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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Jun 30. 2022

루틴(2)

퇴직 3년 차의 일상

화요일     


화요일은 친구를 만나는 날이다. 그렇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이나 만나고 있다. 그래도 지겹지 않다. 편안한 단골 카페에서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과 심경을 나눈다. 그리고 걷기와 자연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가까운 교외로 나가 걸으면서 햇빛으로부터 비타민 D를 수혈받는다. 비좁은 내면에서 빠져나와 광활하고 자족한 자연을 보며 정화되는 시간이다.     


내가 퇴직하던 해 친구도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접었다. 부동산 경기가 0에 수렴하던 때이기도 했지만 나는 나를 따라서 나와 자유로운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라고 몰래 생각한다. 퇴직과 동시에 코로나가 창궐하여 전에 없던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퇴직 후 버킷리스트 중 1순위였던 여행도 하지 못하고 운동이나 모임 등 외부 활동도 차단당한 채 우울증 초기 증세를 보이던 나를 그나마 숨 쉬게 해 준 게 그녀와의 일주일에 하루 데이트였다. 첫해에는 꽤 멀리까지 나들이를 나갔다. 멀리라고 해 봤자 부산 경남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걷기 좋고 자연이 아름다운 장소를 검색해서 서로에게 보내주곤 했다. 그렇게 1년쯤 지나자 운전 시간만 길에다 버릴 뿐 걷기는 어디든 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우리는 굳이 거리가 먼 곳을 검색하는 데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 지금까지 차로 30분 내외의 기장이나 정관, 아주 가끔 산성마을을 행선지로 잡고 있다.

기장해안로 초입에 있는 단골 카페 

그러다가 우리 마음에 쏙 드는 카페를 만났다. 5월이면 멸치 축제가 열리는 대변항을 지나 좁은 도로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바다가 따라온다. 조금 더 들어가면 그 작은 카페가 나온다. 젊은 남자 사장 둘이 운영하는 카페다. 커피 맛은 깜짝 놀랄 만큼 훌륭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아주 밍밍하지도 않다. 종류가 많지는 않아도 베이커리도 있고 브런치 메뉴도 있다.

    

비 오는 날 카페에서 본 풍경

그러나 우리가 이 카페를 찾는 첫 번째 이유는 2층 통창을 마주 보는 2인용 소파 자리 때문이다. 날씨에 따라 다른 색상으로 옷을 갈아입는 바다. 맑은 날은 눈부셔서 좋고 비가 오면 차분하게 마음이 가라앉아서 좋다. 그 자리에서는 24시간 멍을 때릴 자신이 있다. 바다만 보이면 심심하다. 창 너머 가까운 시야에 굽은 소나무들이 운치를 더한다. 바다를 향해 난 문을 열고 나가면 하얀 비치파라솔과 색색의 플라스틱 의자들이 해외 휴양지에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그 2인용 소파에 둘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카페는 할 일을 다 했다. 쿠션을 몸 어딘가에 괴고 아예 신발도 벗어던진 채 책상다리로 편안하게 몸을 기대면 이완된 신체만큼 마음도 이완된다. 그리고 바로 앞에 눈을 시원하게 하는 바다가 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작은 파도가 수줍게 일어났다가 스러지고 더 멀리에는 고기잡이배들이 점점이 떠 있다. 편안한 음악이 흐르고 앞치마를 두른 사장이 한 번씩 올라와 손님이 앉았던 자리를 닦고 정리하는 사이 우리의 이야기는 시간처럼 가만히 흐른다.      

    



토요일     


그리고 마지막 하루는 글쓰기 수업이 있는 토요일이다. 쏠쏠한 정보와 즐거운 대화가 오가는 수업은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글쓰기 강습소이자 얼마 전부터 글쓰기 선생님의 살림집을 겸하게 된 오피스텔의 작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수강생들 사이에는 모종의 화학작용이 피어난다. 

대화 주제는 무궁무진해서 마르지 않는다. 상당 부분은 선생님으로부터 비롯되나, 강습생들의 이야기가 그 위에 보태져서 우리의 대화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래도 아무 상관없다. 재미있으니까. 신랄한 비판이 오가는 합평회도 아니고 엄숙한 학술 세미나도 아닌걸. 선생님이 낭독해 내려가는 수강생들의 글을 각자 눈으로 좇으면서 누구도 현학적인 태도로 다른 이의 글을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그런 권능은 오직 선생님만 가지고 있는데 선생님의 지적은 매번 적확하다. 수강생의 모자란 부분을 핀셋으로 집듯 집어내나, 신랄함은 없어서 상처받는 사람은 없다.

칭찬 일색에 비판이 없으면 발전이 없는 것 아니냐고? 수다를 즐기기만 한다면 친목 모임과 다른 게 뭐냐고? 

우선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문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비판이라고 하나 실은 비난에 가까운 말들은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한다. 선생님은 아낌없는 칭찬으로 수강생의 자존감을 추어올린 뒤, 기분 나쁘지 않은 방식으로 수강생 각자에게 필요한 점을 콕 집어 알려준다. 그리고 다음 주 과제로 그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는 데 딱 맞는 맞춤형 과제를 제시한다.

사실 우리는 같이 어울려 술 한 잔은커녕 차 한 잔도 마신 적이 없다. 사적인 친분을 이어가지도 않는다. 오로지 토요일 오후 두 시, 강습소에 얼굴을 마주하고 모여 앉으면 거기서부터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어서 가상공간과는 다르다.

강습생들이 써 온 글들은 각각 어떤 에너지를 가지고 다른 강습생들에게 가시적이지 않은 영향을 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평소 입는 옷을 입고 1500원짜리 테이크아웃 커피에 소소한 간식을 앞에 둔 우리는 즐겁다. 가식 없는 날것의 웃음소리가 피어오르고, 가끔 누군가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 놓기라도 하면 일제히 귀 기울여 들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그 공간은 마법의 공간이다. 세상의 화법과 다른 그곳의 화법이 있고 서로에게 조금도 상처나 해를 입히지 않는 그런 세계이다.

우리는 그 공간에서 지난 한 주간 있었던 일을 풀어놓고 안 좋았던 마음을 치유받고 또 한 주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거기서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각자 하는 일도 다르고 처지도 다르다. 우리는 글쓰기라는 하나의 관심사, 목적을 갖고 만났다. 돈이나 권력이나 이해관계 따위는 거기에 없다. 직장에서 하듯이 사회적인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 모두 나름의 결핍을 안고 살면서 글에 그것들이 살짝살짝 비친다. 그래서 오래 글을 매개로 만나다 보면 각자의 결핍과 상처를 알게도 된다. 글 쓰는 행위만으로 치유가 되지만 글을 통해 자신을 조금씩 풀어내 보이는 과정에서도 치유가 된다. 각자가 가진 아픔을 나누면서 자기 환부를 들여다보게 되고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사람의 힘을 생각한다. 살면서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다고 하지만 힘을 얻게 되는 것도 사람으로부터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꽃이다.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꽃도 들여다보면 완벽한 우주를 간직하고 있다.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듯이 사람도 그렇다. 그걸 강습소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깨닫게 된다.      

 (이미지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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