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고 생각하기!
연구개발팀으로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또 강의 프로그램, 방송 프로그램, 도서 출간까지 모두 기획과 함께 구성된 것이죠. 일상 속에도 기획의 요소가 들어가는 것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서토론지도사 자격증 과정을 교육하며 필수 과제로 독서토론모임 ‘기획안’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기획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죠. 시중에 있는 기획 관련 도서는 광고나 마케팅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 쓰신 책이 많습니다. ‘창조적인 일’ 하면 기발한 광고들이 떠오르기도 하죠. 하지만 이번에는 ‘대중의 마음을 유혹하는’, ‘팔리는’ 기획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스스로의 창조성을 자극하는 기획으로 넓게 생각해보길 권합니다.
기획은 목적을 두고, 주제에 대해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그래서 목적과 컨셉, 실현 가능성을 중요시합니다. 같은 독서교육 내에서도 프로그램의 목표가 ‘인성 함양’인 것과 ‘어휘력 습득’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따뜻한 그림이 가득한 그림책과 낯선 어휘들을 담은 글자책과 같이 선정 도서부터 추가 질문, 적용하는 독후활동의 결이 달라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표와 컨셉’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기획 단계에서 예상 소요 비용, 기한, 가용 인력 등등 많은 단계를 점검하고 통과된 것만 실무를 진행합니다.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죠. 그래서 수많은 기획서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묻합니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기획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양한 양식이 있지만 공통된 요소로 이름(가제), 기획 의도(목표), 대상, 경쟁 콘텐츠 분석, 차별점, 개요, 논의사항 등이 있습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만 점검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요소들이죠. 첫 책인 <책으로 나를 읽는 북렌즈>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름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간단히라도 짓기를 추천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의도를 담아낸 창조적 결과물이니까요. 메일 이름, 사이트 아이디, 나의 애장품 등에도 이름을 짓는 것은 창조적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만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죠. 책으로 나를 읽는 북렌즈, 라고 진 이유는 운영하고 있던 독서토론모임 ‘북렌즈’와의 연관성, 책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기획 의도는 혼자서도 토론하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 이를 통해서 다양한 관점을 마주하고 스스로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의도를 담아 ‘가상 북클럽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나‘ 바로 보기’ 라는 부제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한 모임 참가자 때문이었습니다. 서울 영등포역에서 모임을 하는데, 강원도에서 기차를 타고 꾸준히 참가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지역 내 마땅한 모임이 없어 먼 걸음을 하셨죠. 저또한 지방에서 군생활하고 근무하고 할 때, 모임이 없어 서평 카페를 돌아다니던 기억이 있어 공감했고 감사했습니다. 여기서 시작이 되어 후기만 보고도 모임에 참여한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독서모임 후기를 조금 특별하게 남겨보기 시작했죠.
대상은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성인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면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성인이라고 할 수 있었죠. 독서토론 방법을 가르치는 책이라면 독서토론을 배우고 싶은 사람을 대상으로 삼았겠지만, 여기서는 참여에 좀더 의의를 두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작품을 수록할 것인가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지도하기 유용한 청소년 도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서, 난이도 있는 세계명작 등등. 수록된 작품이 곧 예상 독자가 될 수 있었죠. 저는 성인 대상 독서토론의 경험을 담아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세계명작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경쟁 콘텐츠 분석으로 생각했던 것은 <책은 도끼다>와 <강신주의 감정수업> 이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큰 인기를 누렸고, 저도 좋아하는 작품이었죠. 제가 감히 ‘경쟁 대상’으로 삼은 것은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의 수록된 작품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인기를 얻기도 했었죠. 만약 제가 ‘독서토론’에 좀더 중점을 두었다면 수많은 교육서들을 경쟁 대상으로 삼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책으로 찾는 가치관에 좀더 중심을 두고 싶었기에 이 책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목에서도 ‘토론’이라는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들어가진 않습니다.
차별점이 없다면 굳이 새로운 콘텐츠를 구성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어마어마한 나만의 차별점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박웅현 작가와 강신주 작가의 책은 결국 두 작가가 수많은 작품들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해석을 배제하고 가상의 캐릭터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 나누고, 독자가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품은 ‘시몸장, 황지니, 위흥선, 홍기동, 변강새’의 가상 캐릭터 외에 독자를 포함하여 6명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여백을 넣어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점들이 ’장점‘이 되도록 포장하는 것잊 중요합니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다양한 취향 모임들이 등장하고 있는 이 시대에 더욱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되겠다고 생각했죠.
개요에서는 결국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간략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기획은 결국 구체적인 실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앞에서 아무리 멋있게 말해도 알맹이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가상 북클럽을 진행하기 위해서 어떤 책들을 다룰 것인지, 가상의 패널들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어떤 주제로 자신을 성찰하게 할 것인지 등등을 담았습니다. 큰 틀에서 구성한 목차도 담으면 좋죠. 목차를 보면 어떤 내용을 생각하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설명하거나 준비된 일부분을 샘플로 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맛보기 원고를 통해 구체적인 실체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논의사항에서는 그 외 많은 것을 다룹니다. 기획안을 작성하면서 스스로가 느낀 보완해야할 점, 한계점, 의문사항 등을 다룹니다. 완벽한 기획안은 없습니다. 상호토론은 더 좋은 기획을 위한 과정이니까요. 저는 유명한 책들을 토론에서 다루는 컨셉이다보니 저작권 관련해서 조율해야할 것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에 수록 작품을 바꾸기도 했죠.
출처: <미디어 읽고 쓰기> 이승화 / 시간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