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전쟁에서도, 사업에서도 안정기에 들어설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다. 고통과 시련은 언제나 우리 주위를 맴돌면서 우리가 자만하기만을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우리를 덮친다. 새로운 인생을 아무리 단단히 조립해도, 언제든 들이닥칠 고통에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파도 앞 모래성처럼 쉽게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는 따끔한 예방주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 나타날 트라우마로부터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트라우마는 제법 끈질기다. 인생이 아니라 뇌를 바꾸지 않는 이상, 잊을만하면 올라오는 지난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우리를 괴롭힌다. 고통에 대해 분석하고, 튼튼한 맷집을 기르고,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 즐겁게 사는 방법까지 익혔는데 냄비에 눌어붙은 기름때처럼 트라우마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단번에, 완전히 지워낼 수 없다면 결국 나타날 때를 대비하며 예방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명심해야 될 것은 '예방'은 다가올 고통에 대한 대비책이지, 당장을 위한 치료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을 읽는 와중에도 떠오르는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 괴롭다면, 당장 책을 덮고 병원에서 치료받길 바란다. 이어질 내용은 당장의 치료제가 아닌 언젠가 나타날 트라우마에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면역력'을 키워줄 예방주사나 영양제 같은 이야기다. 이 책에서 추천하는 방법이 당신의 입맛에 맞으면 꿀꺽 삼켜 몸에 흡수시켜도 좋고, 거부감이 들면 당장 뱉고서 다른 영양제를 찾아도 좋다.
트라우마를 대비하려면 먼저 그 특성을 알아야 한다. 트라우마는 '일회성'이 아니다. 한 번 크게 앓고 나면 잘 걸리지 않는 감기와는 달리, 트라우마는 해마다 우리를 괴롭히는 계절성 독감에 가깝다. 결국 매년 예방주사를 맞듯이, 트라우마로 고통받지 않으려면 주기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주기적인 대비는 어떻게 하는 걸까? 그 해답은 지난 훈련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기 위한 훈련. 그렇다. '유체이탈' 훈련이다. 트라우마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유체이탈 훈련이 꼭 필요하다. 당시의 괴로웠던 상황에서 자신을 분리시키고, 벌어진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연습은 곧 트라우마에 대한 예방주사가 된다.
모든 주사가 그렇듯, 예방주사도 따끔하다. 날카롭고 뾰족한 바늘을 몸속 깊숙이 집어넣어 항원을 집어넣는 것과 마찬가지로 머릿속 깊이 잠든 고통스러운 기억을 일부러 상기시켜 당시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는 일이 어려운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난날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배웠다. 순간의 고통을 통제하지 못하면 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사실을. 결국 예방주사는 내 인생을 죽음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가장 덜 아픈 방법이다.
트라우마를 대비하기 위한 '유체이탈' 훈련은 지난 훈련과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지난 훈련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고통스러운 순간을 제 3자의 시각으로 마치 소설책을 읽듯이 바라봤다면, 이번 훈련에서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영화를 재관람하는 것처럼, 당시 상황을 최대한 섬세하게, 반복적으로 상상해볼 것이다.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더 좋다. 그러나 당시의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그저 이 모든 것이 영화의 한 장면일 뿐이라고 상상하며 거리감을 두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장면마다 주인공이 느꼈을 다채로운 감정에 깊이 몰입하며 이야기의 결말까지 따라가 보자.
그러나 당신이 따라간 이야기에는 엔딩이 없을지도 모른다.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주인공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만 계속될 것이다. 장면이 반복될수록 당신의 시선은 주인공의 감정에서 상대 배우의 감정으로, 상대 배우의 감정에서 그 장면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이 사실이 아닌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인식될 때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주변을 살펴보자. 그 장면 속 주인공은 지금의 당신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당신은 현재 그 고통들과 얼마나 멀리 떨어진 채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 완전한 해방은 아니더라도 당신은 이미 그 고통과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당신을 괴롭게 한 지난날들이 정말 영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당신의 삶은 이미 충분히 달라졌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도 좋다. 스스로 부정하는 진실은 곧 거짓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훈련이 언젠가 당신의 마음을 열어줄 것은 분명하다.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당신이 얼마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졌는지 깨닫고, 당신을 힘들게 하는 그 고통이 이제 현존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길 바란다. 당신의 삶은 이미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