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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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떨어질 거 같은 바람 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규모의 폭풍이 대지를 뜯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규모가 크다면 이런 잔해 정도는 그냥 날아가 버릴 것이라 릴리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콘크리트 구조물은 꽤 멀쩡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다시 제대로 불기 시작하자 콘크리트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릴리는 A78의 품 안에서 하얀빛이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신님 제발! 저와 이 녀석을 지켜주세요!’ 릴리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인 것은 장로의 거대한 촉수들이었다. 장로의 촉수들이 땅에 박혀 폭풍에 버티고 있었다. 릴리는 절망하였다. 자연마저 이겨내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크아아아악 살려줘!!” 장로의 비명이 들렸다. 기계들은 점점 부서지고 있었다. 갈라지고 약한 모래에 박힌 촉수들은 점점 뽑히고 있었다. 그리고 장로는 바람에 모든 살갗이 찢어지고 있었다. 기계에 의해 회복은 되었지만 바람이 그의 몸을 찢는 속도가 더 빨랐다.
장로는 그런 본인을 보는 릴리와 눈이 마주쳤다. “마녀! 아니 릴리 나 좀 살려줘!” 장로는 몸을 기계에서 조금씩 분리하며 눈이 마주친 릴리에게 손을 뻗기 시작했다.
릴리의 눈엔 그는 그저 보통 청년이었다.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청년. 하지만 그녀는 손을 뻗지 않았다.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지만 그녀는 손을 뻗지 않았다. 그저 그를 응시만 하고 있었다.
“릴리!!!! 마녀!!!!!!!!” 장로는 비명을 지르며 몸이 바람에 의해 찢어지며 릴리의 이름을 부르며 바람에 날아가기 시작했다. 기계들과 같이 조각조각 찢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폭풍이 몰고 온 비였다.
구덩이에서 나온 사람들이 보였다. 릴리와 A78은 크리피 페이스 기지가 있던 구덩이에서 멀지 않은 장로가 던진 구조물 사이에서 손을 흔들었다. 마치다는 그녀에게 달려가 꽈악 끌어안았다. 그의 얼굴이 이미 눈물인지 비인지 모를 범벅이자 릴리는 그를 꽈악 껴안았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비는 길지 않았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폭풍이었다. 다시 작렬하는 태양이 사람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태양은 정오를 지나 이미 노을과 가까워지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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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아슬아슬했어” 마치다는 지붕이 없는 트럭을 타며 자고 있는 릴리를 뒤돌아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폭풍이 조금이라도 더 컸다면 그리고 구덩이에 있던 연로들이 바람과 반응해 연소했다면 이 중에서 반 이상은 죽었겠지.”
마치다는 노을을 보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 그리고 노을에 반사되어 빛나는 그녀의 금발을 보고 있었다. “기적이란 거야. 모래 바람을 타고 온 모래들이 우릴 덮치면서 연료가 연소될만한 곳을 막아준 거겠지..” 마치다는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A78을 보았다.
마치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히 피곤할 리가 없는 로봇이 자신의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하하하하 너는 정말로 특이하군 그래”
“Let’s Gamble” A78은 그런 마치다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다는 그런 로봇을 보며 어깨를 살짝 내려치면서 로봇을 바라보았다.
“릴리를 지켜줘서.. 고맙네”
“Jackpot!” A78은 유쾌하지만 자는 릴 리가 깨지 않게 볼륨을 조절하여 효과음을 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는 린은 잔해에서 주운 칩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동안 릴리를 핍박하였기에 마을에 돌아가면 톰과 니콜라를 찾고, 칩을 분석해 만약에 장로의 기억이 담긴 칩이라면 증거로 들이밀 생각이었다.
린은 릴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린은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정말로 오랜만에 정말로 안정되는 기분으로 잠을 자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고 마치다와 린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릴리는 꿈에서 크리스를 보고 있었다. 크리스는 릴리를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릴리는 크리스에게 달려갔다.
“크리스! 내가 복수했어! 너를 이렇게 만든 녀석을..”
릴리는 말을 멈추었다. 크리스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고 있었다.
‘릴리! 정말 애썼구나? 정말 대단해!’ 크리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릴리는 어린 크리스를 껴안고 펑펑 울었다.
“크리스!! 나 정말 애썼어! 매일 울고 싶었어! 하지만 참았어! 이젠 정말로 혼자가 아냐!” 릴리는 그녀를 잡고 울고 있었다.
크리스는 그런 릴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릴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손길의 의미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