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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에서 사람이 죽었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남한 사람이었다.
국방부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 군의 경계 근무 중 폭우에 유실된 지뢰가 폭발하여 5명이 다치고 8명이 사망했다.’
무거운 비보를 뉴스로 접한 국민들은 각자의 감정을 소화하지 못해 괴로워했다. 성인 남성들은 자신의 군 생활을 복기하며 울분을 토했고, 군 생활을 해보지 않은 여성들은 전쟁의 공포를 체감했다.
전쟁의 공포 앞에서는 성별 갈등도, 정치 성향도, 세대 갈등도 없었다. 생수와 라면값이 폭등했고 주가는 폭락했다.
그런데 며칠 뒤, 어떻게 유출이 된 것인지 당시 사건 현장을 담은 영상 하나가 인터넷에서 퍼져 아흔여섯 살 우리 할아버지까지 보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들이 서너 번의 굉음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본 유가족들은 오열했고 나이가 많은 순으로 졸도했다. SNS에서는 각종 자극적인 문구들이 자극적인 색깔로 표현되었다.
‘대한민국과 북한이 전쟁하면 벌어지는 일 3가지’
‘전쟁 났을 때 북한 군인들이 가장 먼저 죽이는 남한인 공통점’
'방금 유출된 김정은이 푹 빠진 북한 기쁨조 각선미 모음' 등등.
정부는 어떻게든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워야 했다. 국민의 불안은 핵무기로도 막을 수 없는 최강의 적이자, 제때 막지 못하면 분열하는 암세포처럼 무한히 증식하는 무서운 존재이기에 이런 일로 전쟁이 나지 않는다고, 정말 단순한 사고일 뿐이었다고 증명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정원에서 북한 수뇌부가 이 사건을 계기로 추가적인 공격을 계획 중이라는 첩보를 수집했다. 북한에겐 좋은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앞으로도 빗물에 지뢰가 유실되어 남한의 DMZ 순찰 경로로 흘러들어온 ’척‘ 폭발물을 흘려보내 남한을 은밀히 공격할 계획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대통령과 국방부의 윗선들은 아연실색했다. 미국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유감만 표명할 뿐 어떠한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어서 더욱 두려웠다.
모두가 조국이 풍전등화라며 발만 동동거리고 있던 와중에 단 한 사람, 국정원장이 입가의 게거품을 훔치며 홀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손을 들고 말했다.
“저한테 생각이 있는데요.”
바로, 초능력 특수부대 ’SPS‘를 파견해 북한 총정치국장을 암살하자는 것. 중대한 사안에 대해 토의하던 와중에 갑자기 초능력 특수부대니 암살이니 하는 소리에 현장 분위기는 새벽 서리가 내려앉은 듯 차갑고 고요해졌다. 이윽고 ‘지랄 옆차기하네’, ‘자다가 와이프 부랄 긁는 소리 하네’, ‘저 새끼가 노망이 들었나’, ‘어제는 사무실 캐비닛이랑 소변기를 헷갈렸다더니’, ‘역시 관상은 과학이네’ 등등 여기저기에서 그의 자질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정원장은 순간적으로 아차 했다.
초능력 특수부대는 국가기밀 중에서도 최상급 일급 기밀이라서 본인과 담당 부서 실무자를 제외하면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만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한숨을 깊게 쉬었고, 국방부 장관은 국정원장을 쏘아보며 검지로 관자놀이에 원을 휘휘 저었다. 이후 셋은 작은 밀실에 모였다.
국정원장은 SPS 관리 요원 한기훈을 불렀다.
기훈은 그들의 인적 정보가 담긴 두툼한 파일을 가져왔다.
“현재 즉시 투입할 수 있는 부대원은 총 5명입니다.”
기훈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국정원장의 계획이 뭔가요?” 대통령은 서류를 바닥에 착 내려놓으며 물었다.
“암살 작전입니다.”
“암살 작전?” 국방부 장관이 기가 찬다는 듯 대답했다.
“네. 저희는 미국 CIA와 긴밀히 협조해서 북한 총정치국장 리정수가 빗물에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는 초경량화 폭탄을 개발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암살로 그걸 멈추겠다는 건가요? 이건요, 그렇게 사람 하나 죽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북한은 이미 우릴 은밀하게 공격할 좋은 아이디어를 얻은 거잖아요.”
국방부 장관은 답답하다는 듯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리정수의 아이디어는 현재 북에서 완전히 외면당하고 있어요. 김정은은 물론, 수뇌부들도 리정수의 아이디어를 묵살했고요. 요즘 김정은은 민심 관리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리정수는 자신의 군사적인 입지라도 강화하려고 폭탄 개발을 강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적절한 타이밍에 그를 암살하고 연구소까지 폭파시킨다면 북의 아이디어는 휴지 조각이 될 겁니다. 기훈 씨, 관련 자료 띄워주세요.”
기훈이 빔프로젝터로 리정수의 사진과 관련 자료들을 쏘았다.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던 대통령이 마른세수 끝에 물었다.
“확실합니까?”
“네. 확실합니다. 연구소와 리정수 사택 위치까지 모두 확인했습니다. 출동 명령만 주시면...”
“...시죠.”
“네?”
“지금 당장 리정수 목 따러 가시라고요!”
“아, 넵!” 국정원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답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