쓰여있었다. 오래 전에 봤던 대본이라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순간은 선물받은 것이니 소중하게 쓰고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내용만큼은 분명히 기억난다.


되돌아보면 분명히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선물받은 것이 많다. 나의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도 물론 있지만 주변 사람과 환경과 상황의 도움도 있다. 때때로 나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그것을 '내가 잘나서'나 '원래 내가 그래서'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나는 순간의 행복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되기 때문에 매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겠다고, 짧은 시간마다 내가 얻을 수 있는 행복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나의 삶의 방향이었다.


내가 행복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먹는 순간 행복하다는 이유로 밀가루로 만든 음식, 특히 면 요리를 많이 좋아했고 그만큼 많이 먹어왔다. 어쩌다 스트레스를 받는 날에는 매운 엽떡에 우동사리와 햄사리를 왕창 추가해서 배터지게 먹어야 했다. 식후로는 카페에 가서 차가운 스무디를 먹어줘야 했다.


그렇게 먹고 싶은대로 먹으면서 살던 어느 날, 갑자기 누가 실로 배를 째는 것 같은 아픔이 찾아왔다. 이 때쯤이면 정신을 차려야 했는데, 원래도 장염을 1년에 2번 앓으면서 살아왔던 나였기 때문에 '아 그냥 오늘 내일 포카리 먹고 약 먹으면 금방 낫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병원 진료를 받고 약을 먹어도 장염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서야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전에 갔던 병원에 다시 가서 약이 안 듣는다고 이야기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약이 안 들면 큰 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으셔야겠는데요?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뢰서를 제가 써줄게요."


의뢰서를 받고 가장 가까운 큰 병원으로 가서 한참 기다리고 진료를 받았다. 큰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입원을 하면서 정밀하게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통 내가 앓아왔던 장염은 동네 병원 선에서 끝나왔었는데, 이 정도쯤 되니 정말 장염을 뛰어넘는 큰 병에 걸린건 아닌지 무서워졌다. 진료 후에 바로 입원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수중에 핸드폰과 신용카드 한 장만 있는 채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병실에 들어갔다. 환의로 갈아입고 바로 정밀 검사를 시작했다. 검사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많은 피를 뽑아본건 처음이었다. 소변검사와 대변검사, 엑스레이와 CT 촬영까지 마친 결과 다행히 큰 병은 아니고 장염이 맞는 것으로 결론났다. 대신에 염증 수치가 높아서 하루 반은 링거를 맞으면서 물도 먹지 않고 금식해야 했다.


불과 3시간 전만 해도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고 병실에 누워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지도 않았다. 거기다가 금식이라니,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아니나다를까 첫날부터 몽쉘이랑 뿌링클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병실 사람들이 병원 밥을 먹는 와중에도 나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내가 나의 행복을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나의 몸과 건강을 함부로 대하고 말았구나' 생각한 그날 밤, 나는 후회되는 마음에 남몰래 숨죽여 울었다.


지금은 퇴원을 하고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고 있다. 일반식을 먹어도 속이 아프지 않아 그 동안 먹고 싶었던 여러 음식들을 먹고 있다. 입원 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큰 일만 안당한다면 앞으로 최소 50년은 함께 살아갈 내 몸을 더 아껴주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가야겠다는 것이다. 입원으로 망가진 루틴을 원래대로 돌리고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이다.


나는 여전히 행복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이상 순간의 행복만을 바라보면서 살지는 않기로 했다. 그랬다가는 미래에 존재할 행복한 순간을 내 손으로 지우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오래오래 가져가기로,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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