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가 되어도 좋아(았던 날들)
# 캄보디아에서 모토톱과 툭툭(캄보디아 이동수단)을 타고 다닐 때, 승차하기 전 기사 아저씨(단 한 번도 여자 기사분이 운전한 모토와 툭툭을 타 본 적이 없다.)와 흥정을 해야 한다. 서로가 만족할 만한 가격으로 흥정하는 일이 처음엔 재밌지만, 매번 흥정하는 일이 그리 녹록지 않다.
운이 좋으면 단번에 별 수고로움 없이 목적지까지 기분 좋게 가고 그게 아니라면 두 세대씩 그냥 보내고 걷다 걷다 지쳐 결국 모토 아저씨가 원하는 가격에 간다. 결국 이렇게 될걸 그동안 뭐한 거지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허망한 땀들만 흐른다.
캄보디아에서는 현지인 가격과 외국인 가격이 간혹 다를 경우가 있는데, 모토톱 가격이 그랬다. 가끔 프놈펜에 사는 한국인들을 만나면 요즘 모토톱을 얼마에 타고 다니는지 시세를 비교하는데 그때마다 나보다 많이 주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일명 '프놈펜 호구'로 통하는 게 기분 좋지는 않았다. 캄보디아 친구에게 내가 지불한 모토톱 가격을 얘기하면 너무 비싸게 다닌다고 열을 내면서 그 모토톱을 어디서 탔는지 그 아저씨 나쁘다며 열을 내곤 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본인들이 직접 태워 주기도 하고 잘 알고 있는 모토톱 기사를 현지인 시세에 맞춰 불러주기도 했다. 그동안 남들 보다 더 주고 탔어도 결국엔 그렇게 더 많이 받는 순간들이 있어서 아깝지 않았다.
# 풍물시장[ 청춘 1번가]에 입주하면서 이삿짐을 풀고 빈 박스를 한데 모아 버리는 일이 종종 생긴다. 오늘도 빈 박스를 납작하게 접어 화장실 앞 박스 버리는 곳에 가져다 놓았다. 박스를 수거하시는 상인분인지 아니면 박스 수거 자리를 책임지시는 상인분인지 항상 그 자리에 계시는 상인분이 아고 아가씨 고맙다며 박스를 받아 본인 구미에 맞게 정리하셨다. 박스를 손쉽게 버리는 건 나여서 내가 감사해야 하는데 오히려 상인분이 고맙다고 하시길래 폐지 수거로 용돈 벌이를 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손 씻고 나오는 길에 또 마주친 그 상인분이 박스 정리해서 가져다 주느라 수고했다며 또 인사하셨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고맙단 인사가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지는걸 보니 그간 텁텁하고 인색하게 굴었던 너도 나도 떠오른다. 누군가의 호의를 호구로 보는 이 미친 세상에서 작은 호의에 감사하고 다시 베푸는 마음이 있다는 걸 잊어버렸던 건 아닐까. 아-이 풍물시장 왠지 기대된다. 누군가의 이웃으로 살기 또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