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Rush
19
숨쉬기 어려운 열기, 철을 두드리는 소리와 비명 소리 그리고 불이 산소를 태우는 소리가 크리피 페이스 내 기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밖은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릴리는 한낮의 사막을 걷는 것처럼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만큼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하하하 어때 뜨겁지? 저기서 일하는 노예들은 대부분 중립지대가 만들어지기 전 시장에서 납치한 사람들이지” 잭슨은 자랑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너는 그게 자랑스러운 거야?” 릴리는 잭슨의 자랑을 듣자 혐오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잭슨은 그런 릴리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당연하지!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납치해서 살아남았어? 왜 혐오스럽나? 이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야!” 잭슨은 광기에 물든듯한 눈을 보여주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어떤 것도 마다하지 말아라!, 수분을 아껴라! 이게 사막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절대 규칙 아닌가?!” 잭슨이 크게 소리치자 주위 크리피 페이스의 양아치들도 소리를 질렀다.
“생존! 생존! 생존!” 광기로 물드는 이곳에서 생존이란 지옥의 규칙처럼 절대적이었다.
“나는 이 바닥에서 죽을힘을 다해 온갖 더러운 짓을 하며 살아남았다. 너처럼 마치다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온 온실 속 화초 같은 사람은 이해 못 하지!” 잭슨은 분노에 일그러진 표정을 보이며 릴리를 바라보았다.
“덕분에 턱이 지금도 아파서 말이지! 마음 같아서 바로 벌집으로 만들고 들짐승이든 사막이든 어디에 던져주고 싶지만 장로 덕분에 살아남는 거로 알아라!”
“흥! 방심한 너의 잘못이지! 아직도 아프다니 정말 자랑스러운걸 하하하!” 릴리는 잭슨 앞에서 보란 듯이 크게 웃었다. 잭슨과 퍼플헤어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원래 이런 상황에선 눈치를 봐야 하는 거야 마녀. 아니 그냥 꼬마인가?” 퍼플헤어는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차며 릴리를 앞으로 밀었다.
“늙은이가 기다린다.”
공기가 타오르는 용광로는 여명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사막의 시장에선 여명은 하루의 시작이다.
A78은 크리피 페이스의 똘마니들을 처리하고 빠르게 마치다의 잡화점에 갔지만 그는 가게에 없었다. 그렇게 A78은 온 시장을 뛰어다녔고, 겨우 바닥에 쓰러진 마치다와 니콜라를 발견했었다.
마치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A78의 엔진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자 땅에 주먹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니콜라는 그런 그를 보며 울먹이며 떨고 있었다.
“젠장! 젠장!” 연신 땅을 내리치며 마치다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A78은 그에게 다가가 그가 내려치는 주먹을 잡고 그를 바라봤다.
“Let’s Gambling” A78의 어이없을 정도로 밝은 카지노의 효과음이 짜증이 나는 마치다였지만 너무 밝은 효과음에 조금은 정신이 차려졌다. 마치다는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였다.
“미안하다.. 놈들이 릴리의 거처를 모르니 얼른 시장만 빠져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젠장..”
“Let’s Gambling” A78은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고 있었다. 퍼플헤어의 등장과 잭슨의 난입 그리고 마치다의 이야기를 A78은 분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도출해 낸 최종값은 지금 릴리의 상황은 그 어떤 상황보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A78은 마치다 앞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치다는 당황하며 A78의 팔목을 잡았다. “잠시만 내가 로봇의 말은 몰라도 이 정도 행동의 뜻은 안다.” 마치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로봇을 보고 있었다.
“너 혼자 가는 것은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A78은 말없이 마치다의 얼굴을 렌즈에 담았다. 로봇인 자신을 걱정이라는 표정의 도출값으로 바라봐준 게 처음이었다.
“우선 나도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지. 그러니 자네도 다 같이 움직여야 해. 릴리에겐 이제 더 이상 친구를 잃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마치다는 괴로운 표정으로 굳어버리는 상처를 매만지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내 딸을 잃어버리고 녀석이 그렇게 가깝게 이야기 한 녀석은 네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네가 가깝게 느껴진 거겠지.”
“그러니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마치다는 진지하게 A78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로봇을 걱정하는 인간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마치다의 걱정에 A78은 어떠한 값을 도출해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단 하나 알 수 있었던 건 릴 리가 그만큼 위험하다는 거였다.
A78은 다시 여명이 떠오르는 지평선을 바라봤다. 엔진소리가 다시 한번 더 과열되고 있었다. 마치다는 아무리 그가 말해도 A78이 릴리를 찾아 이 사막을 정처 없이 떠돌 것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이봐 크리피 페이스의 기지는 여기서 꽤 멀어. 아무런 안내 없이 가면 모래 폭풍을 만나 꼼짝없이 망가질 거다. 그러니 잠시 기다리자고. 나도 연락을 취해야 하니까”
“Let’s Gambling!” A78은 더욱 크게 볼륨을 올려 효과음을 냈다. 그리고 여명을 바라보는 렌즈는 흔들리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지평선을 가리켰다. 마치 릴리가 저기 있으니 가야 한다는 모습이었다.
“크리피 페이스 놈들의 기지를 알고 싶은 거지?”
A78과 마치다는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니콜라 역시 익숙한 목소리에 바로 뒤를 돌아봤다.
“형아!!” A78은 어제 한낮에 본 니콜라가 따르는 고아들의 대장인 소년에게 달려가서 품에 안겼다. 니콜라는 소년의 품에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시장의 여명은 니콜라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Jackpot!”
20
“내가 그놈들의 기지는 알아.” 소년은 우물쭈물거렸다.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상황을 아는 듯 보였다.
“꼬마야 진짜냐?” 마치다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물어봤다.
“어젯밤부터 보고 있었어. 마치다 아저씨가 크리피 페이스 놈들하고 싸우는 거.. 그리고 그 녀석을 데려간 것도” 소년은 본인의 품에서 울다가 잠든 니콜라를 쓰다듬으며 어젯밤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소년은 니콜라가 사라지자 본인이 직접 시장을 찾아 뛰어다녔다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다 우연히 소음이 들린 곳으로 가보니 릴리와 니콜라 그리고 마치다가 크리피 페이스들과 싸우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릴리를 납치한 잭슨이라는 녀석도 알고 있었는데, 바로 소년과 니콜라의 어머니를 납치해 간 놈이기에 그 얼굴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나 엄마를 납치해 간 녀석들을 몰래 찾아간 적이 있어”
“미쳤구나. 하마터면 죽을 수도 있었을 거다.”
“사막에서 고아로 사는 것도 죽을 만큼 힘들어”
소년은 굉장히 공격적으로 맞받아 쳤다. 마치다는 그런 소년의 말에 조금은 눈썹이 흔들렸다. A78은 그런 그의 반응을 렌즈에 담고 있었다.
“꼬마야 이름은?”
“톰”
톰은 마치다를 바라보면 무겁게 일을 열기 시작했다.
“엄마는 잭슨이란 그놈에게 납치를 당했어. 아니 정확하겐 나와 니콜라의 엄마지. 내가 데리고 다니는 애들 대부분이 그렇게 부모님과 헤어졌지”
톰은 그 날밤을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가 납치당하던 날 나는 따라갔어. 놈들의 짐칸에 몸을 숨기고 말이야. 그렇게 기지까지 따라갔지만 결국 발각되고 말았지.”
톰은 생각에 잠긴듯해 보였다. 잭슨의 더블 배럴 샷건이 본인의 이마를 겨냥하고 있었고 그 순간 톰의 어머니가 뛰쳐나왔다.
“제발! 이 아이만은 보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무엇이든지 할게요!” 톰의 어머니는 잭슨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을 하였고 잭슨은 그런 그녀를 보자 기분 나쁘다는 듯이 혀를 차며 톰을 기지 밖에 버려두고 떠났다.
“엄마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라. 하지만 내가 다시 한번 몰래 찾아갔을 때는 그래도 살아계셨어 하지만..”
톰은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회상하였다.
“다시는 오면 안 돼. 알았지? 이제 잭슨이 봐주지 않을 거야. 톰도 엄마도. 우리 아들 엄마 말 잘 알아 들었지? 정말 힘들겠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살아가렴.”
톰의 눈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위험할까 봐 절대로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어. 나도 정말 가고 싶었지만 엄마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었으니까..”
톰의 말에 마치다는 한숨을 쉬었다. 시장 안 여명이 쏟아지는 골목에서 들리는 소리는 A78의 엔진소리 그리고 톰의 품에 안겨 잠을 자는 니콜라의 숨소리뿐이었다.
“Let’s Gambling” A78은 톰의 앞으로 다가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A78 역시 본인이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계산값의 오류인지도 몰랐다. 가장 근접한 결론은 톰이라 불리는 소년의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어 릴리를 구출할 최적의 루트를 얻기 위해 한 행동이라는 본인만의 도출값을 내놨다.
톰은 로봇의 손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곤 로봇의 팔을 잡곤 진지한 눈빛으로 물어봤다.
“내가 길을 알려줄게.. 대신 우리 엄마도 구해줘”
“Jackpot” A78은 동의한다는 듯이 효과음을 내기 시작했다. 톰은 그런 로봇의 반응에 지금껏 보인적 없었을 정도로 뺨이 붉어졌다. 그리곤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약속한 거지? 진짜지?”
“Jackpot!” 더욱더 볼륨을 높여 A78은 대답을 하였다. 톰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옆에서 바라보던 마치다는 그런 그들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 톰의 흐느끼는 소리가 멎어질 때쯤 마치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따라와라”
마치다는 차고를 향했고 어느 정도 작은 오토바이를 보여주었다.
“작은 녀석밖에 없어서 한 명 밖에 못 간다. 하지만 로봇 정도면 길을 외우는 건 잘하겠지?” 오토바이는 연식이 오래되어 보였다. 하지만 핵심 부품인 엔진은 아직 기름이 흐르고 있었고, 어느 정도 관리가 되어 보이는 사막 모래 색깔의 오토바이였다.
A78은 오토바이를 쓰다듬으며 여명을 지나 아침이 밝아오는 지평선을 자꾸만 바라봤다. 지평선 너머 기다릴 릴리를 계속 메모리로 떠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