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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Sep 02. 2022

점을 보러 갔다

점이라는 걸 보러 갔다.

예전에는 점 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은 약한 존재라서 저런 데 매달리기도 하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의외로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이 없다는 것을. 자신의 삶 자체에 관심을 보이며 때로 해결책도 제시해주는 존재를 접하는 경험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점집을 찾는다.   

  

나는 오늘 살면서 네 번째로 그 경험을 하고 왔다.

첫 번째는 절대 잊을 수 없다. 공감의 태도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점쟁이의 악담 때문에. 점괘가, 사주가 그렇게 나왔다고 해도 뭔가 절박한 마음을 갖고 찾아온 사람에게 그런 언사는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답답하고 앞이 보이지 않아 용기를 내어 친구와 함께 첫걸음을 했던 그날 이후로 점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겼다.

두 번째, 세 번째는 타로점이었다. 타로 마스터는 개성과 포스가 넘치는 페미니스트였다. 나는 또 나쁜 말을 들을까, 지레 겁을 먹고 나의 첫 경험을 미리 털어놓았다. 그래서인지 똑같은 사주를 가지고 그녀는 내게 더할 수 없는 용기를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퇴직을 고민할 때 혼자서 다시 그녀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첫 번째 방문 때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들고서. 그녀의 답도 처음보다 더 구체적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가 오늘이다.

작은 암자 안에 그녀가 있었다. 곱게 화장한 얼굴에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정갈한 회색 절복 차림의 그녀는 우리를 향해 합장하면서 먼저 대웅전에 가서 예를 드리고 오라고 했다. 고객의 종교를 불문한 요구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절 의식에 익숙한 친구를 따라 불상을 향해 절을 올렸다.

나는 트라우마 때문에 이번에도 많이 떨었다. 예약 전화도 오래 망설인 끝에 했다. 전화선을 타고 당도한 그녀의 목소리는 나의 걱정을 잠재우려는 듯 어딘가 안심되는 데가 있었다.

들은 대로 그는 용했다. 여러 번 놀랐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는 친구에게, 배우자가 있어요? 없는 걸로 나오는데,라고 말문을 떼었다.(친구는 최근 남편과 갑작스러운 사별을 했다. ) 그리고는 친구를 위무하고 존중하는 어조로, 아이들이 나무랄 데 없이 바르고 착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뭘 더 해주면 좋을까 물으니 지금까지 부부가 더할 나위 없이 아이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더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알고 있었지만, 그 부모에 그 자식, 어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좋은 점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아픈 이야기도 있었다. 친구에 대해 정성스럽고 존경하는 듯한 태도로 말을 들려주던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조금 달랐다. 친구가 처한 상황에 비해 나는 그만하면 됐다는 것일까. 다소 가벼운 어조였다. 말하는 중간중간 웃음이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는 착하다, 순하다는 말은 없었는데, 다 듣고 난 느낌은 둘 다 별일은 없을 거라는 것. 그거면 됐다. 그리고 내가 가장 무겁게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명쾌하고 심플하게 답을 해줬다. 딱히 좋은 내용이라고는 볼 수 없고 어쩌면 별다른 해결책이 없는 쪽에 가까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나의 어떤 부분이 위로받았다. 지금껏 나 혼자 지고 온 짐을 그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 편에서 말해 줬다. 나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아서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는 게 습관이 된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지나가듯이 한 말과 어조에서 그게 내 탓이 아님을 직관적으로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치유가 되고 무언가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사실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잘 알면서도, 듣고 싶은 말을 기어코 들으려고 점집에 가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누군가로부터 너 괜찮은 사람이야, 네 잘못 아니야, 네가 제일 중요해, 이런 말을 들으려고 가는 것 아닐까. 살면서 실행할 작은 팁이라도 받게 되면 별거 아니어도, 그래, 이거지, 하고 확신을 가지고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결심을 하게 만든다. 그래, 한 번 더 으쌰 으쌰 하자, 하고 힘을 내게 만든다.     


떨리고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간 나는 시원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자신은 점을 별로 안 믿는다면서 덤덤하게 갔던 친구는 되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돌아왔다.

우리는 손님이 한산한 늦은 오후의 카페에 마주 앉아 남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를 격려해 주었다.

인생은 모르는 거다. 그리고 사람마다 자기 십자가를 메고 산다. (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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