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발전하는 모델
모방과 연습은 기존의 것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여기까지만 잘해도 살아가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아니 잘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서 멈추면 안된다. 그것은 마치 멋진 말을 목장에서만 타거나 스포츠카로 시내 주행만 하는 것, 훌륭한 요리솜씨로 혼자만 즐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처럼 아까운 일이 또 있겠는가.
창조란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한다. 완전히 다른 것은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교의 기준을 적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조적인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디에서는 그곳의 논리에 따라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해당 논리에 함몰되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아니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는 관점을 바꿔서 바라보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한 번에 다 바꾸려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조금씩 시도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 힘으로 안되는 것은 타인의 힘을 빌려 할 수도 있다. 지금 단계에서는 할 수 있는 데 까지만 하고,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도 있다. 뭐든 할 수 있는 것들은 널려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사회 어디서나 정치는 존재한다. 국회의원만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알력싸움, 주도권싸움, 편가르기 등 우리 주변에 늘 일어나는 세력싸움도 그렇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무엇이 이득이고, 무엇이 해로운가에 따라 편이 갈린다. 그리고 그 진영의 목소리를 드높인다.
그러나 그 논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창조적으로 상대편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같이 하기도 하며, 같은 편도 경쟁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람들간의 관계도 그렇다. 위계질서 구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환형구조, 그래프구조, 눈결정구조 등 다양한 구조가 있다. 어느 것이 최적인지는 그때그때 상황따라 다르다.
요즘 경제분야는 누구보다 창의적인 시도가 많아졌다. 기술의 합종연횡으로 다양한 기술들이 탄생하고 있다.
만화콘텐츠를 인터넷에 적합하게 하여 성공한 웹툰, 사람들간의 느슨한 연결 속에서 관계를 유지케하는 페이스북, 중첩다중전송, 지향성안테나, 스몰셀 등을 통한 저전력 대용량 5G 이동통신, 빅데이터, 인공지능, 전기자동차로 구현하는 자율주행자동차, 문자메시지를 대체하고,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는 카카오톡, 유수의 대학 강의를 온라인에서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MOOC 등 새로운 게임체인저들이 등장하고 있다.
사회는 어떠한가. 위의 기술들이 가능하게 했던 수많은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냄으로써 인류발전에 크게 기여를 했다. 끊임없는 진화, 그것이 연속성을 뛰어넘더라도 발전의 한 획을 그은 분들 덕택에 우리는 과학의 혜택을 받고 살아간다.
비단 과학 뿐만이랴. 과학에 대비되는 도학에 경우를 보자. 우리가 성현으로, 종교의 지도자로, 메시아로 모시고 있는 많은 분들 또한 인류가 걸어가야 할 새로운 모델을 만든 분들이다. 공자, 노자, 예수 그리스도, 고타마 싯다르타, 마호메트, 소태산 박중빈 등 실로 많은 선지자들이 제시한 모델을 보라. 우리는 그분들의 바램의 천분의 일, 만분의 일만이라도 실천하면 살기좋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
문화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이 있다. 세상에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음악가와 미술가들은 창조력의 표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처럼 나만 알고, 나만 잘 살기를 벗어나 우리는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해 모델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우리 후손들은 그 모델을 보고 더욱 더 발전한다. 이것이 인류가 발전하는 모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