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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를 보내지마(가즈오 이시구로)

by 이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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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보내지마 #가즈오이시구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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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인간의 장기 이식을 위해 만든 복제인간들, 그들의 성장 이야기

*감상: 인간이란 무엇인가...

*추천대상: 은은한 소설 읽고 싶으신 분

*이미지: 기숙사

*내면화: 내 삶의 목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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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SF소설입니다. 믿기지 않지만, 소재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풀어내는 방식은 오리지날 문학입니다. 소재를 생각하고 읽지 않으면 순수 문학과 같은 느낌입니다. 자극적인 사건의 나열, 창의적인 상황의 힘으로 이어지는 판타지와는 전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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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입니다. 그전에 이미 부커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받았고,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도 받았습니다. 이름은 일본인인데 왜 '대영제국' 훈장을 받느냐, 그는 일본인이지만 일찍 영국으로 건너가 생활했기 때문이죠. 후에 작품 활동에서도 동양과 서양의 색채를 조화롭게 갖고 있다는 평을 듣습니다. 저는 <남아있는 나날>도 재미있게 읽었고 영화도 찾아보았습니다. 이 작품도 영화화되었다고 하는데, 찾아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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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1990년대 후반의 영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캐시'라는 간병인 여자가 자신의 과거 생활 회상하며 시작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의 친구 생활, 기숙사 생활, 우정과 사랑 등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냅니다. 하지만 이들의 공동체 '헤일셤'은 장기 기증을 위한 복제인간들을 모아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인이 되면 의무적으로 '기증'을 하며 삶을 마감하는 운명이죠.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사실 그냥 청춘소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들은 똑같이 사랑하고, 다투고, 화해하며 지내니까요. 주인공 캐시와 절친 루스, 그리고 토미 셋의 이야기가 주축이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목적을 외면하다, 직면하다를 반복하며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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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단어들 '근원자', '기증', '클론' 등을 마주하며 '특이한 소재'를 직면하기 전까지는 요즘 학생들 일상 웹툰과 같았습니다. 기숙사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따돌림, 시기와 질투 등이 매우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질풍노도의 시기는 '진로', 내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흔들리기 마련인데, 이들에겐 이것이 없습니다. 성인이 되면 '장기 기증'으로 몸이 상하고, 그렇게 죽게 되는 운명이 정해졌기 때문이죠. 삶의 목적이 정해진 이상, 이들에게 '꿈'이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전까지는, 어떤 차이점도 느끼지 못했지만 여기서 가장 큰 차이가 드러납니다. 인간의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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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똑같이 복제한 인간이 있다고 하면,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나마 기숙사 생활 중 '시'와 '그림' 같은 창의적인 작품 활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곤 합니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루머도 마찬가지죠. 주인공 캐시는 마지막까지 가장 소중한 것을 '기억'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인간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위험요소가 되고, 오히려 가치를 잃습니다. 외면받게 되죠. 실제로 많은 디스토피아 작품들에 이런 불안 요소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인간들보다 더 뛰어난 복제인간에 의해 점령 당하는 우리의 미래 모습을 다룬 작품들은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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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주인공에게 좀 더 이입해보면 이 '복제인간'들에게 처음부터 분명하게 모든 진실을 알려두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성인이 될 때까지 숨기고 '인간처럼'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좋을까요? 영화 <매트릭스>읠 빨간 약과 파란 약이 생각나네요. 지금 인간은 '의미'를 만들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팩트가 꼭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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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제목 '나를 보내지 마'도 의미심장합니다. 주인공이 그 노래를 들으며 느끼는 감정과, 일반인이 외부의 시선으로 복제인간의 행동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동정한다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죠. 사실 이 모든 것은 '외국인', '난민', '인종차별', '혐오' 모든 것에 드러납니다. 그 모든 기준을 벗어나, 껍데기를 벗기고 본다면 누구보다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주인공들이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앞으로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만큼, 이러한 고민을 더욱 자주, 심도 있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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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원자 이론의 이면에 있는 기본 개념은 단순한 것으로 별다른 논란거리가 아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 각자가 일반인에게서 복제된 개체인 만큼 바깥세상에는 우리의 근원자가 살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p.195

- 선생님은 로이한테 그림이나 시 같은 건 '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다'고 했어. '영혼을 드러낸다'고 말이야. p.245

- "'확신한다'고 했지, 너희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는 걸 말인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 사랑이 그렇게 간단한 거라고 생각하나? 그러니까 너희는 사랑하고 있다는 거지.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말이야. 요컨대 지금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건가?"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빈정대는 것처럼 들렸다. p.345

- 무엇보다도 우리는 인간적이고 교양 있는 환경에서 사육된다면 '학생'들 역시 일반인들처럼 지각 있고 지성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세상에 증명했어. p.358

-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기억은 결코 퇴색하지 않는다. 나는 루스를 잃었고 이어 토미를 잃었지만 그들에 대한 나의 기억만큼은 잃지 않았다. p.391

- 이 책을 읽고 비로소 문학의 우아함과 미묘함에 대해 알게 됐다는 독자의 고백을 저자에게 안겨 준, 우리가 왜 책을 읽는가 하는 물음에 값하는 작품이다.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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