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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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모든 일이 정말로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났다. 릴리를 포함한 모든 인원들은 장로가 갑자기 산산조각이 나 죽은 것처럼 보였다. 뒤의 모든 기계들이 부서졌고, A78은 장로 앞에 서있었다. 그러나 릴리가 듣기엔 이상한 펌프소리가 로봇에게서 들리는 거 같았다.
“Jackpot” A78은 달려오는 릴리를 보며 유쾌한 효과음을 들려줬다. 그러나 릴리에겐 마치 조금은 음성이 늘어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너.. 너 뭔갈 했구나?” 릴리는 로봇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A78은 릴리를 조용히 보고 있었다. 그때 린이 다가와 릴리의 손목을 잡고 A78을 바라봤다.
“얼른 벗어나야 해! 기지가 언제 다시 터질지 몰라!” 린과 릴리 그리고 잡혀온 사람들과 A78은 달리기 시작했다. 잭슨과 퍼플헤어는 나머지 살아남은 인원들을 바이크에 매달고 수혈 팩과 물을 주고 있었다. 그리곤 시동을 걸어 멀어지려 하였다.
A78이 보기엔 일행들이 너무 지쳐 보였다. A78은 이미 장로의 팔을 공격할 때 쓴 에너지와 평소의 영양 상태 그리고 오늘 사막의 날씨까지 측정한다면 가는 중간에 70퍼센트의 인원은 영양 부족으로 쓰러질 확률이 컸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자유라는 흥분에 상태를 인지하지 못했다. A78은 릴리를 포함한 인원들의 영양을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렌즈에는 무언가 잡혔다. A78은 모든 인원이 들을 수 있게 가장 큰 볼륨을 설정했다.
“Jackpot!!” 엄청나게 큰 카지노의 유쾌한 효과음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로봇으로 옮겨가게 만들었다. A78은 바로 지평선을 가리켰다. 릴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로봇이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아지랑이 넘어 익숙한 곰의 형체가 우글거리는 탈것을 타고 선두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잭슨과 퍼플헤어는 그들을 보자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겨우 우리를 잡자고 저 정도의 인원을 모아온건가?” 마치다가 시장연합과 주위 마을 연합의 상징이 있는 깃발들과 함께 몰려오고 있었다.
“마치다 아저씨!” 릴리의 외침을 듣자 사람들도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잭슨과 퍼플헤어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릴리 역시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잭슨과 퍼플헤어는 고개를 까딱하곤 멀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마치다는 일행들에게 도착하였고, 엉망이 되어버린 크리피 페이스 내 기지와 기계들과 미라처럼 변해서 죽은 크리피 페이스의 인원들을 보자 경악하였다. 릴리의 이야기를 듣던 마치다는 크리스의 이야기에 고통과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처참하게 죽은 장로의 최후를 듣자 조금은 구원받은 얼굴이었다.
“크리스...” 마치다는 크리스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릴리는 그런 마치다를 보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A78의 렌즈엔 가장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한 날로 기록을 하였다. 사망인원 0, 구출인원은 수없이 많고, 마치다의 지원으로 영양 부족 걱정 없이 빠르게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 보았다.
그 순간 진동이 느껴졌다. A78은 인간이 느끼지 못할 진동이 느껴졌다. 구덩이 아래에서 느껴지는 꿈틀거리는 것들이 구덩이 아래로 떨어진 장로에게 흘러가는듯한 반응이 포착되었다.
A78이 릴리를 잡아 이끄려고 한 순간 갑자기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핫! 너희들은 절대 날 벗어날 수 없어!!!” 거대한 기계 촉수들과 그 촉수에 묶인 젊어진 장로가 다시 구덩이에서 나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릴리! 저건 뭐냐?!” 마치다는 당황하며 모든 인원에게 전투 준비를 시켰다. “저게 장로예요!” 마치다는 릴리의 이야기를 듣자 표정이 급변하였다. 사별한 아내가 남긴 소중한 딸을 앗아간 원수가 다시 부활하자 복수라는 감정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다는 수제 총을 그의 머리에 수십 발맞추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여러 마을과 시장 연합에서 가져온 대포들이 불을 뿜었다. 그러나 장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많은 촉수들이 밤의 장막처럼 넓어져 파도처럼 그들을 덮치려 하였다. 끝없이 넓어지는 장로는 이제 건물만큼 커져가고 있었다.
“괴,... 괴물이야!” 대포와 총을 발사하던 인원들도 겁에 질리기 시작했고 릴리와 린은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A78의 엔진 역시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릴리를 앞에서 안고 있었다. 릴리는 그런 로봇의 코트 넘어 강철 부분이 묘하게 따뜻하다 느꼈다.
그 순간
위이이잉
사막 전체에서 그리고 기지 내 남아있는 사이렌 시스템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릴리는 정신을 차렸다. 주위 모든 인원들도 정신을 차렸다. 모래 폭풍이 다시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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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잉 위이이이 잉
사이렌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리고 있었다. 릴리를 포함한 인원들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장로뒤에 더 이상 불길이 안 남아있는 구덩이가 보였다. 릴리는 장로를 보고 있었다. 이미 장로는 사막의 사이렌을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치다는 릴리와 그런 인원들을 보며 외쳤다. “뛰어!” 인원들은 일사 분란하게 두 방향으로 흩어져 장로를 가로질러 뒤에 있는 구덩이를 향해 뛰었다. 다행히 그렇게 큰 구멍이 아니었기에 빠르게 인원들은 뛰어내렸다.
장로는 그런 인원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릴리만을 보며 쫓아가려고 하였다. 릴리는 장로가 본인을 쫓아오는 게 느껴지자 구덩이로 뛰지 않았다.
A78이 구덩이 쪽으로 당기자 릴리는 반대 방향으로 가려고 하였다. 렌즈로 그녀를 보자 A78은 그녀의 의도를 읽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둘은 서로의 생각을 읽었다. 그 순간 마치다는 구덩이에 뛰어들기 직전에 반대 방향으로 뛰는 릴리와 A78을 보았다.
“릴리! 빨리 와! 안 그러면 늦어!” 마치다는 다급하게 거의 비명을 지르듯이 릴리를 불렀다. 릴리는 그런 마치다를 보곤 웃음을 살짝 지어 보였다. 그리곤 입모양으로 그에게 말을 전했다. ‘고마워요’ 마치다는 릴리의 마음을 읽고 다시 구덩이를 나가 릴리를 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린과 마을 청년들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곤 빠르게 그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마녀!!!!!!” 장로는 이미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침을 흘리며 단편적인 단어들만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장로의 눈엔 모래가 필요이상으로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 뭐지?” 장로는 옆을 바라보자 이미 본인보다 수십 배는 더 큰 모래 폭풍이 본인을 덮치려 하였다. 릴리는 이렇게 가까이서 모래 폭풍을 본 것은 두 번째였다. 부모님을 잃은 그날 모래 폭풍을 미처 피하지 못한 그날이 떠올랐다.
‘어떻게, 어떻게 이 폭풍을 피했었지?’ 릴리는 머릿속에서 과거가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억이 너무 흐릿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났다. 그저 기지 안에서 크리스와 책을 읽으며 폭풍을 피하던 그때만 생각났다.
‘크리스.. 이제 다시 만나는 걸까?’ 릴리는 눈을 감았다. 릴리는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건 바람에 몸이 뜨는 기분이 아니었다. A78이 그녀를 들어 올려 건물의 가장 무거워 보이는 콘크리트 잔해로 뛰어가고 있었다.
“Jackpot!” A78은 빠르게 콘크리트 잔해 위로 강하게 킥을 날려 구덩이를 조금 만들더니 릴리를 본인이 꼭 안아 그 안에서 웅크렸다. 릴리는 갑자기 생각이 났다. 엄마와 아빠로 어린 본인은 감싸 안고 주위 바위에서 숨었다는 것을.
“엄마.. 아빠..” 릴리는 눈물을 흘렸다. “이 년이!!” 장로는 그들을 보며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그 순간 폭풍의 잔인할 정도 빠른 바람 소리가 장로의 소리를 먹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