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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촌 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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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VN Solo Dec 16. 2019

넷플릭스의 집중력

이촌, 향도 (6)



 넷플릭스 이후 영상에 집중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이 줄었다. 특히 혼자라면 영화를 끝까지 다 볼 수가 없다. 친구나 지인과 함께 보는 게 가장 영화에 오래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귀찮아졌다. 내가 영화를 보면 된 거지 왜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보기까지 해야 하나. 어차피 충분히 힘든 세상인데.
 내 집중력이 줄어든 건 미드 탓이다. 짧으면 20분, 길어야 50분 정도인 드라마. 그 안에 하나의 에피소드가 완결된다. 특히 코미디 류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나에게 30분은 점점 더 귀 기울여 볼 수 있는 시간의 한계가 되었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볼 땐 그러지 않았는데, 이젠 한국 드라마 역시 적당히 끊어 본다.
 올 하반기엔 신작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 영화관에 갈 일이 없었다. 《기생충》과 《조커》 이후로 본 게 없을 정도였다. 혼자 가기엔 앞서 말했듯이 귀찮았다. 넷플릭스에 《아이리시 맨》과 《결혼 이야기》가 열렸다는 알람이 떴고, 주변에서 두 영화를 칭찬하는 말들이 나오니 오랜만에 볼까 싶었다. 그렇지만 《아이리시 맨》은 무려 3시간 20분짜리 영화. 나는 그걸 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미루기를 일주일, 맥주를 마시며 미드를 보다가 문득 《결혼 이야기》를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틀었다. 노아 바움백이나 스칼렛 요한슨 보다는 아담 드라이버 때문이었다. 영화의 초반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또 '브로드웨이', '할리우드'. 이 둘과 기존 콘텐츠 없이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미국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는 한국 영화가 최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말했지만 영화는 좋았다. 이혼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부의 심리 묘사, 제도의 불합리성, 결국 함께 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기까지 물 흐르는 듯이 자연스러웠고 그 물 맛 역시 좋았다.
 《결혼 이야기》를 보면서 한 번 밖에 멈추지 않았고 자신감을 얻어 다음 날, 《아이리시 맨》에 도전했다. 이건 확실히 힘들었다. 여러 번 끊어 봤다. 프랭크가 지미 호파의 히트맨이 되기 까지, 그리고 프랭크가 지미 호파를 쏘고 스스로 영원토록 남겨지기 까지. 내 생각엔 아무리 영화를 잘 보는 사람이라도 적어도 두 번은 나누어 봐야 하는 영화인 것 같다. 물론, 호파를 쏘고 나서도 한 번 쉬면 좋을 것이다. 영화도 결국 소재가 마피아였기 때문에 아쉽긴 했지만 좋은 영화였다. 특히 남겨진 자의 불안을 다루는 마지막 한 시간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노아 바움백의 영화는 한 번 끊고 봤고, 마틴 스코세지의 영화는 서너 번 끊어서 봤다. 여기서 끊어 봤다는 건 잠깐 폰을 만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영화에 집중하지 않거나 장소를 옮기거나 다른 행동을 한 걸 말한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집중력이 한 시간 십분 정도면 동하는 듯하다. 그래도 전처럼 영화 시청의 부담감은 줄어들었다. 끊어서 보면 어떠한가.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좋은 거지 뭐. 그건 그렇고, 두 영화를 보고 얻은 결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올해 가장 잘 만든 영화는 《기생충》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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