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듣쓰
사실, 트라우마를 예방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트라우마가 생길만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 문장이 황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말로는 쉽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트라우마가 생길만한 상황은 사고처럼 의도나 계획 없이 갑자기 발생하는데,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는 말은 음주운전을 예방하기 위해 이 세상의 모든 자동차를 없애버린다는 말처럼 어리석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뒷짐 지고 평생을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을 순 없다. 최소한 그런 상황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그런 상황과 마주치지 않을 수 있는 확실한 예방책이 필요하다. 마치 음주운전을 예방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처럼.
우리는 초등학교 국어 수업시간에 모국어의 말하기, 듣기, 쓰기를 배우는 교과서, 일명 '말듣쓰'를 학습해본 경험이 있다. 말하기 시간에는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된 글을 읽으며 상황에 맞는 말과 발음에 대해 배우고, 듣기 시간에는 상대방의 말에 경청하는 자세를 배우거나 다채로운 인물들로 구성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쓰기 시간에는 앞서 배운 내용들에 대해 또박또박 글자를 써보거나 글을 지어봄으로써 의사소통의 기본인 언어에 대해 배워간다.
갑자기 초등학생 국어 교과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에게 트라우마가 자리 잡힐만한 상황이 일반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쾌한 '소통'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소통의 과정에서 받는 마음의 상처들이 트라우마라는 이름의 깊은 흉터로 남아 우리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의사소통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기 위한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우리는 '말듣쓰'를 다시 배울 필요가 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기', '걸러서 듣기', '내 이야기 쓰기'
어른이 되어 다시 배우는 이 새로운 말듣쓰는 초등학생 때 배운 것과 이름부터 다르다. 먼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기'는 의사소통 중에 상대방에게서 받는 아픔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대화와 의사소통에 노출된다. 그중에는 하기 싫은 불편한 대화가 있을 것이고,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대화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전자의 경우에서 상처를 받지만, 아주 가끔씩 후자의 경우에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소통 도중에, 혹은 그 이후에 자신이 느꼈던 아픔에 대해 직접 말하는 것, 이것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기'다.
사람들은 보통 아픔을 무시하고 가볍게 넘기다가 병을 크게 키운다. 초기에 응급 처치만으로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었던 마음속 생채기가 방치되면 훗날 대수술을 요할 만큼 크고 깊은 상처(트라우마)가 되어 극심한 고통이 반복된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 당신의 아픔에 대해 말해보자. 상대방의 어떤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어떤 말이 불쾌했는지 그 사람에게 솔직하게 말하라. 어떠한 사과도, 반응도 기대하지 말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 당당히 말해라. '당신의 말에 상처받았다고.' 당신의 말이 나를 아프게 했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리는 것은 그냥 두면 언젠가 큰 상처로 번질 뻔했던 내 마음의 상처를 응급 처치하는 일이자,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여기서 말하기의 대상이 반드시 상대가 될 필요는 없다. 때로는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어도 좋다. 혼잣말을 중얼거려도 좋고,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속삭여도 좋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벌어진 어떤 행동 때문에 상처를 받았는지 나지막이 표현하는 그 과정 속에서 상처의 깊이와 고통의 크기는 정확하게 진단된다. 정확한 진단은 곧 고통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유도한다.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트라우마를 예방할 수 있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상황과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그런 상황이 자신에게 벌어지지 않도록 상황 자체와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참는 것만으로는 고통을 예방할 수 없다. 고통을 참기보다는 피해야 하고, 고통을 피하기보다는 고통스러운 상황 자체와 멀어져야 한다.
'걸러서 듣기'는 쉽게 말해 필터링이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나만의 여과장치로 걸러내어 모두 나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 암시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걸러서 듣기'의 핵심은 '해석'과 '차단'에 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에 의도치 않게 상처를 받는 것은 듣는 이의 잘못된 해석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치지 않기 위해 들려오는 말들을 최대한 나를 위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차단은 여과장치를 더욱 빽빽하게 채워 귀를 막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나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경청하지만 듣기 싫은 소음에는 귀를 막는 것처럼, 듣기 싫은 말이나 나를 아프게 하는 말에도 귀를 막아야 한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말은 소음공해에 가깝다. 불가피한 대화 자리에서 듣는 말들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귀를 기울이기 싫은 불편한 대화 자리에서는 귀를 막거나 대화 자체를 차단하는 것, 모두 걸러 듣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 쓰기'는 나에 대한 글을 써보는 것이다. 글쓰기 플랫폼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자기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궁금해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내 하루에 대해, 내 감정에 대해 글을 써보는 일은 굉장히 특별한 일이다. 내 삶을 기록해서 추억을 쌓아가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마주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행위다. 글을 쓰는 것은 말과 달리 공기 중으로 퍼져 흩어지지도 않고, 지워지기 전까지 우리 주위를 영원히 맴돈다. 한 글자 한 글자 솔직하게 눌러쓴 내 이야기는 곧 나의 분신이다. 글쓰기는 당신이 현재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가장 솔직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니 SNS로든, 공책으로든 자신을 표현하고 솔직한 자신과 마주하자. 나를 정확히 파악할 줄만 알아도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이 언제 나를 찾아올지 예측할 수 있고, 그것이 생길 만큼 위협적인 상황과도 안전하게 거리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참맛을 알아가며 삶을 멋지게 조립하고 있는 당신에게 찬물을 끼얹듯 트라우마 이야기를 꺼내어 마음이 불편하지만, 예방주사가 따끔할수록 우리의 면역력은 강해진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고통스러운 일에 미리 대비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자, 나를 아끼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그러니 마음껏 말하고, 듣고,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