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원의 안장과 5만 원의 광어

엉덩이만 걸친 비행

by 마루


5만 원의 안장과 5만 원의 광어



엉덩이만 걸친 비행


1년 전 약속했던 제주행. 화면 속 항공권 가격표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입석 항공권 5만 원'. 이름은 그럴듯했지만 실상은 '안장'이라 불리는 차가운 플라스틱 판데기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가는 자리였다.


5만 원이 싸다고 생각했던 건지, 아니면 그 기괴한 자세가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던 건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저 숫자가 주는 유혹에 이끌려 결제 버튼을 눌렀을 뿐이다.


비행기 꼬리칸, 다닥다닥 붙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아내와 나란히 '서서' 이륙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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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 위에서


비행기가 고도를 높일 때마다 중력은 척추를 타고 내려와 엉덩이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다.


좁은 간격 탓에 아내의 어깨가 내 가슴팍에 닿았다.


평소라면 다정했을 그 밀착이, 좁은 안장 위에서는 서로의 고단함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불편한 진동이 되었다.


우리는 비행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던 게 아니라,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결국 앉지 않았다


제주 공항에 내려 기어코 펴지지 않는 무릎을 두드리며 횟집으로 향했다.


아낀 5만 원은 테이블 위에서 광어인지 우럭인지 모를 생선회가 되어 나타났다. 초장을 찍었는지, 그냥 먹었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드디어 아내 옆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행기 안의 그 좁은 안장이 아니라, 등받이조차 없는 횟집의 투박한 플라스틱 의자 위에서. 어깨가 닿지 않아도 되는 거리에서.


5만 원을 아끼면 존엄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5만 원을 아끼면 엉덩이의 통증이 남고, 5만 원을 쓰면 회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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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최근 유럽의 한 저가 항공사가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입석 좌석’ 뉴스를 봤다. 비행기 안에 촘촘하게 박힌 금속 지지대, 그리고 그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엉덩이들. 효율이라는 명목하에 인간의 신체를 수직으로 세워 적재하려는 그 풍경이 기괴하면서도 낯설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도처에서 무언가를 아끼기 위해 스스로를 세워두고 있지 않은가.


가장 아끼고 싶은 사람과의 여행마저 '최저가'라는 숫자의 틀에 가두려 했던 내 안의 인색함을 마주했다. 5만 원을 아껴서 얻는 것이 고작 엉덩이의 통증뿐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이 글은 그 뉴스 한 줄에서 시작된, 나의 비겁했던 인색함에 대한 고백이자 '마주 앉음'의 가치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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