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촌, 향도 (1)
교대 앞 고시원을 시작으로 대학 근처 원룸을 1, 2년씩 전전하다 이촌동에 자리한 건 벌써 4년째다. 학교에 가려면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던 2번 갈아타야 하고 아침 시간에는 1시간 넘게 걸리기에 집 앞 스타벅스를 연구실처럼 쓰고 있다. 스타벅스의 와이파이는 한때 난리였던 중구 KT 화재로부터도 자유로웠으며 우리 동네의 스타벅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1.5인석과 같은 넓은 테이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각종 혜택 덕분에 사실상 독서실보다 더 저렴하게 훨씬 쾌적한 환경 속에서 공부할 수 있다.
일요일은 예외다. 스타벅스 옆 큰 교회의 예배가 마치는 열두 시가 되면 카페는 그 어떤 시장보다도 정신없는 곳이 된다. 이 동네의 교인들은 아직도 옛 한국인들의 정서를 가지는 듯하고 어찌 보면 미국 드라마에서 보던 동네 카페의 풍경 같기도 하다. 건너 테이블과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단체석에는 청년 무리가 겹겹이 자리를 비집고 앉아 떠들썩한 웃음을 몇 번이고 터트린다. 그런 카페의 대화들이 스피커의 노랫소리마저 묻어버릴 때면 나는 견딜 수 없어진다. 시끄러워서 공부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이 동네의 이방인이라는 걸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잘 타는 나로서는 일요일마다 스타벅스에서 마주하는 이 기분이 영 싫다.
문득 이방인 같다는 거,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뫼르소 씨1의 일상은 알제에, 이센스2의 마음은 경산에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일상이나 마음 따위는 서울에 없지만, 부산에도 없다. 유년 시절을 보낸 해운대를 떠난 지는 10년을 훌쩍 넘었으며 간혹 명절을 맞아 본가에 내려가더라도 만날 사람은 없다. 친구 대부분이 서울에 직장을 두고 있으며 더러는 가족 전부가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도 있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누구든 연락할 수 있다지만 세이클럽에서 네이트온, 그리고 페이스북, 이제는 인스타그램으로 SNS 유행이 넘어온 지금, 오히려 인연의 끈은 더 쉽게 끊기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이방인의 첫 뜻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다. ‘다른 나라에서 온’ 나는 어디서 온 사람이라 말해야 하나.
월요일 오전 스타벅스는 둘 중 하나다. 대학 과제나 시험 주간에는 일요일처럼 사람이 꽉 차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오전 내내 혼자 있을 정도로 한산하다. 오늘이 그랬다. 태풍이 지나가고 이제 여름의 끝자락을 넘어선 듯하지만, 카페의 에어컨은 여전히 쌩쌩 분다. 아직 여름 행색을 벗지 못한 사람들은 문을 열자마자 마주하는 추위에 곤혹스러워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여름 내내 카페에 올 때면 얇은 외투나 셔츠를 들고 왔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같이 긴소매를 입은 사람이 몇 보인다. 올여름 내내 혹은 그 이전부터 몇 번 봐온 나와 같은 카페 노동자들이다. 나처럼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정신없이 주식 창을 바라보는 트레이더, 서류 작업하러 오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수다 떨러 오는 아주머니들이 조심성 없이 나누는 가십거리는 흥미로운 주제가 대부분이고 아이들을 어디엔가 데려다주러 한 시간 남짓만 있기에 기분전환에 유용하다. 익숙한 풍경에 마음이 편해진다.
카페에 도착하면 자리에 앉아 가방 속에서 태블릿과 함께 두꺼운 노트들, 책 한 무더기 꺼낸다. 플래너를 보며 잊은 일정이 없는지 확인한 뒤 소설이나 에세이집을 읽으며 작은 수첩에 감상을 끄적인다. 논문이나 학술서처럼 단어 하나하나 혹은 행간에도 집중해야 하는 글들을 읽기 전 준비 운동 단계라고나 할까. 종이의 활자들이 눈에 어느 정도 익고 나면 비로소 공부를 시작한다. 내가 있는 곳, 여기 스타벅스 구석진 자리에서 1960년대 미국으로 향한다.
1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2 대한민국의 래퍼, 2019년 정규 앨범 《이방인》을 발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