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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촌 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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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VN Solo Oct 26. 2019

마감의 중요성

- 이촌, 향도 (2)


 일찍 눈뜨는 날이면, 미세먼지 지수가 보통 이하일 때 걷는다. 점차 아침 날씨는 겨울을 향해 가기 때문에 전보다 부쩍 자주 나간다. 횡단보도를 세 번 건너 굴다리 아래를 지날수록 집으로 가는 어르신들이 늘어난다. 이분들의 산책이나 조깅은 해 뜨기 전에 이루어지는 듯하다. 물론, 이 시간에 산책하는 사람은 대부분 직장인이 아니기도 하다. 직장인이라면 기상을 유예하고 수면 아래에 몸을 담그고 있거나 일찍 이부자리를 개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있을 시간이다. 정말 운이 나쁜 직장인들은 벌써 대중교통의 정화된 실내 공기에 섞인 묘한 체취들을 맡고 있을 테지.     





 이촌동에 온 지 4년이 됐지만 혼자 한강을 간 적은 거의 없었다. 여자친구들과 한적한 야경을 즐기러 간다는 핑계로 애정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러 갔을 뿐 새벽 한두 시에 자는 내가, 매일 저녁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는 내가 한강공원에서 조깅 할 일은 좀처럼 없었다.

 이는 부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출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이나 1월 1일 같이 특별한 날에나 혼자 백사장에 나갔다. 해운대를 자주 놀러 오는 여행객이라면 나보다 해운대나 동백섬을 걸은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건 나에게 처절히 적용되는 말이었다. 우리 동네긴 하지만 거기까지 걸어가려면 15분 정도가 걸리니까 은근히 멀다는 핑계. 센트럴파크를 보고 '뉴욕에 살면 여기서 매일 조깅할거야'라고 감탄하던 나에게 누나는 '바닷가 앞, 강변에 평생 살면서도 안 한 조깅을 여기 온다고 하겠니.'     



 이제나마 한강을 자주 나오는 이유는 더는 이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장인이 되건, 박사과정에 입학하건 나는 아홉 시에 출근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게 무슨 대수냐? 원래 삶은 주관적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 식의 자유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9시 출근이란 창살 없는 감옥이다. 대학에서도 1교시를 들었던 건 필수 과목이 전부였다. 그만큼 아침에 일어나는 건 나에게 힘든 일이다.

 '지금의 삶을 누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건 전혀 새로운 경험이다. 아니, 새롭지는 않은데 무거운 경험이다. 입시 원서를 쓸 때, 시험 문제를 풀 때, 과제를 제출할 때 우리는 각종 기한, 영어로는 데드라인(deadline)과 마주한다. 기한이 다가올수록 피 말리는 느낌을 받고 그 느낌을 정말 싫어하는 누군가는 일찍이 준비해 넉넉한 여유를 두고 마감한다. 나는 피가 말리고 심장이 좀 두근거리며 마감이 불투명해져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시험 준비는 전날 밤을 새우는 게 전부였고 서평 과제는 한 페이지가 곧 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를 무려 서너 달 전에 느끼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아무 변화가 없지만, 그 하루만큼 한계선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생각할 때면 말초신경이 움찔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제 죽은 언어가 되었으나 홀로 살아남은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아포리즘. 모든 내 남은 시간이 의미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감이 담쟁이덩굴처럼 내 몸을 감싼다. 오늘 아침엔 다섯 시 반에 눈을 떴다. 늙은이들보다 먼저 조깅을 나서는 건 내 남은 날이 그들보다 짧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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