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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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데미안을 만나 내적으로 성장하는 싱클레어의 이야기
*감상: 하고 싶으면서도 하기 싫은 것. 나를 찾는 것.
*추천대상: 데미안, 들어보신 분
*이미지: 길 (자신에게 이르는 내면의...)
*내면화: 나의 내면의 목소리는 뭐라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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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차 대전 이후 1919년에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소설로 큰 인기를 누린 작품입니다. 지금까지도 성장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온실 속 화초같이 자라던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빠져나오게 도와주고, 방탕한 생활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는 계기가 되고, 공허함 속에서 정신 수양의 길을 알려주기도 하는 등,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자신만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면이 많은 청년들의 지지를 얻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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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목차는 두 세계 / 카인 /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 베아트리체 /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 야곱의 싸움 / 에바 부인 / 종말의 시작 으로 나누어집니다. 싱클레이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데미안을 만나고, 멀어지고, 방황하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데미안을 만나고, 함께 수양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나는 과정이 다이나믹하게 드러납니다. 무조건 '데미안'을 멘토 삼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거리도 두고, 고민하고, 싱클레어 자신만의 생각을 다져나가는 과정이 추상적이지만 멋있게 나타납니다. 잡히진 않지만 뭔지 알겠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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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두 세계'와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입니다. 우린 항상 '좋은 것', '밝은 세계'만을 지향하며 살아가지만 이는 반쪽일 뿐이라는 것이죠. 단순한 이분법적 인식을 넘어서 조화된 경험 속에서 또다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인식이 좋았습니다. 또, 성장을 위해선 기존의 세계를 과감하게 혁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을 깨는 새'에 비유한 것도 유명하죠. 성장통이 우리가 홀로서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살면서 주기적으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나중에 되돌아보았을 때, 터닝포인트가 된 적이 많으니까요. 군대, 믿고 따르던 팀장님의 부재, 새로운 영역의 도전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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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발 고난의 시기. 이 힘든 시기도 알을 깨는 과정으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지구 환경의 위기, 괴물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로, 개인적으로는 외면하고 있던 온라인 교육, 디지털 교육을 활성화하는 계기라고 스스로 격려(?)와 합리화(?)를 해봅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잘 이겨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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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의 시도이며 좁은 오솔길을 가리켜 보여주는 일이다. 그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건만,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맛보있다. 죽음은 쓴맛이 났다. 죽음은 탄생이었고, 무시무시한 혁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이기도 했으니까.
- 크로머에의 종속을 새로운 종속으로 바꾸어야 했다. 혼자서는 갈 수가 없었으니까.
- 아, 지금은 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가는 것보다 사람이 더 싫어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 그러니까 그 무엇도 영원히 ‘금지된’ 것은 없어. 바뀔 수 있는 거지.
- 물론 금지된 것을 전혀 행하지 않고도 대단한 악당이 될 수 있지. 그 반대도 가능하고. 그것은 본래 그냥 편안함의 문제야!
-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건 죄악이야. 사람은 거북이처럼 자신 속으로 완전히 기어들어갈 줄 알아야 하는데.
-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 우리가 어떤 인간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
- 새로운 신들을 원하는 것은 잘못이다. 세계에 그 어떤 새로운 것을 부여하려는 것은 완전히 잘못이다! 깨어난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 자신만의 길을 계속 더듬어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어떤, 어떤 의무도 없다.
- 우리 각자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일, 자신 안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소질에 완전히 어울리게 되어 자연의 의지에 맞게 사는 일,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이든 그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일만이 우리의 의무이며 운명이라고 느꼈다.
- 인류의 걸음에 영향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예외 없이 운명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기에 그렇게 능력을 발휘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거지.
-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 누구나 인간이 되라고 던진 자연의 내던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