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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D 책리뷰] 은교(박범신)

가상 독서모임을 통한 입체적 도서리뷰

by 이승화

사실 반 + MSG 반


<초간단 줄거리>


이적요 시인의 유언대로 죽은지 1년 후, 이적요 시인이 남긴 노트와 서지우 작가가 남긴 노트의 내용이 번갈아 전개되며,변호사와 은교가 이야기를 풀어냄.


발단 1. 고결한 시인 이적요, 제자 서지우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고 있음. 이적요 시인이 서지우의이름으로 발표한 장르소설 ‘심장’이 베스트셀러가 됨.


전개 2. 소설 ‘심장’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둘의 사이가 미묘하게 금이 갔고, 둘 앞에서지우가 알고 지내던 동네 고등학생 한은교가 나타남.


위기 3. 한은교의 모습에 이적요 시인은 사랑을 느끼고, 또 한은교를 사랑하는 서지우와 서로 갈등을 일으킴.


절정 4. 서로에 대한 질투가 깊어지는 상황 속에서, 이적요는 서지우와 한은교가 성관계를 갖는 모습을 목격하고 서지우를 죽이고자 자동차에 손을 댐.


결말 5. 서지우는 정비소에 들러 이적요의 행동을 알게 되지만, 차사고로 인해 결국 죽게 됨. 이적요는 자신의 짓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처형’하고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함.


※ 참여인원:

- 시몸장 (데미얀/ 선과악, 두 신을 섬기는 균형 잡힌 사회, 20's)

- 홍기동 (홍길동/ 또 다른 율도국을 꿈꾸는 밑바닥 혁명가, 20's)

- 황지니 (황진이 / 아름다움을 위해선 영혼도 파는 쿨한 아티스트, 30's)

- 위흥선 (흥선대원군/ 고지식하며 마음 먹은 것은 이루고 마는 욕망 가득 허세남,30's)

- 변강새 (변강쇠 / 짐승 같은 본능을 유지하는 자연인, 40's)


※장소: 소나무숲

※시간: 24시간이 모자라.

※도서: 은교 (박범신)


●시몸장: 반갑습니다 ~ 이번 책은 박범신의 <은교>입니다. 파격적인영화로도 화제가 되었는데요. 파격적인 만큼 ‘은교’란 이름을 널리 알리기도 했는데, 반면에 그 영향으로 책을 보지 않는분들도 꽤 있더라구요. 참 안타깝죠. 영화 내용은 잠시 접고책 내용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전체적인 감상 들어볼까요?


○변강새: 마음으로 읽은 이야기. 하. 더이상 묻지 마시오.


○황지니: 굉장히 아름다운 영화를 본 느낌이었어요. 표현들이 정말 ‘관능적’이었고 내용도 흥미진진했어요.중간중간 삽입된 시들도 정말 좋은 것들이 많았고, 읽는 맛이 났던 책이에요.


○홍기동: 펑펑 울면서 봤음. 남자로서, 두남자의 이야기가 너무 짠했음. 애증의 관계라고 해야하나… 사랑하면서질투하고… 같은 남자지만 남자들 못났다, 싶은 생각도 들었음. 허울뿐인 명분들. 휴.


○위흥선: 책 자체는 잘 읽히고 좋았는데, 소재가 조금 불편해서 감상을 방해했습니다. 정말 아름답게 묘사하기도 하고, 다른 여러 가지 사건을 흥미롭게이끌어가기도 하는데, 어린 여학생을 둘러싼 일들이 조금 자극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뒤끝이 좀 찝찝했습니다.


○시몸장: 그 이적요 시인의 생각, 묘사 같은 것들이 노골적이라서 그런 건가요? 아님 서지우와의 육체적 관계가 그런 건가요?


○위흥선: 둘 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표면적으로는 미성년자와의 육체적 성관계를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적요 시인은 생각만 한 것이긴 한데….


○변강새: 생각만 한 건데, 꼭 이적요 시인이 미성년자와 뭔가 한 것 같지? 뭔가 이미지가 짬뽕돼서? 그러면 안 된다. 진짜…. 휴… 가슴이아프구나!


시몸장: 우려했던 부분이었는데, 역시나 표출이 되네요. 워낙 강한 이미지가 책을 사로잡고 있죠. 제목도 그렇고. 하지만 곳곳에 정말 다양한 생각거리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몰아갈 수 없는 작품이죠. 구체적인 장면들을 이야기 나누며 책의정수를 느껴 보도록 할까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이따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제외한 인상 깊었던 장면들 나누어 볼까요?


○홍기동: 그것들 신기하던대. 시만 쓰면 더 있어 보이고, 추리 소설이나 포르노 소설 쓰면 격이 없어 보이고 그런 거? 그런생각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급수 같은게 있나봄. 무협소설엄청 좋아하는데…. 시집은 따로 사본 적도 없고..

- 난 장르문학이란 말 잘 안 받아들이네. 문학 앞에 붙는어떤 관형사도, 알고보면 층위를 나눠 세우고 패를 가르려는 수작이야. P.67


○위흥선: 책이나 영화나, 어떤 장르를 다루느냐에 따라 다르게 쳐 주는 게있긴 한 것 같습니다. 근데 또 ‘심장’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처럼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것과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홍기동: 근데, 그런 건 허세 아님? 봤을때 좋은 작품, 재미있고 아름다운 작품이 최고인 거지. 장르나형식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건 아니라고 봄.

- 천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일수록 천박한 짓과 천박하지 않은 짓을 악착같이 나누려고 한다는 것은 내가혁명을 꿈꾸던 젊은 날 배운 것이었다. 지식인들은 더욱 그러했다. P.67


○황지니: 그렇게 되면, 대중들의 외면을 받는 작품이나 장르들은 다 사라질수도 있지 않을까요? 대중성과 별개로 우리가 더 값어치를 매겨서 챙겨주어야 할 것들은, 챙겨줄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대중의 인기와 별개로 예술 자체로서의어떤 절대적 가치도 있다고 생각해요.


○시몸장: 사소한 부분 같지만 전체적인 윤곽을 잡아주는 부분이죠. 이적요 시인이사후 1년 뒤에 노트를 공개하기로 한 것도 결국 사회에 ‘엿’을 먹이기 위한 것이잖아요. 기념비를 세운 뒤에 다시 무너뜨리기 위한? 그런 면에서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볼 수 있죠.


○황지니: 그런 큰 그림보다 저는 아까 말했듯이, 좋은 표현들이 정말 많았어요. 처음 ‘관능적이다’부터시작해서, 이적요 시인이 은교의 행동을 묘사하는 그 단어 하나하나. 정말토끼 같고 다람쥐 같은 은교의 모습이 떠올랐다니까요.

눈이 내리고, 그리고 또 바람이 부는가. 소나무숲 그늘이 성에가 낀 유리창을 더듬고 있다. 관능적이다. P.13 쫑긋, 뿅뿅, 뽀르르



○변강새: 묘사하면 아름다운 묘사도 있지만, 극사실적인 묘사들도 있지. 한 남자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살아있는 묘사들도 일품이었다구. 이건남자들만 알걸. 흐흐.


○시몸장: 네네. 역시 한눈 팔 수 없는 오늘이 되겠군요. 저는 그 이적요의 노트를 통해 보는 이적요의 생각, 서지우의 일기를통해 보는 서지우의 생각이 너무 흥미로웠어요. 둘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굉장히 많잖아요. 서로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데, 다 틀리죠. 오해의 싹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구성 자체가 제가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여러시각이 겹치고 충돌하는. 안타까운 건 둘 다 죽은 뒤에 나오는 거라서…되돌릴 수 없다는 것.


○홍기동: 맞음. 그 이적요 할아버지 자꾸 ‘멍청한놈’이라고 하는데 내가 다 기분 나쁘던데. 그리고 서지우아저씨도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음. 이적요 할아버지 다 틀림. 특히마지막에도 정비소도 가고. 어리다고 사람 무시하면 안 되지!


○변강새: 그럼 뭐 서지우는 다른가. 서지우도 건방지게 이적요 할아버지를 속이려고하다니. 늙으면 그냥 늙는게 아니란 말이지! 다 내공이 쌓이는거라구. 그냥 솔직히 다 이야기할 것이지, 눈치만 보고 판단하고. 쯧쯧. 보이지 않게 옐로카드 받고 있었잖아.


○황지니: 저는 같은 여자로서… 은교도 일기장 같은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생각했는데. 어떤 감정이었는지 정말 궁금하더라구요. 어떤생각이었는지…


○시몸장: 그르게요. 저도 정말 궁금한데, 인물들이야기는 좀 아껴둘게요. 그 이적요 시인과 서지우의 첫 만남에 나오는 ‘별’에 대한 이야기. 참인상 깊었어요. 별은 그대로 있는데 우리가 의미부여를 하는 거잖아요?‘감정이입’이라고 하면서 배웠던 것 같은데, 느낀게 아니라 배운 것들이다보니 정말 헷갈리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내 것인지, 남이 주입한 것인지….

- ‘아름다운 별’이라는 건 그의 생각이 아니라 세상이 그에게 주입한 생각이었다. 정말 무지한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주입된 생각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맹신하는 자야말로 무지하다. p.30

○황지니: 저도 그런 생각 많이 해요. 감정을 이입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감정이 이입된 상태의 사물에 익숙해져 버린 거죠. 여기서는 ‘별’이 나왔지만 ‘꽃’이나 ‘나무’ 같은 것들도그렇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었어요.


○위흥선: 첫 데이트 장면에서 화가 많이 났습니다. 자리가 있는데도, 이적요 시인과 은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식당에서화가 났고, 또 감자탕 집에서마저 노란 새 옷에 감자탕을 흘렸을 때,그때도 너무 화가 나고 슬펐습니다. 정말 큰 마음 먹고 준비한 남자의 데이트였는데, 얼마나 상심이 컸을지! 첫 데이트는 남자의 생명인데 말입니다.


○홍기동: 저는 그 장면에서 반성 많이 함… 낯선눈으로 어르신들 보고 그랬는데, 그러지 말아야겠음. 미성년자출입금지 같이 법적으로 막는 것도 아닌데, 휴. 그분들 때문에우리가 웃고 즐길 수 있다고 했을 때도 또 찔끔함.

내겐 아예 청춘이 없었다. 젊을때에도 중늙은이처럼 오로지 일만 했다.유신시대엔 십 년이나 차가운 옥방에서 살기도 했다.너희가 지금 누리는 달콤한 인생을 누가 주었느냐고, 어디로부터온것이냐고, 마음대로 너희들만 누릴 권리는….. 없다고. P.135


○변강새: 맞아. 어르신들도 똑 같은 사람이라고. 이적요 시인 사다리 올라가는 거 봐봐! 훔쳐보기 좋아하는 건 애나어른이나 다 똑같다구! 어렸을 때는 뭔지 몰라서 궁금하다고 해, 나이들면다 알아서 더 궁금한 법이야!


○위흥선: 그걸 그냥 보지 않고 참으셨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처용가 정신으로 흘러 버렸으면 이런 슬픈 결말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둘은 나의 것이요,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래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쩌나


○시몸장: 처용가는 신이죠. 존경합니다. 맞아. 그 선물, 물어보고싶었어요. 이적요 생일 선물로 은교는 그 빨간 팬티 주고 서지우는 안마기 주잖아요. 그 젊음을 지향하는 것과 늙음을 인정하는 것 사이의 느낌은 알겠는데… 어떤선물이 더 좋을 것 같으세요? 전 안마기가 더 좋을 것 같은데.. 기분을떠나서 실용성을 따져야 하지 않을까요. 선물 주기도 어려워, 참..


○황지니: 선물이란 게 참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죠. 실용성만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란 말입니다. 그러니 여기서은교가 점수를 따는 거예요! 반성하세요!


○변강새: 헌화가 부분도 빠질 수 없지. 그이적요 시인이 멋있게 거울을 가져다 주는 부분! 정말 헌화가랑 매치가 잘 되는데, 또 헌화가가 얼마나 슬프냔 말이야. 목숨을 걸고 꽃을 가져다 주는데, 받는 사람이 부끄러울까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 너무 슬프지 않아? 내가 내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그렇게 당당하지 못하다니!

- 붉은 바위 끝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 견우노옹, <헌화가>에서 p.322


○홍기동: 아 클럽에 얽힌 장면들은 다 너무 싫음. 노는 것도 더럽고 노랑머리를 비롯한 매니저들 막 대하는 서지우도 너무 싫음.완전 갑질. 근데 그 노랑머리는 더 맞아도 싼 것 같기도 하고…


시몸장: 이제 자연스럽게 인물들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볼까요? 이적요, 서지우, 한은교셋이 이루는 삼각관계가 참 불안불안하게 형성이 되죠. 근데 묘한 건 이러한 삼각 관계 속에서 모두가‘외로움, 소외감’을느낀다는 거예요. 그런 말을 한 마디씩 다 하거든요. 한번심도 있게 나누어 봅시다. 우선 이적요와 한은교의 관계?


○위흥선: 우선 이적요 시인은 한은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은교의 ‘젊음’. 그이미지를 사랑한 겁니다. 사실 이적요 시인은 어디에서나, 어떤것도, 만들어서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수성’이 있는 것이 문학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리 좋지 않게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변강새: 책을 읽은 거야, 뭐야. 시작하자마자 사랑 고백으로 시작하잖아. 마지막에도 사랑고백으로 끝나고.

- 아, 나는 한은교를 사랑했다. P.11
- 은교. 아, 한은교. 불멸의 내 ‘젊은 신부’이고 내 영원한 ‘처녀’이며, 생애의 마지막에 홀연히 나타나애처롭게 발밑을 밝혀 주었던, 나의등롱 같은 누이여.


○위흥선: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변호사가 은교를 보고 하는 말도 있고, 또 은교가 이사갈 때도 다시금 반복하지 않습니까. 은교의 의젓한 모습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봤던 은교는 욕망이 지어낸 허물이었다고. 그런데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좋은 매개체로서 고마운 정도?

이적요 시인이 본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란 은교로부터 나오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단지 젊음이 내쏘는 광채였던 것이다. 소녀는 '빛'이고, 시인은늙었으니 '그림자'였다. 단지 그게 전부였다.그러나 시인과 달리, 서지우만은 은교의 모든 실체를사실 그대로 알고 있었다. p.163
- 나는 비로소 그동안 네가 가진 아름다움의 절반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때까지 나는 너의 아름다움을 본 것이 아니라 나의 욕망이 지어낸 허울을 봤을 뿐이었다. p.393


○변강새: 말은 그렇게 하는거지. 미안하니까. 그 호텔 캘리포니아 노래 부르면서 상상하는 부분 보면, 이적요 시인이 17살이 되고 은교가 70살이 된단 말이지. 그러고도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해서 사랑을 한단 말야. 그냥 젊음을 그리워하는 거라면 혼자만 젊어지면 끝이지만, 늙은 은교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은교 자체에 대한 사랑도 무지 크다는 거지.


○황지니: 근데 그 과거의 D라는여인이 계속 나오잖아요. 습관적으로 그 여자를 생각하는 것을 봐서는,은교 또한 D라는 여자를 떠올리는 이미지 중에 하나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게 남자의 첫사랑이라는 건가요? 어차피 떠올리는 이미지가 같다면, 어느 여자라도 대체가 가능한 건가요? 휴.


○홍기동: 은교가 좀 끼가 있는 거 같긴 함.살갑고. 그렇게 앵기면 남자들이 어떻게 할 수가 없지….근데 마지막에 은교가 이적요 시인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는 게 놀라웠음.


○시몸장: 그런거 보면 순수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조금만 불편함을 느꼈어도 그렇게 애틋하게 이적요 시인을 대하지는 못했을 텐데,거리낌 없이 대하잖아요. 키스도 그렇고. 그렇다보니그리 깊게 생각을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해요.


○위흥선: 순수하다는 말을 은교한테 쓰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문란한 고등학생은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서지우와의 관계도그렇고 그 전에 이미 경험이 있었다고 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이적요 할아버지와의 관계에서는 그나마 부성애를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빠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더 의지가 되고 끌릴 수는 있었을 것 같습니다. 순수라기 보다는 그것도 필요에 의한, 결핍을 보충하는 과정이라고생각합니다.


○황지니: 육체에 대한 관념이 좀 오픈되어 있을 수도 있죠. 아담과 이브가 옷을 벗었다고 노출증 환자라고 하진 않잖아요? 그냥태생의 자연스러움, 순수함이죠. 몸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려고하진 않잖아요. 그 서지우와 차 안에서도, 서지우가 애무를하는데 영어 단어를 외우는 모습. 그게 은교의 육체관(?)을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에도 이까짓 거라고 하면서 가슴을 만지잖아요. 은교에게 ‘순수함’이라는말은 어느정도 매치가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변강새: 사실 은교가 어떻게 이적요 시인을 생각했는지는 조심스럽구만. 하지만 그건 확실하지. 이적요 시인의 본능을 불타오르게 하는 역할을했다는 것. 청춘을 선물했다는 것. 복스러운 존재지.

- 단언하거니와, 은교가 내 죽음의 열차를더 빠르게 달려가도록 내몬 것은 아니다. 오히려그 반대라고 말하는 게 옳다. 은교는나에게 슬픔과 함께, 생애를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청춘의 광채와 위로를 주었다. 사실이다. P.194

시몸장: 자연스럽게 그럼 서지우와 한은교의 관계도 이야기 나누어 볼까요? 뭔가 티격태격 하면서도 할 건 다 하는 묘한 관계였죠? ‘미성년자’라는 것은 잠깐 내려놓고 이야기 나누어 보죠.


○위흥선: ‘미성년자’가 가장 중요한거 같은데 왜 내려 놓자고 하는 겁니까? 본격적으로 사건이 발생하는 부분인데!


○시몸장: 우선 ‘미성년자’라는 것이 사회에서 정한 규범이잖아요. 사랑과 같은 감정은 그런 규범과좀 분리해서 다루는 게 좋을 것 같고요. 또, 여기서는 이적요와서지우의 대비에 좀더 초점을 두는 게 좋을 것 같으니 단순화 해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홍기동: 우선 저는 서지우 아저씨가 굉장히 공감이 많이 갔음. 뭔가 스스로 하기 보다 끌려다니는 느낌. 거기다 열등감도 많이 가지고있는데, 사실 누구나 이적요 시인처럼 천재 같은 감수성을 가질 수도 없는거고.. 그런 입장에서 그나마 ‘먼저’ 취했던게 은교 같음. 열등감 가득한 서지우 입장에서 유일하게 먼저 쥐고 있던 것? 사랑보다는 뺏기기 싫은 것 같은 느낌?


○변강새: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을지 모르지만….남자들 사이에 여자가 끼면 일이 복잡해지지… 선착순도 아니고 순서는 크게 의미가 없어지지. 결국 전쟁인거야! 직접적으로 원한다기보다 지기 싫은거지. 승부욕!


○시몸장: 근데 그냥 승부욕치고는 그리워하는 모습들도 보이지 않나요? 특히 술집에서 다른 여자들이랑 노는데도 은교 생각하는 거 보면. 좀 마음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나요?


○황지니: 근데 그런 것 치고는 은교한테 너무 까칠하게 대하는 것 같았어요. 잔소리만 하고. 오히려 저는 은교는 서지우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엄마한테 맞고서 이적요네 집에 찾아왔을 때.그 전에 사실 서지우한테 전화했는데 무시당한 거잖아요? 그 순서가 여자들한테 얼마나 중요한건데요!


○홍기동: 헐, 생각도 안 해 봤는데. 은교가 서지우 엄청 디스하지 않음? 이적요 시인이랑 비교하면서? 그래서 서지우는 아웃 오브 안중인줄!


○황지니: 그게 다 질투를 유발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어요. 이적요 시인이랑 사이좋게 보이면서 역으로 서지우를 자극하기 위한!


○변강새: 그렇다면…. 그 요물 같은계집애가 우리 이적요 시인을 농락한 것인가….


○위흥선: 소설 그만 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은교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사회적 도덕 체계를 습득하지 못한 그냥 단순한 여자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자면 하고 말자면 말고.


○홍기동: 은교가 무슨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서지우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꿈틀거리게 하는 역할은 한 것 같음. 그냥 무작정 이적요 시인을따라가며 쥐 죽은 듯이 있는 것을 넘어서, 대적할 수 있게 해준 계기?그러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된 것 같음. 은교마저 없었으면정말 단 하나의 우위라고 해야 하나, 그걸 가져볼 수도 없었을 것 같음. 서지우 아저씨는… 평생…


○황지니: 아 은교도 노트가 하나 있어야 하는데…


시몸장: 그럼, 마지막으로 이적요 시인과 서지우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개인적으로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해서 맨 마지막에 배치했습니다. 하하.


○홍기동: 아 개인적으로, 둘 중에서는서지우 아저씨 편을 들어주고 싶음. 우리가 누구나 이적요 시인처럼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열등감을 껴안고 살고 있기 마련인데 자꾸 ‘멍청한 놈’이라고 하고. 무서운 이적요 시인 밑에서 불쌍함. 왜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계속 밑에 있는지, 답답했음!

- 한 번 흐르기 시작하자 봇물이 터진 듯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내가정말 한심해서 눈물이 나왔고, 그동안의불안증이 떠올라 눈물이 나왔고, 내재주 없는 것이 너무 불쌍해 눈물이 나왔다. P.293


○변강새: 여기서는 싸우는 부분만 나와서 그렇지… 둘이 여행도 가고 사이도 좋았다고 하지 않나. 정말 아버지와 아들같은 사이였을 거라구. 그놈의 ‘심장’이 베스트셀러가 되기 전까지는! ‘내새끼’라는 표현과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나!

-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선생님!
오랫동안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쳐도 좋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P.177


○위흥선: 저도 그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심장’이라는 소설이 문제의 발단이 아닐까 하고. 근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결국 이적요 시인이 사회에 복수하기 위해 서지우를 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었습니다. 그러니 지옥의 길로 스스로 들어간 것이라고, 이적요 시인은 스스로 파멸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몸장: 그렇게 보면 굉장히 영웅적인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기사도 정신으로 자신의 어린 신부 은교를 범한 추악한 서지우를 처단하고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으니. 스스로도 계속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잖아요. 의도적으로.


○황지니: 그런 방향으로 생각해 보면, 서지우의 죄를 카운트하는 장면도 잘 맞아 떨어지네요. 걸리길 기다리는 듯한, 죄를계속 쌓길 바라는 모습이었어요. 헤어지길 바라는데 헤어질 구실을 찾는 커플처럼. 명분이 필요한 느낌이 좀 있긴 했어요.


○홍기동: 근데 그건 조금 오바인듯. 그게무슨 의미가 있음? 이적요 시인한테?


○변강새: ‘늙음’과 ‘젊음’을 두고 봤을 때, ‘늙음’이 ‘젊음’을 이길 수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서지우를 처단하는 것은 버릇 없는 ‘젊은것들’에 대한 벌일 수도 있다는 거야. 팔씨름부터 골프. 서지우가 ‘노랑머리’라는무기를 쓰고 이적요 시인은 ‘자동차’라는 무기를 쓰며 서로공격을 한 거지. 흥미진진 하구만!

-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음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자연이듯이.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라고, 소리 없이 소리쳐, 나는 말했다. p.250


○위흥선: 그렇게 세대간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좀 무리수 같습니다. 서지우도 40이 다 되어가는 나이면 단순한 ‘젊음’의 축에 끼는 것도 애매하지 않습니까. ‘젊음’의 이미지는 은교가 가장 강한데 사실, 은교는 사실 양쪽에 불만 붙여주고 크게 관여는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황지니: 이 두 스승과 제자 사이에 문학이 빠질 수 없는 것 같아요. 여기서 스승이 가지고 있는 것, 제자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그 ‘감수성’이란 것때문에 ‘멍청한 놈’이란 말도 나오고 거기서 열등감도 갖게되고 하는 거잖아요. 그거 빼곤 이 둘의 관계가 성립이 되지 않잖아요.이렇게 깍듯하게 모실 필요도 없고요.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이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건. 그런 힘인 것 같아요.


○시몸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이런 문학적인 게 자연스럽게 ‘정체성’과도 연결이 되잖아요. 서지우는 나름 거짓 작가 노릇을 하고 있으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이적요 시인도 자신이 만든 이미지지만 그 이미지 안에서 또 고뇌하니까 다른 산문 작품들을 남긴 것 같아요. 그 교집합이 ‘심장’ 이란 소설이고 서로 이 비밀을 누가 먼저공개할까 의심하기도 하는 것들. 비밀을 공유한 사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네요.

내 인생에서 단 한번이라도, '나의 조국'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던가.
지금은 물론 과거에서조차 단 한 번도 선생님보다 젊었던 적이 없었다. 당신이가진 면도날 같은 감성, 마모되지 않는 야수성, 뜻의 장대함, 그 무엇도 버텨내는 에너지 그리고 도저한 욕망이 내겐 없었다.나의 현재에게, 미래에게 '불'을 켜대고 싶지만 내겐 성냥 한 개비도 가진게 없었다.쓸쓸했다. p.260


○위흥선: 결국 서지우도 이적요 시인의 이미지를 사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귀한 문학인을 사랑하니까, 그의 본능을 더럽게 보는거죠. 이적요 자체를 사랑했다면 그 본능과 사랑도 인정해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홍기동: 단순하게 보면,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것 같음. 이적요 시인은 젊음을 가질 수 없고,서지우는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지 못하고, 또 반대로는 서로 가지고 있으니까 질투가 끊일수 없는 것 같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것만 보이니까? 그렇다고 물물교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답답하네.

- 질투심은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며, 맹목적 잔인성을 갖는다는말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선생님이다. 질투심이 꼭 정열의 증거는 아니라고 했다.
정말 질투심이었다면, 나의 질투심이, 은교를 선생님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질투심인지, 아니면선생님을 은교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질투심인지, 아니면 선생님을 은교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질투심인지, 그것이 아니면 재능에 있어서 선생님의 그림자조차 따라갈 수 없는 고통에 따른 질투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p.225


○황지니: 이런 질투는,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얼마나 다른 것을 갖고 싶냐에 따라 강자와 약자가 정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무섭죠. 객관적 지표가 통하는 게 아니니까. 많이 원할수록 더 약자라는 사실이 끔찍해요. 인간의 욕망이란.


○시몸장: 둘이 어떤 관계이든지 이 둘의 결말은 정말 말할 수 없이 슬픈 것같아요. 죽이려고 마음 먹은 순간에도 나도 모르게 ‘여보게’라고 부르는 이적요 시인의 모습. 이적요 시인의 짓을 정비소에서 확인하는그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 이라는 말이 툭 나오잖아요. 어떤 사이라고 우리가 결정지어도 이 결말을 통해서 둘의 사랑 자체는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이런 결말이 아쉽지만, 여운은 참 깊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목을 다시 짓는다면, 어떤 인물의 이름으로 짓고 싶으신가요?


○변강새: 당근, 적요지! 포스가 남다르지 암.


○홍기동: 지우라고 짓고 싶음. 연민. 공감도 많이 감. 힘을 실어주고 싶음!


○황지니: 그래도 은교가 두 남자 사이에서 다리 역할? 휘발유 역할? 하튼, 사이에 있는 느낌이 있으니 은교도 괜찮은 것 같아요. 다시, 은교!


○위흥선: 이적요 시인의 자멸기, 세상에 대한 울부짖음이라고 했을 때, 적요가 좋을 것 같습니다.


○시몸장: 저는 뒤늦게나마 가장 많이 흔들리고 고민하며, 삶을 진지하게 대한 쌍꺼풀 지우에게 주인공 자리를 주고 싶네요.


이렇게 1부 내용은 마치고 2부 때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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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었다고 느낄 때?

내가 늙었다고 느낄 때?

내가 생각하는 청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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