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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화 Dec 19. 2015

[4D 책리뷰] 설국(가와바타 야스나리)

가상 독서모임을 통한 입체적 도서리뷰

<초간단 줄거리>

주인공: 고마코, 요코, 시마무라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는 도쿄에 가족을 두고 한적한 시골, 눈의 고장 '설국'으로 휴가를 간다. 

→ 그러다 게이샤(기생?) 고마코를 만나고 묘하게, 적당히 사랑하는 관계가 된다. 

→ 도쿄와 설국을 오가는 시마무라, 고마코의 사랑은 깊어지고, 시마무라는 묘한 분위기의 요코에게도 끌린다. 

→ 시마무라, 고마코, 요코의 묘한 관계는 요코의 사고(자살?)로 마무리 된다.            

                                            

# 참석 인원: 

- 데미얀('데미안'의 그 데미안의 후손 / 선과 악, 두 신을 섬기는 균형 잡힌 사회자)

- 횽길동('홍길동전'의 그 홍길동의 후손 / 또다른 율도국을 꿈꾸는 밑바닥 혁명가) 

- 죠르바('그리스인 조르바'의 그 조르바의 후손 / 짐승같은 본능을 유지하는 자연인)

- 보바뤼('마담 보바리'의 그 보바리의 후손 / 아름다움을 위해선 영혼도 파는 아티스트)

- 거츠비('위대한 개츠비'의 그 개츠비의 후손 / 무엇이든 이루고마는 욕망 가득 허세남) 


# 장소: 캐피톨

# 시간: 24시간이 모자라 

# 내용: 설국 (가와바타 야나리)


▶데미얀- 반갑습니다. 이번 책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입니다. 첫문장으로 유명한 책이죠. 첫문장 한번 읊어주고 가야겠네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p.7                    

캬. 노벨  문학상까지 탄 작품인데, 전체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보바뤼- 아 너무 아름다운 책이었어요. 문장 하나하나 보는데 그 장면이 딱~하고 떠오르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짧았지만 강한 인상을 받은 책이었어요.

 

▷죠르바- 난 이게 뭐지... 했는데. 왜 이게 상을 받은 거야! 하나도 못 알아먹겠던데. 그냥. 인물들도 답답하고! 정말 모임 때문에 읽었네요! 도대체 다른 분들은 어떻게 봤는지 너무 궁금해서... 내 머리가죽이 두꺼워서 그런지, 이해가 안 되더만!


▷거츠비- 저도 처음 봤을 때에는 읽다가 덮었습니다. 이거 뭐지. 하고. 근데 우연히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글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그냥 아름답게 묘사한 것을 넘어서 '허무주의', '공허'라는 길로 차분차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 매력적이게 느껴졌습니다. 티 나지는 않지만 새하얀 눈길을 사부작사부작 가고 있는데, 그 방향이 딱! 그곳인 느낌. 그럼 면에서 저는 역시 상 받을 만 하구나... 싶었습니다!


▷횽길동- 아 저도 문체가 아름답다고는 느꼈음. 굉장히 서정적으로 풍경 묘사도 잘 해놓고, 감정 묘사도 잘 해놓고 좋았어요. 하지만 딱 거기까지인 것 같았음. 부활절 달걀에 비교하면 정말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데, 안은 텅 비었어요. 노른자가 없는 거죠. 껍질만 화려하고. 문체만 아름답다고 상주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데미얀- 워워. 우선 여러분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책을 보았는지는 알겠어요. 저도 덧붙이자면, 저는 이게 모임의 맛이 아닌가. 모임 아니었으면 접하지 않았을 책인데, 모임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거죠. 낯선 맛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가 흔히 접하던 것들과는 조금 다른 맥락의 매력인 것 같았어요. 저도 이야기 나누면서 여러분들한테 많이 배울까 합니다.

 하나하나 이야기해 볼까요. 길동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조금 이어가 보면, 왜 이 작품이 노벨 문학상까지 탔을까요? 박웅현이 말했듯이 권위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그 권위의 의미를 한번 파헤쳐 봅시다!!


횽길동-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해볼게요. 올바른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박지성이 맨유에 있을 때 동팡저우라는 중국 선수가 있었어요. 속된 말로 유니폼 팔이, 아시아 마케팅 용이라고도 하죠. 아시아는 아직 서양인들에게는 무언가 분배를 해줘야 할, 중심부로 끌어들여야 할,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방문했을 때도 그런 말이 조금 나왔었죠. 그런 것처럼 동양에 고루 분배 한번 해준 건가... 더불어 그 오리엔탈리즘? 동양에 대한 환상성?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근데 막상 동양에 살고 있는 저한테는 그런 환상성이 깨어져 버리니깐, 그 정도의 작품성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음.


▷거츠비- 오리엔탈리즘, 하니까 그 영화가 생각나네요. <게이샤의 추억>이라고. 일본 게이샤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주인공이 중국 배우인 장쯔이고, 제작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롭 마샬이에요. 이 영화를 보고 이동진 평론가가 "누가 오리엔탈리즘이 뭐냐고 묻거든 이 영화를 보게  하라."라고 쓴 말이 있거든요. 


▶데미얀여기서 간단히 용어 정리하겠습니다. 오리엔탈리즘, 하니까 무슨 판타지 생각하시는 분들 있는데 여기서는 간단히 문화적인 면에서만 짚고 넘어갈게요. 


오리엔탈리즘                            
원래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서 나타난 동방취미(東方趣味)의 경향을 나타냈던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제국주의적 지배와 침략을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 (두산백과)

      

 하여튼, 횽길동님이 봤을 때는 서양인의 눈으로 봤을 때 그 아름다움이 증폭된 것 같다, 정도의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사실 우리 집, 우리 동네 아름다운 건 잘 모르는데 남이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거겠죠...


 죠르바 -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재미없게 봤잖아요. 근데 사실 노벨 문학상 탄 것은 다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최근에 상 받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디어 라이프>도 다 그다지....


▶데미얀 - 그렇긴 하죠. 사실 상 받은 것들, 필독서 같은 책들은 더 일부러 보지 않기도 하잖아요.ㅎㅎ 우리가 기준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근데 이건 있는 것 같아요. 

 하나 예로 들면. 한 소녀를 모두 사랑하는 두 소년이 있어요. 평소 A가 B보다 축구를 더 잘해요. 슛을 더 잘 쏴. 둘이서 내기를 합니다. 공을 차서 저 골대 크로스바를 맞추는 사람에게 소녀를 양보하기로. 많은 독자들은 이전까지 A의 실력을 알기 때문에 A가 이길 것으로 생각하지만 B가 이기게 됩니다. 여기서 작가는 하나의 단서를 던지죠. 

- A는 흐트러진 왼쪽 신발끈을 매만졌다. 

여기서 주의 깊게 생각하는 독자는 깨닫죠. "어라, 전에는 오른발 슈팅이 최고라고 했었는데." 엇! 일부러 오른발잡이인데 왼발로 찼구나.", "왜?", "져주려고", "왜?", "사랑보다 우정을 택했구나, A는 그런 소년이구나."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만 단서를 주면 체크를 못하는 독자가 있을 수 있죠. 그래서 좀 더 친절하게.

- A는 흐트러진 왼쪽 신발끈을 매만졌다. A의 오른발 장딴지는 핏줄로 울긋불긋했다. 참아야 했다.

이 정도까지 하면, "오른발잡이인데 왼발로 찼구나",  "왜?"......... 이하 반복. 

- A는 흐트러진 왼쪽 신발끈을 매만졌다. 오른발잡이였지만 왼발로 찬 것이다.

- A는 흐트러진 왼쪽 신발끈을 매만졌다. 오른발잡이였지만 왼발로 찬 것이다. A에겐 소녀보다 B가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건데 서술 방식, 문체 등에 따라 이렇게 독자에게 맡겨지는 양이 달라요. 모두가 마지막같이 친절한  서술을 좋아할까요? 그렇지 않아요. 유치해 보일 수도 있어요. 어느 것이 더 잘 쓴 글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을 받은 작품들은 거의 맨 위와 같이 독자에게 의지하는 부분들이 꽤 있어요. 그래서 어렵고 난해해 보이기도 합니다.  짧을수록 더 함축적인 거죠. 그러면 스스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많고 부담되기도 하죠. 그래서 대중들은 점점 더 친절한 서술에 끌리기도 하구요. 이걸 가장 많이 느끼는 게, 아동문학-청소년문학-성인문학 차이예요. 아래로 갈수록 완전 친절하거든요.....


▷죠르바 - 두목 말 들으니까 이해가 되네. 이 죠르바가 봤을 때는 그냥 주변부만 예쁘게 묘사하려고 용쓰는 거 같더만. 말을 하려다 마는 그런 느낌.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그러니 중간중간 그냥 아 예쁘구나. 아름답게 표현했네.. 이 정도에서 더 나아가질 못하지! 그렇게까지 깊이 있게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은 것 같더만. 뭐.  


보바뤼 - 저도 사실 그냥 아름다운 장면 떠올리면 족하겠구나, 하고 봤거든요. 작가가 이 소설을 오랜 기간 동안 짧게 쓴 책들을 묶었다고 했을 때, 그냥 큰 내용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냥 캘리 같은 거 있잖아요. 그 내용이랑 상관없이 그냥 글자 예쁘게 썼다.. 이런 느낌? 근데 그 글이 엄청 아름다우면 상 받을 가치는 있다고 봐요. 아름다움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꼭 모든 소설이 발단-전개-절정-위기 같은 구조를 다 갖추고 이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하나의 매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 인정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거츠비 - 다들 문체 이야기만 하시는데, 저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가는 소설적 완결성도 괜찮았다고 봅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작가는 작가만의 철학을 가지고 글을 써서 일본 문학계에서는  인정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불우한 삶을 살았고, 그러한 삶의 모습이 이 소설에 하나하나 녹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봤을 때, 이 소설은 결국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커다란 일관성 안에 짜임새 있게 갖추어진 거죠. 물론 불친절할 수는 있지만, 그 불친절함 마저 '공허'와 '허무주의'라는 틀에 구성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데미얀 -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우선 문체는 모두 공감하신 부분인 것 같아요. 원문으로 보면 더 아름답겠죠? 다음에 일본어 공부하게 되면 다시 도전을 하는 걸로 하고. 모두 책 보니까 체크를 굉장히 많이 해 놓으셨어요. 문체 이야기 나온 김에, 모두 최고의 문장 하나씩 공유해 볼까요?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p.7  
- 차갑고 먼 불빛이었다. 작은 눈동자 둘레를 확 하고 밝히면서 바로 처녀의 눈과 불빛이 겹쳐진 순간, 그녀의 눈은 저녁 어스름의 물결에 떠 있는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야광충이었다. p.13 
- 여자의 인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헀다. 발가락 뒤 오목한 곳까지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p.19
- 무위도식하는 그는 자연과의 보호색을 추구하는 심리가 있어서인지 여행지의 인심에 본능적으로 민감했다. p.26                                    
- 그건 마치 등불처럼 차갑다. 왜냐면 시마무라는 기차 유리창에 비친 요코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 야산의 등불이 그녀의 얼굴 저편으로 흘러 지나가고 등불과 눈동자가 서로 겹쳐져 확, 환해졌을 때, 뭐라 형용하기 힘든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려왔던 어젯밤의 인상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것을 떠올리자 거울 속 가득 비친 눈 위에 떠 있던 고마코의 붉은 뺨도 생각났다. p.51                                                                                                                                                                     
- 시마무라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래서 더욱 여자와 헤어지고 가는 길임을 실감했다. p.77
- 여자의 올록볼록한 귀 모양을 또렷이 드러낼 만큼 달은 밝았다. p.87                                    


▶데미얀-  뭐 엄청 많아서.. 제가 느끼지 못했던 부분도 많이 있네요 ㄱㄹㄹㄹ  문체가 좋다는 것이 정말 손에 잡힐듯한 섬세한 묘사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특정 장면이나 상황 설명만으로 인물에 대해 다루는 부분도 굉장히 좋았던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 부분은 이따 인물들 다룰 때 더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여기까지만 하구요. 더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그때 추가할게요. 아무리 문체가 아름답다고 해도, 내용적인 면에서도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볼까 해요. 거츠비님이 말씀해주신, '공허', '허무주의'의 느낌이 나긴 나죠. 그런 의미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가 '헛수고'인 거 같아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헛수고'의 의미는 무엇인지, 또 우리가 느끼는 '헛수고'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야기해 볼까요?


▷거츠비- 작가의 삶, 아니면 우리 모두의 삶 자체가 '헛수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쉽다'는 생각도 들잖아요. 정말 아무렇지 않게... 특히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의 그 허무함. 순식간에  밀려오는 그 공허함. 그런 것들을 겪은 작가에게는 인생 자체가 '헛수고'라는 메시지도 담는 것 같았어요.


죠르바- 그런 부분이 많긴 하지만 그건 시마무라가 서술하는 입장이니까 그렇게 직접적으로 느껴진 것 같고. 내가 그나마 좋게 봤던 게 고마코인데, 고마코는 좀 더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지 않나? 그런 면에서 시마무라가 헛수고라고 하면서도 인정하는 몇 가지 행동들이 있으니까, 모두 그렇게 몰아가긴 좀 그런데.

 부분적으로 보면, 시마무라가 고마코한테 헛수고라고 말했던 몇몇 부분들이 있잖아. '읽은 책을 정리하는데, 감상 없이 형식적인 내용만 정리할 때', '아픈 아들을 위해 애쓰는데 결국 죽을 때', '시마무라를 사랑하는 모습..?' 막상 나누기도 애매하네요..  우선 이 부분 체크했는데.

                                                                                                         

- 시마무라에겐 덧없는 헛수고로 여겨지고 먼 동경이라고 애처로워도 지는 고마코의 삶의 자세가 그녀 자신에게는 가치로서 꿋꿋하게 발목 소리에 넘쳐나는 것이리라. p.64                                    

 여기까지 보면, 또 고마코의 삶의 자세도 인정해주는 것 같잖아. 고마코는 그나마 내가 쪼끔 인정해 줬다고 그러니 모두 허무주의로 일갈하지는 말게나!


횽길동- 많은 일본 소설들을 보면 상실감? 같은 것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렇고,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냥 톡 건들면 자살할 것 같은 인물들 있잖아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세계 2차 대전과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세계를 잡아먹을 듯하던 일본이, 핵폭탄 하나로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 쳐졌던 순간. 1등에서 꼴등이 된 느낌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일을 겪으면 '인생무상' 이런 느낌이 자연스럽게.. 뼛속 깊이... 새겨지는 것 같기도 하고...


보바뤼- 그건 또 너무 프로이트적인 생각인데요. <미움받을 용기>에서도 나왔지만 일본에서 그런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모두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니까. 하하하. 또 작가가 우울하다고, 작가가 자살했다고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이 허무주의를 나타낸다고 보기도 어렵고... 전체적으로 그러한 느낌을 주긴 하는데, 분명한 메시지가 없으니까 더  오락가락하는 거 같아요. 사실 저는 주는 메시지 자체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더 나아가서... 자살한 작가의 메시지는 별로 받고 싶지도 않고요. 저는 문학을 포함하여 예술의 아름다움이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이 자살한다면, 그 아름다움도 크게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자살한 행복전도사 느낌적인 느낌? 그래서 작품 전체를 허무주의로 보기는 싫고, 시마무라란 인물만 '헛수고'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데미얀- '헛수고'라는 중요한 포인트가 나왔네요. 이건 마지막에 다루어 게요. 구체적으로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우선 고마코?


횽길동- 처음엔 엄청 순수하게 묘사되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함이 사라졌어요. 완전 변덕쟁이예요.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최악인 것 같음. 이랬다 ~ 저랬다 ~ 어쩌라는 건지. 완전 '남녀탐구생활' 보는 것 같았음. 


죠르바- 고마코는 역시 내 제자!. 너무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 너무 사랑하니까 감정을 절제할 수 없어서 그렇게 된 거지. 그리고 그녀의 삶 자체를 봐도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나? 한 남자 때문에 게이샤가 되기로 결심하고... 또 그 남자는 죽고... 남은 가족도 없는 애처로운 상황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 캬.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만! 너무 안타깝구만. 정말 순수하니까 그렇게 갈등을 표출하는 거지! 아름답다!


횽길동- 정말 순수했다면, 그런 고민을 덜 하지 않을까요? 이것저것 재고 그런 게 아니라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그렇게 딱 말하는 게 순수한 거 아닐까요. 그 애기들 배고프면 그냥 울어버리듯이. 애기가 "어머니는 지금 곤하게 주무시니까 참았다가 내일 아침에 우유 달라고 해야겠다."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티 나게 왔다 갔다 하는 건 무슨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데미얀- 서로가 생각하는 순수의 의미가 다른 것 같네요. 속은 어떻든, 작중 시마무라가 새하얀 눈과 함께 순수한 매력이 있다고는 했으니까 순수하긴 한 걸로 하죠.ㅎㅎ 요코랑 비교해야겠지만 같은 선상에서 우선 맑고 깨끗하고 새하얀 순수함은 있는 걸로.ㅋㅋ


보바뤼- 좀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귀엽지 않았나요? 저 정도는 애교지요. 저는 문제가 그 시마무라한테 있다고 생각해요. 그 남자가 태도를 어정쩡하게 하니까, 고마코도 어정쩡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남자 짱 싫어요. 딱 보면 밀당 같아. 나한테 딱 걸렸어야 하는데 저눔... 


거츠비- 그녀의 과거 때문에 그렇다는 거에 공감하진 않아요. 그럼 게이샤들은 모두 그렇게 오락가락 변덕이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잖아요. 보바뤼님이 위에서 언급했듯이 <미움받을 용기>에서 보면 그건 과도한 프로이트적 해석이라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 합리화하는 건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냥 고마코가 밀당하는 것 같이 보였는데.. 시마무라는 원래 그렇게 건조한 인간인데, 고마코가 들었다 놨다 하는 거 같았어요. 시마무라가 꿈쩍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냥 잠도 자지 않고 친구가 되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 시마무라는 도시에서 나와 설국에서 순박한 고마코에게 순수한 매력을, 고마코는 성적 탐닉에 중점을 두지 않고, 말이 통하는 시마무라를 서로 존중하며 좋아했던 것 아닐까요? 그냥 우정인데 고마코가 끼 부리는 정도.......... 좀 나쁘게 보면 신분상승의 꿈을 가진 시골 기생? 신분상승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망이죠...


죠르바- 신분상승이라니 이 사람이... 그냥 사랑이래두. 같이 도쿄 가자는 말 안 하잖아. 남자 가족 생각하면서.. 그리고 잤거든!... 엄청 잤어요!.... 그게 사랑이야! 저 친구 뭘 본 거야.......


거츠비- 처음에 안 자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오래가지 못할 꺼라고? 아 그래서 서로 존중하는 관계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순수한 설국의 눈 속에서 순수한 관계....


죠르바- 백 프로 잤지. 여기 주석도 있구만. 이거 눈뜬 장님이구만. 이게 하이라이트야! 뒤에도 그런 묘사가 엄청 나와요. '손가락이 기억하는 어쩌고...' 등등. 그러니까 시마무라가 놈팽이지. 이해해, 남자놈들이 뭐. 고자도 아니고.


▶데미얀- 워워. 고마코에 대한 평가가  상반되는군요. 남자분과 여자분이 갈리는데요. 저는 솔직히 여자분들이 고마코 더 싫어할 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원래 여자가 여자의 끼를 알아본다고.... 그래서 여자들끼리 따돌리고 하잖아요. 근데 끼라고 생각을 하지 않으셔 서 그런지 완전 갈라집니다. 자연스럽게 두 여자 사이에서 행복한 시마무라 이야기를 해볼까요?


죠르바- 행복? 시마무라 저 인간은 행복이라는 걸 못 느낄 것 같은데? 무위도식이라는 말로 잘 표현된 것 같구만.  내 스타일은 아니지!


▷데미얀- 맞아요. 죠르바랑은 반대같네요. 개인적으로 무위도식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안 나왔으면 더 좋겠지만.... 굉장히 무미건조하고 하얗고 어린 여자 좋아하는.... 한량 같은 사람이죠..... 아무 필요 없는, 볼 수도 없는 서양 악보를 번역하는 일을 하면서, 의미가 없음을 다행으로 여기는? 정말 신기한 내용인데 묘하게 이해가 되는 성격 묘사였어요. 딱, 아..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   


보바뤼- 맞아요. 거기다 불륜한 것도 모자라서 죽은 벌레 치울 때 자기 자식들 생각한 장면 있었죠. 그때 소름 돋았어요. 나에게 본가는 그런 존재인 거죠. 무감각하게 집어다 밖에 던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여자는 엄청 밝혀가지고.. 고마코랑 있으면서도 요코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잖아요. 유키오란 남자를 돌보고 있을 때도 변태같이 거울로 엄청 쳐다보고...


거츠비- 아까 작가의 삶과 허무주의란 주제 이야기와 함께 했었잖아요. 그 맥락에서 보면 시마무라는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돌하르방 같이 건조한 인간형일 뿐? 나쁜 짓은 한 게 전혀 없지 않나요? 그냥 무위도식하고 한량이라고, 불륜이라고 무조건 나쁘게 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가 도쿄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잖아요? 이 책에 작가도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상도 받은 유명한 작가인데, 어느 순간 자살했잖아요. 같은 과거에 아픔이 있을 수도.. 그리고 고마코가 게이샤(기생)의 입장에서 함부로 남자에게 사랑을 요구할 수 없다고 하셨죠. 역으로 생각하면 남자의 입장에서도 게이샤는 '부인'은 될 수 없어요. <게이샤의 추억>에서도 보면 '후견인'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스폰서? 연인은 될 수 없죠. 게이샤와의 사랑은 딱 그 정도? 그런 상황에서 사기 치지 않고 거리를 두는 정도는 양반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위대한 개츠비> 첫 문장에 이런 말이 나와요.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아까 고마코의 행동 자체가 변덕스럽고 짜증 났다면 그거에 비해서, 시마무라의 행동은 점잖은 쪽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욕먹을 짓은 하지 않았다...?


▷보바뤼- 거츠비님 영화 좋아하시니까, <건축학개론> 보셨죠? 거기서 수지 욕했나요? 안 했나요? 수지도 딱히 나쁜 짓을 하진 않았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냥 반전(?)을 줬을 뿐이지. 나랑 썸인 줄 알았는데 다른 남자랑 사귀는?  그런데도 그때 그 캐릭터 욕 많이 먹은 걸로 아는데.... 여기서도 불륜은 차치하더라도 고마코랑 할 거 다 하고 요코 흘끗 보는 시마무라를 옹호하긴 힘들 것 같네요! 


거츠비- 수지는 무슨 짓을 해도 욕하지 않습니다!! 


횽길동- 저는 조금 빡치긴 했는데..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근데 그 영화에서는 고마코처럼 적극적인 사람이 없잖아요? 고마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사실 보면 요코를 더 좋아하는 것 같지 않나요, 시마무라도?  뭐 남자로서, 여러 여자가 예쁘게 보이는 건 그럴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두 여자가 시마무라한테 오는 건 사실 '도쿄에서 온 자본가'란 매력 포인트가 작용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상경의  꿈같은? 만약 시마무라가 그걸 이용해서 "내가 도쿄에 데려갈게"라고 꼬드기고 안 데려가면 사기꾼인데, 그건 또 아니잖아요?


보바뤼- 저는 사실 고마코를 이해하듯이 시마무라도  이해해요. 하지만 '좋은 사람이야.' 이 말은 엄청 짜증 났어요.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왜 그런 말을 하나요?   


횽길동- 맞아. 그 부분에서 고마코가 엄청 다시 물어보잖아요. 무슨 뜻이냐고. 그냥 좋은 사람이라는 거에 왜 집착하죠? 말도 못하나... "사랑해", "영원하자" 이런 말도 아니고, 그냥 "너 괜찮은 사람이야~" 이런 느낌?  그것도 말 못하나요.. 고마코 혼자 오버한 거 같던데....


보바뤼- 그런 말도 하면 안 돼요! 그런 말에 순수한 고마코는 흔들렸으니까 다시 물어보는 거죠! 하튼 그 말하고 나서 -100 점 됐습니다. 토이의 '좋은 사람' 노래 아시나요? 

고마워 오빤 너무 좋은 사람이야  

 그 한마디에 난 웃을 뿐 

(중략)

 넌 웃었고 ~ 난 밤 지새웠지 ~


이런 겁니다. 시마무라 웃고 고마코 웁니다. 앞으로 조심하세요.


▶데미얀-  박효신의 노래가 생각나네요... "좋은 사람 사랑했다면 헤어져도 슬게 아니야~". 우리 마지막 주인공 요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사실 신비한 등장에 비해서는 존재감이 좀 약했죠? 생각보다 많이 안 나왔어요. 그래도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


횽길동- 제가 생각한 순수의 결정체입니다. 우선 시마무라의 눈길을 더 끈 거 봐서는 고마코보다 더 하얗고 더 어리고 뭐  거시기하겠죠. 그것도 그건데, 정말 순수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시마무라한테 도쿄에 데려가 달라고 한 거예요. 유키오가 죽은 뒤, 그냥 떠나고 싶은 거죠. 시마무라가 유부남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우선 데려가 만 달라. 이런 게 정말 아기 같은 순수함이라고....


죠르바- 요코는 뭐 순수한가 보지. 너무 조금 나와서 원. 그렇다고 고마코가 안 순수해지는 건 아니니까. 근데 고마코와 요코의 관계가 굉장히 묘한 것 같았는데. 확실히는 모르겠고.... 신비주의? 마지막에는 자살한 거 맞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 원.ㅉㅉ


보바뤼- 자살인가요?  그냥 불나서 뛰어내린 거 아닌가요?


거츠비- 저도 명확하게 감이 오진 않았어요. 근데 자살이라고 했을 때는 '공허', '허무'라는 주제가 딱 떨어지긴 하는데.... 워낙 조금 등장해서 감 잡기도 힘들긴 했습니다. 분명 한 건 시마무라에게 관심이 있던 거 같진 않았어요. 사랑은 아닌 거죠. 그냥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한 가련한 소녀 정도.


보바뤼- 좀 오바해서 보면.. 고마코가 열정과 같은 이미지도 함께 갖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불꽃. 근데 그 불꽃이 요코를  집어삼켰다면, 고마코가 이긴 거죠. 요코를. 만약 고마코와 요코가 한 인물 속에 있는 두 자아라면, 서로 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는데.. 고마코가 이긴 마무리?


죠르바- 둘이 한 인물이라.. 굉장히 묘한 해석이네. 둘이 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질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묘하긴 했는데... 흠... 여자란 참 묘한 동물이야.


거츠비- 저한테 둘 중에 한 여자를 고르라면 전 요코를 고르겠어요.


▷죠르바- 난 고마코! 고마코가 살아있는 인간이라구!


▷횽길동- 시마무라가 요코한테 더 끌린 이유가 있겠지.... 전 요코...


▷보바뤼- 에휴..아까 '헛수고'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한 게 기억나네요. 이런게 '헛수고' 아닐까요.


▶데미얀- 맞아요. 적절한 예입니다. 이 작품 전체에서 '헛수고'란 말이 자주 나오긴 하죠. 여러 가지 애매모호한 면이 있죠. 사실 어떤 행동을 '헛수고'라고 느끼느냐는 주관적인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니까. 시마무라는 '헛수고'라는 말을 달고 다니지만, 당사자 고마코는 아닐 수 있죠? 개인적으로 헛수고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야기해 주세요.


- 수능. 완전 허무했어요. 내가 지금까지 이걸 위해. 

 re: 저는 3번 봤더니 덜 허무했어요. 3번 써먹었으니까.ㅋㅋ)

- 고등학교 시절 그 자체? 완전 놀았을 것 같아요. 앉아서 보낸 시간이 너무 길어..

 re: 뭔가 아는 게 재밌지 않나요? 저는 누가 야자 시켜줬으면 좋겠어요. 조용히 책이나 실컷 보고 공부 좀 하게....

- 책 읽는 행위. 읽다 보면 이걸 왜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re: 다 내공으로 쌓일 거예요.ㅋㅋ 정 아니면 덮어버리고 다른 거! 그래도 뭔가 쌓일 거예요..ㅋㅋ

- 야구를 보는 나의 모습? 저걸 이기든 지든 나랑 상관 하나도 없는데! 내가 저거에 그렇게 의지할까.

 re: 그걸 통해서 얻는 카타르시스 있잖아요.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니겠어요? ㅋㅋ 삶의 원동력.

- 팬질. 연예인이든 작가든 브랜드든, 팬이 되면 의미 없는 짓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re: 팬질이란 것이...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대가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순결한 사랑 아닐까요. 아가페적인 사랑. 그거면 충분..?ㅋㅋ 


▶데미얀- 개인적으로는 헛수고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가 다 쌓여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시간이  오래되니 정신을 놓고 다니시는 분들이 있네요. 전체적으로 신비한, 몽환적인 분위기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에 인물들도 뚜렷하게 색채를 갖고 있는 것 같진 않죠? 그래서 정말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죽음은 가까이에 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이런 말들을 많이 하잖아요. 앞에서 다루었던 박웅현 씨 책이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도 그런 메시지가 많이 나오죠. 맥락은 같은 것 같아요. 정말 가까운 누군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고, 나 또한 그럴 수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누군가는 허무주의로 일관하죠. 살아서 뭐하냐.... 하지만 또 누군가는 하루하루를 정말 소중하게 살아가죠. 이 둘 중에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는 후자에 좀 더 힘을 싣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s 내가 생각하는 오늘의 M.O.M (Man of the Match)은?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12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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