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나치 학살 전범자인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을 기록한 책
*두마디: 생각없음의 위험함. 악의 평범함.
*추천대상: 나치 학살 관심있는 분
*깔때기: 내 안에 존재하는 아이히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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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평범했다. 히틀러와 나치당에 복종했을 뿐이다. 그는 간수가 빌려준 <로리타>를 보고 불건전하다고 했을 정도로 도덕적 관념도 나름 가지고 있었다. 칸트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다만 히틀러와 접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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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상투어'로 가득했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거치지 않은 공허한 말들은 그의 행동 또한 공허하게 만들었다. 그의 모든 기준은 양심이나 도덕적 관습이 아니라 '총통'이었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공감의 무능성. 이는 핵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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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였던점에 악의 평범성의 특징이 있다. p.15
-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서로 긴밀히 연결된 세 가지의 무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 그것이다. p.20
- 행위와 말, 이 두 가지의 기본 조건이 되는 인간의 복수성은 평등과 차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인간들이 평등하지 않다면 그들은 서로 그리고 자신들에 앞서 왔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고, 또 미래를 계획하고 자신들 다음에 올사람들의 필요를 예견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인간들이 다르지 않다면 현재 존재하고 과거에 존재했고 앞으로 존재할 사람들과 구별되는 각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말을 하거나 행위를 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p.28
- 사르트르가 그의 <반유대주의와 유대인>에서 만일 단 한 사람의 유대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을 창조해 내거나 만들어 낼 것잉라고 말한 것은 통찰력이 있는 말이었다. 인색하고 이익만 밝히는 장사치는 대체로 (추상적인) 보편적 유대인일 것이다. (...) 유대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p.33
- 특별할 정도로 '천박'하지만 '악마적'이지도 또 '어리석지도' 않은 아이히만의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 또는 '사유의 전적인 부재'는 인간적 실존성을 결여하고 있고 또 그것을 초월해 있는 것이다. (...) 아렌트가 아이히만에 대해 사유할 능력이 없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규정했을 때, 의미한 것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p.38
- 아이히만이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 (...) '특별히 천박했던' 아이히만은 '사유'도 '의지'도 '판단'도 할 수 없었다. '차이'가 없으면 소통의 필요가 없다고 아렌트가 생각한 것은 옳았다. 그렇다면 '말'과 '행위'도 필요없게 된다. p.39
- '끔찍하게도 또 전율스럽게도 정상적인' 아이히만에 의해 자행된 '인류에 대한 범죄'는 폭력의 행위(즉 홀로코스트)를 포함한다. 폭력은 차이를 지우려 할 때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값비싼 대가이다. p.42
- 우리는 전쟁에 마취되어버렸거나 그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전쟁을 일상적인 인간의 삶의 한 측면으로 '아무 생각 없이' (무사유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평범하게 되어 버렸다. 아렌트가 주장한 것처럼, "우리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 특히 미디어 기술이 우리를 점점 더 일차원적으로, 심지어 전체주의적으로 만들고 있다. p.42
- 간수가 아이히만에게 <로리타> 빌려 주었더니, 아이히만이 아주 벌건전한 책이라고 간수에게 말함. p.105
- 그런데 그 어떤 객관적인 사실보다도 더 빌어먹을 것은 아이히만 자신의 결점투성이인 기억력이었다. p.123
- 그러나 맙소사, 그들은 그러한 유혹(양심)에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배워버렸다. p.227 (칸트의 사상을 히틀러에 짬뽕,,,)
- 일반적으로 살상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 p.342
-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는 오류의 희생자다"라고 아이히만은 말했다. p.343
-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p.349
-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교훈이지 현상에 대한 설명도 아니고 그에 대한 이론도 아니다. p.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