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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화 Oct 31. 2023

[듣기 태도] 화자와 관계가 어떤가요?

말귀가 어두운 당신을 위한 처방전

고등학교 때 윤리 선생님은 괴짜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스스름없이 하셨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 오자마자 첫 시간에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이 학교에 오게 된 이야기를 말씀해 주셨어요. 이 지역이 공기가 안 좋아서... 근무하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어서 지원했다고, 얼른 점수 따서 교감, 교장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셨습니다. 멋있죠? 아주 솔직하신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선생님이 담당하신 과목과의 부조화로 인해서 많은 학생들이 반발심을 가졌어요. 그러다 보니 수업 내용도 귀에 잘 안 들어오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업은 깔끔하게,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주신 것 같은데 반발심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어요. 딴지 걸기 바쁘고, 딴짓을 하며 집중하지 않았어요. 이 모든 것이 화자에 대한 나의 감정적 반응 때문이에요. 이런 심리 태도는 중요한 요소니까요.




몇 가지 상황을 나누어 이야기 해볼게요. 첫째, 청자가 화자를 무시할 때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예요. 상대방 나이가 어려서, 전문성이 떨어져서, 인성이 별로라서 등등.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신뢰를 잃은 화자의 말은 청자에게 와닿기 힘듭니다. "꼭 들어야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관심도와 집중력이 사라집니다. "귓등으로 듣는다!"라는 말이 있죠? 다 튕겨내는 것이에요. 귀기울여 듣기 위한 정성을 보이지 않게 되고, 당연히 이해도 안 됩니다. 그리고 "역시 별로였다!"라는 평을 하기 쉽죠. 



저또한 20대 중반부터 교육회사에서 근무를 했는데, 본사 차원에서 지역에 교육을 나가면 현장 선생님들한테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몇 살이에요? 애는 키워봤어요?" 나쁜 의도는 아니지만, 금이 간 신뢰도 때문에 교육의 집중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공갈 안경을 쓰고 다닌 적도 있어요. 지적이고 노숙하게 보이려고 말이죠. 이후는 여러 가지 커리어가 쌓이면서 그 부분을 메웠어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 전에 자기소개를 열심히 합니다. '저는 전문성이 있는 화자입니다.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세요. 가치 있는 내용을 들려드릴게요.'라는 의미죠.


한 학생이 A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는데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이때부터 학생은 A 선생님을 은연중에 무시합니다. 그럼 그 선생님의 수업 자체가 다 가볍게 들릴 거예요. 오히려 그런 사건이 없었던 친구들은 "A 선생님, 재미있게 잘 가르치신다."라고 이야기해요. 학생은 부정하면서, 이런저런 사건들을 이야기할 겁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흔들리지 않아요. "그 문제는 잘 몰랐을 수 있는데, 그래도 설명은 잘하셔~ 목소리도 좋고~!" 결국 이런저런 편견이 나의 듣기 태도를 부정적으로 만들고, 듣기 내용에도 영향을 미치면 결국 나만 손해입니다.


둘째, 청자와 화자의 사이가 좋지 않을 때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부정적인 관계가 되었을 때도 상대방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요. "으~ 듣기 싫어!"라는 마음이 먼저 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귀에 와닿지 않습니다. 더 심할 때는 말을 왜곡하고 오해해서 더 ~ 부정적으로 대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오히려 반항하기도 합니다! 특히 가족간 잔소리는... 말 안 해도 아시죠...?


앞에서 말했던 윤리 선생님처럼 반발감이 생기면 잘 듣지 못하지만, 호감을 갖고 있는 선생님 과목은 더 열심히 듣고, 공부도 부지런히 합니다. 더 집중해서 듣고 의도를 고민하고 되새김질하니까 내용 이해도 잘 되겠죠. 사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가 좋은 상사, 타사 직원과의 소통은 굉장히 원활하지만 특정 직원과 불통이라면... 감정의 요소가 개입되어 있을 수 있어요. 나아가서 "이익을 독차지하려고 수 쓰는 거 아니야?"와 같은 음해성 추론까지 합니다. 주의해야 해요.


나아가서 상대방을 무서워하는 경우는 더욱 의기소침해집니다. 상사와 부하의 관계,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등등. 상급자의 지시를 들을 때, 하급자가 긴장하거나 겁을 먹으면 머리가 멍해집니다. 긴장해서 잘 안 들리고, 말귀 어둡다고 혼나고, 혼나니까 겁나서 더 안 들리고, 더 혼나고... 악순환으로 반복되며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셋째,  청자와 화자 사이가 너~무 편할 때입니다. 물론 편하면 좋죠. 긍정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니 대화도 술술 ~ 척하면 척!일 수 있어요. 하지만 너무 편한 사이라서 무례하게 대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건성으로 듣는 겁니다. "ㅇㅇ", "뭐라고?", "다시~" 대충대충 들으면 당연히 이해가 안 됩니다. 약간의 긴장감이 있어야 주의집중을 하게 됩니다. 집중해서 들어야 할, 소중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야 귀를 쫑긋하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편하게 막 대하지 마세요!


더 심각한 문제는 쉽게 상대방의 말을 끊는 거예요. 나쁜 의도는 아니더라도 대화를 나누다 이런저런 이유로 "됐어~ 그만해!", "다른 이야기 하자!" 등등 맥을 끊는다면, 상대방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반응한다는 것 자체도 집중해서 들어야 할, 소중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적극적으로 리액션을 하다가, 인터셉트하는 경우도 있고요. "맞아, 맞아~ 나도 그랬는데~" 치열한 예능에서 볼 수 있는 토크 빼앗기 기술! 대화 중에는 항상 말을 한 사람이 매듭을 지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세요.




크게 세 가지 상황을 살펴 보았어요. 첫째, 청자가 화자를 무시할 때. 둘째, 청자와 화자의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셋째, 청자와 화자 사이가 너무 편할 때. 여기서 선행되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화자와 어떤 관계인가?
그 관계가 듣기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질문을 자주 해주세요. 그럼 듣기에 대한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 보면 나의 듣기 태도도 정리가 됩니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적극 활용해야겠죠! 중간만 되어도 화자를 탐색하면 많은 단서를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화자의 존재가 나의 듣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처방전은 화자의 존재를 지우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일까 싶죠? 가장 쉬운 예로 블라인드 테스트 같은 거예요. 상대방의 얼굴이나 학벌이 판단에 방해가 된다면, 과감히 지우는 거죠.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요? 사람을 지울 수는 없으니 살짝 거리를 두는 겁니다. 살짝 거리를 두는 여러 방법이 있어요. 우선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눈 마주치면 기에 눌릴 수 있어요. 시선 처리가 힘들면 얼굴 근처 어딘가를 보세요. 그리고 그의 입모양, 말소리에 최대한 집중해요. 듣기 평가하듯이 말입니다. 저 이야기를 듣고 퀴즈를 푼다는 마음으로, 메세지에 몰입하다 보면 무아지경이 됩니다!


더 상위 기술로는 상대방을 상상 속에서 대체하는 겁니다. 이건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한 고급 기술이에요. 1차적으로 그 사람의 좋았던 부분을 바탕으로 긍정적 상상을 할 수 있고요. 2차적으로 완전 다른사람이라고 상상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밉상인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의 (얼마 없는) 좋은 점을 막 생각하며 경청해 줍니다. 나도 모르게 오랜 친구를 막 대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친구의 이야기를 상사의 업무 지시라고 생각하며 들어줍니다. 엄청 부담스럽고 무서운 상사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상사가 잘해주었던 아주 작은 일들을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떠올려 보고, 나아가 편한 친구라고 생각하면 긴장하지 않고 들을 수 있어요. 앞에서 강의하는 선생님과 관계가 좋지 않다면?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정 없다면, 다른 선생님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실력이 의심스럽다면? 일타강사라고 생각하세요. 너무 친해서 장난치고 싶고 집중이 안 된다면? 처음 보는 특별 강사라고 상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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