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_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끝과하드보일드원더랜드 #무라카미하루키 #민음사
.
.
*내용: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에서 벌어지는 과학적+철학적+환상적 합주
*감상: 와타나베와 다자키쓰크루의 조상님을 만났다!
*추천대상: 하루키 팬
*이미지: 유니콘과 반사 거울
*내면화: 나의 무의식 속 세계는...?
.
.
1985년 쓰여진 이 작품, 35년 전에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전혀 촌스럽지 않다. 제목 그대로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이라는 서로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하나의 이야기만 따로 몰아서 보고 싶을 정도로 관련 없어 보이다가 어느 순간 묘하게 이어진다. 그 전개 속에서 철학적+과학적+환상적 이야기가 혼합되어 있다. '장르를 규정할 수 없다'는 표현 그대로 하루키 스타일이다. 800p 분량의 슈퍼 벽돌이지만, 역시나 하루키 글은 잘 읽힌다. 뭐이리 말이 많아 ~ 하면서 읽다가도 키득키득하게 된다,
.
.
사실 하루키 작품은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와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두 편만 읽어보았다. 근데 이 두 편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이 작품이 '시작'이니까 원조 조상님이라고 해야겠지. 주제부터 소재, 인물까지 겹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누군가는 재탕이라고 비난하지만 '작가주의' 세계관의 입장에서는 참 또렷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또렷함을 참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반복해주니 좋다. (이번엔 좀 두꺼웠지만...)
.
.
음악과 문학을 좋아하며 시크한 말투의 주인공, 한정된 관심 속에서 적당히 야시시한 주인공, 뚜렷하지 않은 상실감으로 연결되는 플롯들, 웅덩이와 우물, 구멍과 같은 소재들. 전화 속 장면. 뒤틀림에 대한 인식 등등. 책의 구절을 옮겨 적다가 <상실의 시대> 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역시나 스토리라인만 따라가면 독자가 '상실감'에 빠질 수 있다. 이전 작품들처럼 하루키의 문체를, 스타일을, 거기다 상상력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
- "내가 보기에 자네에게는 뭔가가 있어. 또는, 뭔가가 없고. 어느 쪽이든 같은 것이지만 말이야." p.95
- "아무도 진화를 선별할 수 없지. 홍수나 지진이나 눈사태 같은 거예요. 닥치기 전에는 알 수 없고, 일단 닥치면 저항할 수 없으니까." p.95
- "마음은 사용하는 게 아니야." 나는 말했다. "마음은 그냥 거기에 있는 것이지. 바람처럼. 당신은 그 움직임을 느끼기만 하면 돼." p.115
- 사람은 스스로 자기 결점을 고칠 수 없다. 인간의 성향이라는 건 대략 25세까지 결정되고, 그 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p.300
- 내 인생은 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제로다. 아무것도 없다. 지금까지 뭘 만들었지?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 p.302
- 누구에게도 내 기억을 빼앗을 권리 따위는 없다. 그것은 나의, 나 자신의 기억이다. 타인의 기억을 뺴앗는다는 건 타인의 세월을 빼앗는 것과 같은 일이다. p.468
-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어. 부자연스럽고, 잘못돼 있다고. 그러나 문제는 부자연스럽고 잘못된 나름으로 이 마을이 완결되어 있다는 거야.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고 비틀려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이 정확하게 하나로 완결되는 거지. 완결되어 있어. p.484
- 원이 완결되어 있어. 그래서 오래 역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점차 그들이 옳고 자신이 그르지 ㅇ낳나 하는 생각이 들게 돼. 그들이 너무도 정확하게 완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지. p.485
- 인식이란 건 그런 것이야. 인식 하나로 세계는 변화하는 법이지. 세계는 틀림없이 여기에 이렇게 실재하고 있어. 그러나 현상적 레벨에서 보면,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해. p.549
- 적어도 이건 내 인생이니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누가 내 인생의 스위치를 전환하는 건 싫습니다. 내 일은 내 스스로 처리합니다. p.555
-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바로 나 자신인 듯 느껴졌다. 벽도 문도 짐승도 숲도 강도 바람구멍도 웅덩이도, 모두가 나 자신이다. 그들은 모두 내 몸속에 있었다. 이 긴 겨울조차, 아마 나 자신이리라. p.724
- 이곳은 가능성의 세계라는 걸. 이곳에는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없어. p.760
- 총체로서의 인간을 단순히 유형화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품는 비전은 대략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해. 완전한 비전과 한정된 비전. 나는 한정된 비전 속에서 사는 사람이야. 그 한정성의 정당성은 문제가 되지 않아. 어딘가에 선이 있어야 하니까 거기에 선이 있는 거지. 하지만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p.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