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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왜 불안한가? 어떻게 극복할까?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책리뷰

by 이승화


#불안 #알랭드보통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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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불안'에 대한 심리적, 철학적 고찰

*감상: 비교하지 말자. 아무랑도. 나랑도.

*추천대상: 불안한 사람듣

*이미지: 마스크(효과 있다고 믿음...)

*내면화: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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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철학자 보통씨는 불안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원인과 해답을 친절히 이야기한다. 적당히 학문적이고 적당히 에세이 같은 그 경계를 잘 유지하며 유머도 곁들인다. 이런 스타일은 다시 봐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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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에 대한 불안'을 기본 바탕으로 원인에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한다. 이중에는 '속물근성'이 가장 와닿았다. 지금도 가장 싫어하는 것이 '속물'이다. 뭐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며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최대한 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해법으로는 철학,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를 추천하시는데, 역시나 '철학'이 가장 내 스타일이었다. 생각해서 오는 불안이라면, 더한 생각으로 불안을 극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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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전염병에 대한 불안이다. 코로나19라는 미친 상대를 만나 어마어마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과거 IMF 사태 때와 비교를 하곤 하는데, 그떈 어려서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활발히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온갖 사회의 부조리와 고통이 눈에 밟힌다. '전염병'이란 것이 모든 것을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앞날은 더 아득하게 만든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온다고 하니까... 이 순간도 철학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있겠지...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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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 지위: 좁은 의미에서 이말은 한 집단 내의 법적 또는 직업적 신분을 가리킨다.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을 가리키며 이 책에서는 이 의미가 더 중요하다.


- 지위로 인한 불안: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 불안은 무엇보다도 불황, 실업, 승진, 퇴직, 업계 동료와 나누는 대화, 성공을 거둔 걸출한 친구에 관한 신문 기사 등으로 유발된다.


-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


------ 원인


사랑결핍


- 사랑은 가족에서 나타나든, 성적 관계에서 나타나든, 세상에서 나타나든 일종의 존중이라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정의해볼 수도 있겠다.


- 지위에 관련된 사랑을 받는 사람 역시 낭만적인 사랑을 받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호의적인 눈길을 받으며 편안함을 느낀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이름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 반대의 경우를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정체성을 가진, 누구 못지않은 존재 권리를 가진 개인이기 때문이다.


- 지위가 낮은 사람은 눈에 띄지도 않고, 퉁명스러운 대꾸를 듣고, 미묘한 개성은 짓밟히고, 정체성은 무시당한다.


-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 물질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관점에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자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결정하며, 자신에 대한 사랑 여부도 결정한다.


-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 수도 없다.


속물근성


- 어른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인물들의 행동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불안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 속물근성,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곧 근대적인 의미, 즉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기대


- 오직 우리가 함께 자라고, 함께 일하고, 친구로 사귀고, 공적인 영역에서 동일시하는 사람들만큼 가졌을 때, 또는 그보다 약간 더 가졌을 때만 우리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개인은 사회의 탄생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 사회에 합류한 것이고, 보호를 대가로 타고난 권리를 내주기로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존 로크 <통치론> 통치자들은 민중의 도구이며 전체의 이익을 추구할 때만 복종을 받을 수 있다. => 미국 독립전쟁(1776) => 근대적 사상이 본격적으로 !


-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삶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 미국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자의 쾌락에 희망과 질시가 섞인 눈길을 던졌다. 가난한 시민은 부자 시민을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했으며, 언젠가는 그들의 뒤를 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 우리의 자존심과 가치관을 걸고 어떤 일을 했는데 그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에만 수모를 느낀다. < 자존심 = 이룬 것 / 내세운 것 >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 수모를 당할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 요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 근대 사회에서는 아무리 지위가 낮고 가난한 노동자라 해도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을 하기만 하면, 과거의 어떤 야만인이 얻을 수 있었던 것보다 많은 생활필수품을 손에 넣고 편리한 생활을 즐길 수 있다.


-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 더 큰 물고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대신, 옆에 있어도 우리 자신의 크기를 의식하며 괴로울 일이 없는 작은 벗들을 주위에 모으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면 된다.


- 루소의 벌거벗은 야만인은 가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타지마할에 사는 후손들과는 달리 그들은 아주 적은 것을 갈망하는 데서 오는 큰 부는 누릴 수 있었다.


-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능력주의


- 사회적 위계에서 낮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질적 관점에서 보자면 즐겁기 어려운 노릇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가난이 자존심에 미치는 영향은 공동체가 가난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 좋은 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는 세 가지 메시지.


첫째, 그들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둘째, 세상의 지위는 신이 보기에 아무런 도덕적 가치가 없다는 것. 셋째, 부자는 파렴치하며, 정당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면 서글픈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차피 존중할 가치가 없다는 것.


- 하지만 18세기 이후 이것이 이렇게 바뀌었다.


첫째, 빈자가 아니라 부자가 쓸모 있다.


부는 기업가와 상인의 노력과 야심을 통하여 늘어날 수 있다.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기는커녕 돈을 소비하고 일자리를 제공하여 그들을 돕는다.


그들은 이기심과 탐욕을 타고났지만, 그들은 오직 자신의 편리만 추구하지만, 그들이 고용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부터 그들이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무한한 욕망의 만족뿐이지만, 결국 부자들은 모든 개선의 산물을 빈자들과 나누어 가진다.



둘째, (능력주의 사회에서)지위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SAT 시험이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동해안 부자들의 멍청한 아들딸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가게 주인의 열심히 공부하는 자식을 채우게 되자, 지위가 전적으로 부정한 체제의 결과라고 우기기 힘들게 된 것이다.


부자는 빈자보다 단지 부유할 뿐 아니라, 더 낫다고도 할 수 있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럴 만해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시대를 맞아 정의는 부만이 아니라 빈곤의 분배에도 관여하게 된 것이다. 낮은 지위는 이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그래 마땅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셋째, 가난한 사람들은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어리석음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무리 비천하다 해도 자신에게 모든 기회가 열려 있음을 안다. 만일 되풀이하여 ‘바보’라는 낙인이 찍히면 허세를 부릴 수가 없다. 이제는 자신이 열등한 지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와는 달리 기회를 박탈당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열등하기 때문에 말이다.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다.


불확실성


- 피고용자가 되는 고통에는 고용 기간의 불확실성만 아니라 수많은 작업 관행과 역학에서 오는 모욕감도 포함된다.


누가 보상을 받고 누가 뒤처지느냐 하는 문제는 작업장을 억압적인 분위기로 이끄는 요인이 되며, 이러한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불안이 자라나게 된다.


- 고용의 이런 불안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돈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한 주제로 돌아가 본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일을 기준으로 남들이 우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 우리의 요구와 세상의 불확실한 조건 사이의 불균형은 지위에 대한 불안을 끈질기게 들쑤시는 다섯 번째 이유가 되는 것이다.



------ 해법


철학


- 철학자들은 이성을 이용하여 감정을 적절한 목표로 이끌라고 충고해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진정으로 무서워할 만한 것인지 자문해보라는 것이다.


- 지적인 염세주의: 여론은 모든 의견 가운데 최악의 의견이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생각, 어디서나 받아들여지는 관념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여론의 빈곤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 깨달음은 지위로 인한 우리의 불안, 다른 사람들에게 훌륭하게 보이고 싶은 피곤한 욕망, 사랑의 표시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갈망을 다독이는 데 도움이 된다.


- 철학자들은 함께 모여 연구를 한 것도 아닌데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을 따르라고 권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예술


- 비극 작품은 재앙을 피하는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동시에 재앙을 만난 사람들에게 공감을 느끼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 비극은 실패나 패배에 대한 단순화된 관점을 버리게 하고, 우리 본성의 풍토병과 같은 우둔과 일탈을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사람들이 비극 예술에 담긴 교훈을 받아들인 세계에서는 실패의 결과가 우리를 그렇게 심하게 짓누르지 않을 것이다.



- 유머는 불만을 제기하는 데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겉으로는 즐거움만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은근히 교훈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 웃음은 최고의 익살꾼의 손에 쥐어지면 도덕적 목적을 획득하며, 농담은 다른 사람들이 성격과 습관을 바꾸도록 촉구하는 수단이 된다. 농담은 정치적 이상을 표현하고, 더 공정하고 더 멀쩡한 세상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풍자의 진정한 목적은 악의 교정이다.



- 많은 유머가 지위에 대한 불안에 이름을 붙이고, 그럼으로써 억제하려는 시도라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유머를 보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또 나처럼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정치


- 자신이 사는 사회의 이상 때문에 불안이나 실망을 느낀 사람이라면 이렇게 대충 살펴본 지위의 역사에서도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실을 간파할 것이다. 그런 이상이 돌로 만들어져 굳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사람은 종자를 여럿 끌고 다니고, 아름다운 궁에 살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두 그를 둘러싼 것이지 그의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벗기고 벌거벗은 몸을 보라. 그에게는 어떤 종류의 영혼이 있는가?


- 어떤 것에 계속 눈이 가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것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을 자꾸 보게 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임과 마찬가지다.


-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 이데올로기적인 진술의 핵심은 높은 수준의 정치적 감각이 없으면 그 편파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무색무취의 가스처럼 사회에 방출된다.



- 정치적 관점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다. 분석을 통하여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밝혀 그 뇌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기독교


- 지위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서 다른 데로 방향을 트는 데 죽을병이 어떻게 도움을 줄까? 무엇보다도 사회가 우리를 존중하던 여러 가지 이유를 빼앗아간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나’와 ‘나의 사회적 지위’를 분리시킬 수 있다.


- 죽음에 대한 생각의 가장 큰 효과는 우리가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덜 의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 시간의 아편에는 해독제가 없다.


이런 메시지는 아마 사회에서 무시를 당하여 망각에 이미 익숙한 사람들보다는 현재 높은 지위에 따르는 쾌락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더 우울하게 들릴 것이다.


- 폐허와 낡은 돌들을 바라다보면 성취에 대한, 또는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이 누그러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폐허는 우리의 노력을, 완전과 완성이라는 이미지를 버리라고 한다. 폐허는 우리가 시간에 도전할 수 없다는 사실, 우리는 파괴의 힘의 장난감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 기독교 도덕가들은 불안을 달래려면 낙관적인 사람들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모든 것이 최악으로 흘러간다고 강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은 우리 자신을 더 중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작은 차이와 열등감은 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힘에 대한 경외감에 밀려나게 된다.



-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의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실제로 또는 예술작품을 통하여) 것일 수도 있다.


- 기독교적 사고를 따른다면 다른 모든 사람과 같아지는 것은 전혀 재앙이 아니다. 모든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며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예수의 중심적인 주장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 우리가 중요한 부분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인간적인 깨달음이다.


- 도시의 공적인 공간이나 시설이 그 자체로 훌륭할 때에도 개인적 영광에 대한 야심은 어느 정도 줄어든다. 그냥 평범한 시민이 되는 것이 괜찮은 운명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모든 인간이 귀중하다는 인식을 회복할 수 있을 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그런 인식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과 태도를 조성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어둡게 보지 않는다.


- 모든 사람이 서로 전혀 연관이 없는 두 가지 종류의 지위를 가진다. 하나는 직업, 소득, 평판으로 결정되는 세속적 지위다. 또 하나는 사람의 영혼과 심판의 날에 신의 눈에 드러나는 장단점으로 결정되는 영적 지위다.


- 사람들이 천국과 지상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이런 식으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신자들은 성공에 대한 억압적인 일차원적 비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독교는 위계의 개념을 없앤 것이 아니라, 성고오가 실패를 윤리적이고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재규정했다.


- 그들의 지상의 거처가 아무리 초라하다 해도, 그들의 마음은 (웅장한)성당에 속해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내적인 가치를 반영했다.


보헤미아


- 가장 넓은, 가장 포괄적인 말로 보헤미아의 기여를 요약하자면 그들이 대안적인 삶의 방식 추구에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존중하는 하위문화의 경계를 정하고 의미를 규정했는데, 이곳에서는 부르주아 주류가 과소평가하고 간과하는 가치들이 적절한 권위와 위엄을 부여받았다.


마무리


-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 지위에 대한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좋은 인생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위에 대한 요구는 불변이라 해도, 어디에서 요구를 채울지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우리가 따르는 가치와 관련이 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 이 다섯 집단은 성공과 실패, 선과 악, 수치와 명예의 구분 자체는 유지하면서, 무엇이 각 항목에 속해야 하는지를 재규정하려 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각 세대마다 높은 지위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들을 충실하게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따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럼에도 패자나 이름 없는 사람이라는 잔인한 규정과는 다른 규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정당성을 얻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는 하나 이상의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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