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썰전!
*한마디: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남한산성을 둘러싼 이야기
*두마디: 두 남자의 썰전, 삶의 길을 위한.
*추천대상: 역사 좋아하시는 분
*깔때기: 나라면 어떤 선택을...?
.
.
삶의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소녀 나루가 가리킨 풀무와 날쇠가 쉼 없이 하는 망치질에 있다. 인공호흡하듯, 삶에 기운을 불어 넣는 풀무질을 바탕으로 뚝딱뚝딱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한다. 김훈 작가가 <라면을 끓이며>에서 말했던 진저리나는 밥, 그 밥이 한 사람부터 한 나라까지, 모두를 지키는 기둥이 되는 것이다. <500일의 썸머>에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남한산성>에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 그 민들레꽃을 볼 수 있는 자와 보지 못하는 자가 있을 뿐이다. 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
.
등장은 이조판서 최명길이다. 최명길은 기존의 명을 중심으로 한 관습을 깨고 청과 화친하고자 한다. 그가 변화를 추구하는 이유는 한가지다. 살기 위해서. 명분도 중요하지만 우선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 그는 그 위험한 전장을, 오랑캐라고 얕보는 그 전장을 쉼없이 오고간다.
.
.
그 다음 예조판서 김상헌. 자신에게 나루터를 안내해준 할아버지마저 오랑캐를 도와줄 기미를 보이자 단칼에 죽여버린다. 그만큼 기존의 예법, 관습을 지키기 위해 거침없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다. 끝까지 오랑캐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기 위해 열심히 군대와 백성들을 정비하며 애쓴다.
.
.
이 두 남자의 날카로움 대립각은 모두 다른 방향이지만,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 이 다른 두 방향 사이에서 고군분투한 한 남자가 있었으니 서날쇠다. 부와 명예, 대의명분에 큰 뜻을 두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헌의 명을 받아 힘든 임무를 해낸다. 최명길이 말하는 하루하루의 일상, '삶'을 위해서. 마찬가지로 소녀 나루 또한 가진 것 없는 나루터의 자유로운 삶에서, 김상헌의 '예'를 거치면서 조화된 모습의 씨앗이 되어간다. 나라의 전투 작전이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 시민으로서 꿋꿋하게 살아갈 두 사람이다.
단순히 최명길이 선경지명이 있었고, 김상헌이 꼰대라고 할 수는 없다. 둘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같았으므로. 김상헌은 소녀 나루를 날쇠에게 맡기며 새로운 시대를 넘겨준다.
---------------------------------------------------------------
- 저들이 말하는 대의와 명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옵니까?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 삶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대의와 명분도 있는 것이 아니옵니까
- 난 누구의 편도 아니오 다만 다가오는 적의 목을 거둘 뿐이오
- 명길(이병헌)은 전하를 앞세우고 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자이옵니다. 죽음에도 아름다운 자리가 있을진대 하필 적의 아가리 속이겠습니까
- 적의 아가리속에서도 삶의 길은 있을 것이 옵니다.
- 그럼 누가 답서를 쓰겠느냐, 두려우냐? 척화를 하자니 칸의 손에 죽을까 두렵고, 오랑캐에게 살려달라는 답서를 쓰자니 만고의 역적이 될까, 그것이 두려운 것이냐
-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의 예보다 내나라 내 백성이 더 소중하오
- 나도 그리 생각했소. 하지만 틀렸소. 백성을 위한 새로운삶의 길이란,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비로소 열리는 것이오! 그대도, 나도, 그리고 우리가 세운 임금까지도 말이오. 그것이 이 성 안에서 내가 기다리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