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
말이란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미디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 기술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직접 말을 통해 전달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죠. 학교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발표수업을 진행하고, 직장에서도 브리핑이 필요합니다. 소모임이나 회의를 진행할 때에도 또렷하게 내 의사를 전달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고, 더 나아가면 강연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정보와 생각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발표할 내용을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한 사람이 아니라 다수의 청중을 대상으로 발표를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살면서 몇 번씩은 꼭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발표입니다. 발표안의 개략적인 작성 방식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발표의 목적 파악하고 방향 결정하기
자유롭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리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발표에는 사전에 정해진 목적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그 목적이 잘 맞는지 검토하고 발표의 핵심 메시지를 결정합니다. 발표수업이라면 주어진 과제가 있을 것이고, 강연에는 주최자가, 회사에는 사업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평소 가진 생각이 정해진 발표의 목적과 딱 맞으면 좋겠지만 맞지 않는다면 적당히 조율을 해야 합니다.
청중을 파악하고 구체적 내용 정리하기
발표자와 주최자의 의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청중입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준비한다고 해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끌지 못하면 그 발표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공개강연을 진행하다 보면 같은 내용도 반응이 천차만별일 때가 많습니다. 분명히 강연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모인 청중인데도 어떤 때는 열성적이고 어떤 때는 시큰둥합니다. 강연자는 같아도 듣는 사람은 매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건이 닿는 한 수강생들의 성향을 파악하고자 합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길 원하는지, 인간적인 공감과 따뜻한 메시지를 원하는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나 지식을 원하는지에 따라 강연 내용은 물론 분위기나 화법까지 조절합니다. 어떤 강연에서는 비유와 예시를 많이 들고, 어떤 때는 내 경험을 많이 섞어 이야기하고, 때로는 구체적 정보와 학문적 이론 중심으로 차분하게 전달하기도 합니다.
미디어나 콘텐츠에 관한 강연도 그렇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즐기는 사람, 뉴스와 르포에 관심이 있는 사람, 예능이나 생활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은 각각 미디어 강연에서 원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청중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파악하고, 너무 어려워지거나 뻔해지지 않도록 들어있는 정보의 양과 깊이도 신경 써야 합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만족의 첫걸음이기 때문이죠.
내용의 신뢰성과 진정성 확인하기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내용인 만큼 내용의 정확성과 출처는 확실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사례를 들 때는 사실인지와 함께 현 시대에 유효한 사례인지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마케팅 관련 책을 읽을 때도 뼈저리게 느끼는 일입니다. 오래된 마케팅 책에서 성공 사례로 나왔던 기업이, 지금은 문을 닫은 경우가 있습니다. 최신 마케팅 책에서는 같은 기업을 실패 사례로 다루기도 하죠. 이처럼 예시들은 수시로 업데이트가 되어야 발표의 헛점을 줄이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된 내용들, 읽었던 책과 영화, 실제 겪었던 경험을 언급하면 살아있는 예시가 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이야기도 함께 살아 숨 쉬게 됩니다.
진정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해도 되는 이야기인가’라는 고민입니다.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 “책을 읽읍시다!”라고 아무리 외쳐도 말에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여러 번 강연을 하다 보면 이야기가 상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발표자의 진정성이 떨어집니다. “나는 문학은 읽지 않는다.”고 말했던 강연자가 다른 강연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문학적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문학을 읽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과거에 한 말에 얽매일 수만은 없습니다. 저또한 독서교육을 공부하면서 아날로그 미디어에 집중했었던 시기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속적인 학문적 호기심으로 문화콘텐츠학을 공부하고 이렇게 디지털 미디어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이 많지만, 중요한 것은 말하는 내용에 솔직하고 진지한지, 내가 하는 말에 책임질 수 있을 만큼 깊게 생각해보았는지 하는 점입니다.
시작과 끝, 구성하기
내용이 정해지면 다음은 구조를 짤 차례입니다. 어떤 순서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흥미진진할 수도,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주어진 발표 시간을 고려하여 지엽적인 내용이 지나치게 길어지거나 중요한 내용이 너무 짧아지지 않게 배분합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핵심 메시지 한두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책은 정리된 내용으로 지속적으로 펼쳐볼 수 있지만 강의는 순간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특히 인트로와 아우트로, 즉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맺느냐가 중요합니다. 많은 강연 관련 저서에서도 강조하는 이야기지만, 가벼운 화제로 얼었던 분위기를 녹이는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으로 시작해서 ‘감동’으로 마무리 지어서 여운을 오래가게 하는 것이 전형적이죠. 실제 만남에서도 첫인상과 유종의 미가 중요하듯 발표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아이스 브레이킹이라고 하면 농담이나 우스갯소리를 생각하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유머를 적절히 구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농담이 재미가 없어서 오히려 분위기가 더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고, 또 무심코 편견을 기반으로 한 농담을 던졌다가 불쾌감을 주고 발표의 인상을 나쁘게 할 위험도 있습니다. 무리하게 농담을 하기보다는 발표 내용과 관련된 가벼운 이야기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연결고리를 잘 만드는 것이죠.
인상 깊은 사례나 비유를 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다만 사례의 경우에는 청중의 관심사를 고려해야 합니다. 교육 회사에서 진행한 강의에서, 제품 교육을 할 때는 다양한 제품을 골고루 알고 있어야 맞춤형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 오프닝 예로 제가 고른 것은 다양한 햄버거였습니다. 나름 햄버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야심차게 고른 아이스 브레이킹 소재였습니다. 하지만 청중이 대부분 40대 이상이어서인지, 햄버거는 브레이킹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단단하게 얼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음 강연에서 햄버거 대신 커피를 소재로 삼자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풀려나갔습니다. 내가 관심 있는 것, 내가 전하고 싶은 것에 얽매이기보다 청중의 관점에서 발표의 시작과 끝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자료 준비하기
발표가 계속 이어질 때 끊김 없이 집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깜박 내용을 놓칠 수도 있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미리 시각 자료를 준비하면 듣는 이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자료는 인쇄해서 나누어줄 수도 있고 PPT 등으로 전면에 게시하여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웬만한 교실이나 발표 공간에는 프로젝터 설비가 준비되어 있고, 비쥬얼 시대인 만큼 많은 발표나 강연이 PPT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보통 PPT를 만들 때는 멋있는 디자인이나 눈에 띄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어디까지나 PPT는 발표를 돕는 보조 도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쁘고 화려한 것보다는 강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잘 구성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화려하고 예쁜 템플릿이 오히려 내용 전달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햇볕이나 조명, 속에서 오히려 글자가 안 보이는 경우도 많아 주의해야 합니다. 또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지, 어떤 버전이 호환되는지, 음향장비는 활용 가능한지 등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에 따라 내가 준비하는 자료가 달라지니까요. 미디어 교육 때는 미디어 자료를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인터넷 접속과 음향 장비를 꼭 활용하여 상황에 맞게 준비합니다. 자료 보관도 USB와 메일 등 이중 삼중으로 보관해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출처: <미디어 읽고 쓰기> 이승화 / 시간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