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소설은 사람에 대해서 말한다. 소설은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소설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는 말은 우정, 사랑 정도가 있겠지만 모든 인간관계는 그런 명사만으로 정의될 수 없다. 그건 친한 관계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니, 가장 친밀한 관계는 어떤 감정의 단어들로도 표현할 수 있다. 사랑, 동정, 증오, 미움, 후회, 분노. 마음이라 부르는 모든 게 뒤섞인 채로 다가온다. 나의 아버지, 나의 자매, 나의 베프보다는 멀고 아무도 아닌 사람보다는 가까운 그런 관계. 그러니까 가깝다는 말로 형용하기는 어려운데 확실히 멀진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어떨까. 처음에는 단편적인 인상만 남아있던 상대에 대해 점차 입체적인 판단을 쌓아가는 상황. 우리는 그 순간 한 사람의 인생이 다가오는 것을 본다.
김금희의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그 순간을 보여준다. 연락처의 번호로, 명함의 이름, 간접적 관계로만 기억되던 한 사람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과정 말이다. 소설집의 서두를 장식하는 <체스의 모든 것>에서 '나'는 선배와 국화의 연결고리인 체스를, 그리고 나를 그린다. 국화와 선배의 관계는 체스였지만 체스가 아닌, '결국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따질 필요도 없는 모든 것'이었다. 김금희의 시선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은 <문상>이다. 송은 부음을 듣고 재단이 지원하는 연극을 이끄는 희극배우를 만나러 대구로 내려간다. 일로서 맺어진 이 관계에서 벗어나 희극 배우는 송을 대구 이곳저곳을 이끌고 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송형'은 그로부터 한 때 사랑했던 양주임의 유학 이야기를 듣고 조모상을 치렀던 시간들을 기억해낸다. 오랜만에 송은 양에게 연락해 공허하고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었고 생각보다 무르지도 달지도 않은 밤을 씹어 삼켰다. 반나절 남짓한 방문, 타의 가득한 여행과 대화로부터 송은 자신을 바깥에서 바라봤다.
나의 것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과 마주하는 일은 결국 또 다른 나와 그리고 세상과 새롭게 마주하는 일이 된다. 설령 그 사람이 결국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더라도 말이다. '윤아'는 현경의 첫사랑을 마주하고 그렇게 나쁠 것도 좋을 것도 비극도 희극도 없는 얼굴로 노래하는, 그냥 흔한 어느 친구의 류라고 평가한다. 그런 류에게서부터도 그녀는 『천상의 만남』이라는 잡지의 한 구절, 신은 언제나 문밖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떠올린다.
작가의 말에서 김금희는 본인이 아주 오랫동안 마음이 상하는 일을 두려워하며 물러서지 않고 모든 상태를 기록하려 노력했다는 점을 밝힌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붙드는 일, 삶에서 우리가 마음이 상해가며 할 일은 오직 그뿐인 것이다.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기억을 곱씹는 과정 속에서 나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는 도시를, 정해진 루트를, 선배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거리를 열심히 계산하면서 달렸다. -p. 36, <체스의 모든 것>
나는 그런 권리를 요구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경과 윤은 이 도시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태에 알맞는 옳고 당연한 매뉴얼들을 자연스럽게 갖추고 있었다. 윤은 내가 마음이 약해 그렇다고 했지만 나는 내심으로 계급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돈을 가진다는 건 세련되어진다는 것이고 세상의 많은 일들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라는 생각. 하지만 그런 용이한 툴을 가진 현경은 왜 저렇게 무기력하고 오히려 분별이 필요 없는 단순하고 경직된 표정으로 사는 걸까. 그것은 행복일까. 물론 현경의 조건을 생각해보면 걱정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지만. - p. 231~2, <누구 친구의 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