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사람과 사람, 그 사이의 미디어
우리는 미디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눈에 들어오는 광고부터, 어딜 가나 들려오는 음악, 항상 손안에 있는 핸드폰 속의 다양한 콘텐츠가 계속 일상에 밀려듭니다. 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도 미디어를 통해 얻고, 취미와 오락도 미디어에 의존합니다. SNS 시대가 열린 후로는 친교 활동의 상당 부분도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전염병과 같이 물리적 접촉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SNS로 인한 소통은 새로운 사회적 관계로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머리맡에 스마트폰을 두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며, 화장실을 갈 때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허전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미디어와 연결되어 살아갑니다.
미디어media의 어원은 중간을 뜻하는 ‘미디움medium’입니다. 한문으로 하면 매체媒體,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것’이라는 의미죠. 우리 생활에서 접하는 책 · 잡지 · 신문 같은 활자 매체, 라디오와 같은 음성 매체 · TV · 영화 · 유튜브 같은 영상 매체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포함하여, 활자, 소리, 그림, 영상 등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든 것이 미디어입니다. 한때는 미디어라는 말이 방송사나 신문사 같은 대형 미디어(매스 미디어)를 주로 가리켰고, 요즘은 좁은 의미로 디지털 미디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모두 미디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에서 미디어 의존도가 커진 만큼 미디어 종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유해 미디어의 난립과 그 부정적 영향도 지적됩니다. 그렇다고 미디어와 단절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디지털 미디어를 멀리하고 종이책만 읽고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미디어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을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삶의 여러 면을 인식하며 다양한 생각을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합니다. 혼자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점점 사고를 발전시켜나갑니다.
다른 사람의 고민과 생각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미디어입니다. 미디어는 우리의 의식과 사고를 구성하며, 단순히 세상에 대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지 양식까지도 바꾸어줍니다.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며,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릴 줄 아는 눈을 만들어준다.”라고 말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더 깊어지고, 더 영리해지고,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정보와 생각을 얻으려면 미디어에 종속되지 않고 미디어를 제대로 알고 잘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쏟아지는 미디어의 내용을 그저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미디어의 내용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생각을 이해하고, 나의 생각을 더 깊게 하는 것, 바로 ‘미디어 읽기’입니다. 그 깊어진 생각을 바탕으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구성하여 표현한다면 ‘미디어 쓰기’가 되겠죠.
나쁜 미디어는 없다
스낵 컬처snack culture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자를 먹듯 짧고 간편하게 콘텐츠를 즐기는 문화 트렌드입니다. 10~15분 정도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부담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주를 이룹니다. 웹툰, 웹소설, 모바일 퍼즐 게임, SNS 피드 같은 것이 대표적인 스낵 컬처 콘텐츠입니다.
그런데 스낵 컬처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자만 많이 먹고 밥을 먹지 않는 아이의 건강을 부모님이 걱정하듯이, 쉽고 단순한 콘텐츠만 즐기느라 소비자가 깊이 있고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없어지는 데 대한 우려입니다. 이러한 우려에는 공감합니다. 최근 미디어들은 점점 자극적으로 변해가고, 호흡은 빨라집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수용자들은 3줄 요약만 요구하거나, 영상을 2배속으로 시청하는 습관도 생기고 있습니다. 이런 조급함 앞에서 멈춰 생각하는 습관은 머나먼 이야기죠.
하지만 패스트푸드점에 가지 말자는 캠페인을 한다고 패스트푸드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많이 만들고, 이용자들이 바람직한 식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현명하게 유도하는 것이 낫습니다.
또한 다른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스낵 컬처를 통해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읽고 배울 수 있습니다. 웹툰을 보면서도 삶의 단면을 이해할 수 있고, 예능의 유행 변화를 보면서 사람들의 욕구를 분석할 수도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사람을 성찰하고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용자가 미디어를 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소비하느냐, 어떻게 활용하느냐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미디어를 소비하는 형태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책을 읽다. TV를 보다. 영화를 보다. 웹툰을 보다……. 같은 미디어인데 왜 어떤 것은 읽는다고 하고, 어떤 것은 본다고 할까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글자가 많으면 읽는 것이고, 이미지가 많으면 보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죠. 또는 가볍게 접하는 것은 보는 것이고, 진지하게 접하는 것은 읽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지(영상)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지금, 그런 구분은 더는 의미가 없습니다. 독서교육의 권위자 돌로레스 더킨 교수는 ‘읽기’를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라 정의했습니다. 문자뿐 아니라 그림이나 영상, 말투, 음악에서도 우리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이 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읽기’의 범위를 책으로 한정하지 않고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읽기 방법’의 적용 또한 더욱 다양한 미디어를 바탕으로 할 필요가 있죠. 눈뜨면 확인하는 SNS, 한 주를 기다리는 힘이 되어주는 웹툰, 밤을 새면서도 놓지 못하는 게임, 매번 신드롬을 일으키는 드라마와 영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모든 미디어가 다 ‘읽을거리’입니다. 가볍게만 치부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세상의 변화와 사람들의 생각이 보일 것입니다. 미디어의 흐름을 제대로 읽을 줄 안다면 문화의 흐름, 세상이 흘러가는 흐름도 읽을 수 있습니다. 주체성과 능동성을 가지고 미디어를 살필 때 빠른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 중심 속에서 나만의 콘텐츠도 나오는 것이죠. 이 책에서는 다양한 미디어에서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함께 하고, 현 시대에 적합한 미디어 읽기, 쓰기 방법을 안내하려고 합니다.
출처: <미디어 읽고 쓰기> 이승화 / 시간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