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맛
1. 닫힌 문 앞에서 만난 '딩동댕' 원주 시청이 예전 그 자리에 머물던 시절, 기독병원 사거리 위쪽은 늘 사람들의 발길로 활기찼다.
단골 잔치국수집을 찾아갔지만, 운명처럼 문은 닫혀 있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우동'이라는 단어가 선명한 간판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름은 '학교종이 땡땡땡'. 그 소박한 부름에 이끌려 마치 수업 종을 따라가듯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2. 엔트로피의 미학, 쌓여있는 세월의 층위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것은 정돈되지 않은 세월의 향기였다. 이곳은 정교한 설계보다는 투박한 삶의 궤적이 쌓여 만들어진 공간이다.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운 손님들의 빛바랜 사진들, 낡은 군용 반합, 손때 묻은 옛날 전화기... 대충 쌓여있는 듯한 그 물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느낌'으로 말을 걸어왔다.
정돈되지 않은 그 질서 없는 풍경, 즉 엔트로(Entro)한 감성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짓눌렀다.
3. 작은 액자 속의 비밀과 양은 냄비 속의 우동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곁에 놓인 작은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교하면서도 따뜻한 필치. 주인아주머니께 여쭈니 몇 년 전 한 화가가 들러 그려주고 간 선물이라 한다. 작은 액자에 담긴 그 그림은 이 공간이 단순히 밥을 먹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의 영감을 머물게 했던 곳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우동. 군대 반합에 수저가 꽂혀 나오고, 노란 양은 냄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이 담겨 나왔다.
맛은 '진짜' 옛날 우동이다.
요즘의 세련된 맛과는 결이 다른, 진한 국물과 입안을 가득 채우는 두툼한 면발. 후루룩 소리를 내며 국물을 들이켜는 사이, 곁눈질로 스쳐 지나가는 옛 소품들과 책들, 그리고 사람들의 흔적이 이곳을 원주만의 독특한 아카이브로 만들고 있었다.
4. 사진사가 '찍힘'을 당한다는 것 계산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사장님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사진 한 장 찍어드릴까요?"
평생 셔터를 누르는 것을 업으로 삼아온 나, '하이오렌지'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찰나를 포착해 온 내게 '찍힘'을 당하는 것은 낯설고 어색한 일이다.
사양하려 했지만, 사장님은 단호했다.
"다음에 오면 인화해서 선물로 줄게요. 여기가 명당이니 앉아봐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아 나름의 포징을 잡아본다.
뷰파인더 너머가 아닌, 렌즈 정면을 마주하는 어색함. 그런데 나를 향해 셔터를 날리는 사장님의 폼이 예사롭지 않다.
여러 장을 과감하게 끊어치는 그 모습에 경외감이 들어, 나 또한 카메라를 들어 그 '찍는 모습'을 맞사격했다.
5. 에필로그: 다음 주를 기다리는 이유 관찰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피사체가 된다는 것. 그것은 내가 이 공간에 온전히 스며들었다는 초대장 같은 것이었다.
사장님의 카메라 속에 담긴 나의 모습은 어떤 표정일까.
다음 주, 다시 그 양은 도시락과 진한 우동 국물이 그리워질 때쯤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식당 벽면 어느 틈바구니에, 낯설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어느 사진사의 기록이 '시간의 층위' 하나를 더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