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노트
'즐거운 방치'를 통해 즐거움의 스펙트럼을 확장해보았다면, 이어질 다음 단계에서는 반대로 그 스펙트럼을 좁혀볼 것이다.
어렵게 넓힌 스펙트럼을 우리는 왜 다시 좁혀야 할까? 지금 당신이 가진 즐거움의 스펙트럼은 필요 이상으로 확장되어 있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 용감히 뛰어들어 자신을 방치해보고, 그 과정에서 자아의 새로운 모습과 매력에 흠뻑 빠져본 당신, 이제 즐거움의 산더미 속에서 '진짜' 즐거움만 하나하나 골라낼 시간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른바 '가짜' 즐거움에 속는다. 타인의 즐거움에서 비롯된 '대리 만족감'을 '진짜' 즐거움과 헷갈리기도 하고, 단지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즐기는 척 감정을 속이기도 한다. 원치 않는 모임에서의 초대를 거절하지 못하고 즐거운 척하는 것은 명백한 가짜 즐거움에 속한다. 기분을 전환할 목적으로 형편에 어긋나도록 비싼 명품을 무리하게 구매하는 것 역시 가짜 즐거움의 예시다. 진정 '재밌게 살기'위해서는 이런 가짜 즐거움들 사이에 숨겨진 '진짜' 즐거움을 솎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짜들 중에서 진짜를 골라내는 연습을 통해 나중엔 가짜들 틈에서도 진짜만 찾아낼 줄 아는 노하우를 기르는 훈련. 당신은 어쩌면 학창 시절에 비슷한 훈련을 이미 해봤을지도 모른다. 오답을 정리하고 정답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노하우를 기르는 훈련, 바로 오답노트다. 갑자기 공부이야기가 나와서 거부감이 드는가?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오답노트가 수험생들의 오답노트만큼 복잡하지는 않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훈련들은 모두 어디까지나 당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력의 과정이니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따라가 보자.
오답노트. 이름에도 나와있듯이 '오답', 즉 먼저 틀려 봐야 한다. 그래서 당신은 낯선 환경에서 스스로를 방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당신은 자아의 원래 모습과 멀찍이 떨어져,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알 수 없는 다양한 모양의 즐거움들을 온몸으로 흡수했다. 자, 이제 채점의 시간이다. 당신에게 무엇이 진짜 즐거움인지 가려낼 시간이다. 평가 항목은 총 3개다. 인간관계, 일 또는 취미, 그리고 취향.
'인간관계' 항목에서는 당신이 만난 사람들에 대해 평가해볼 것이다. 누구와 만났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생각해보자. 그 감정이 너무 추상적이고 본인조차 이해하기 어렵다면 메모장에 간단히 풀어써보는 것도 좋다. 내가 어떤 성격의 사람들과 있을 때 편한지, 내가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가식적인 웃음이 아닌 영혼마저 미소 짓게 만들 정도로 '진짜' 웃음이 나오는지. 반대로 어떤 사람들과 있을 때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내뱉은 어떤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떠올려보자. 당신이 잠시라도 느낀 긍정적인 감정은 정답, 즉 '진짜' 즐거움이 되고,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졌다면 명백한 오답, '가짜' 즐거움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긍정적인 감정만 느낄 순 없는데 그렇다면 나의 모든 관계가 오답이 되는 것일까? 오답노트의 목적은 단지 '당신의 진실된 감정'에 대해 알아가는 데에 있다. 당신이 주변 사람과의 특정한 상황에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왜 즐거웠는지 스스로에 대해 이해해 보는 과정이다. 나와 가까워지라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과 멀어지라는 말이 아니니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길 바란다.
다음 평가 항목은 '일 또는 취미' 항목이다. 일은 하기 싫어도 생계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 항목에 일을 집어넣은 이유는 바로 일에서 억지로 즐거움을 찾으려다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직장에 정을 붙이기 위해, 혹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다니기 위해 우리는 억지로 즐거움을 붙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 억지스러운 마음가짐이 자기 자신마저 속일 때, 우리는 자아를 잃어버리는 위험한 상황에 빠진다. 처음부터 좋아하거나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니라면 그 일에 본인이 감동할 만한 스토리텔링이 생기지 않는 이상 평생을 해도 '진짜' 즐겁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그리고 자아를 잃고 싶지 않다면 일에서도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반면 '취미'는 약간 다르다. 취미는 그야말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에서 보다 정확한 채점과 오답노트가 요구되는 항목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나다움을 느끼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가지는 취미활동은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억지로 즐거우려고 취미를 갖는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취미가 나를 얼마나 들뜨게 하고, 내가 하루 중에 그 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또는 내가 그것에 얼마나 깊게 몰입할 수 있는지 생각하다 보면 나의 '진짜' 취미이자 '진짜'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점차 깨닫게 될 것이다.
마지막 항목 '취향'은 일종의 총평이다. 앞선 평가 항목의 결과를 나열하다 보면 내가 느끼는 '진짜' 즐거움도 무엇인지 알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느꼈던 어떤 감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어떤 활동을 할 때 느낀 어떤 감정이 좋았는지 차근차근 연결하다 보면 나만의 고유한 '즐거움의 스펙트럼'이 완성된다. 이는 곧 확실한 나의 취향이 된다. 하다못해 사계절이라는 사지선다형 문제에서 어떤 계절이 당신에게 정답인지 조차도 이제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수학적으로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정답으로 획일화될 수도 없다. 우리 마음은 각기 다른 수험시간과 각자의 고유한 정답표로 눈앞의 많은 것들을 천천히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의식과 주변의 눈치로 그 과정이 쉽게 무시되고, 그렇게 우리는 급하게 얻은 결과물을 자신에게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마음의 병을 얻는다. 지난날의 당신도 급하게 풀고 채점해버린 빵점짜리 시험지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비난했다. 그러니 앞으로는 급하게 풀다가 놓쳤던 문제도 다시 풀어보고, 틀린 문제는 오답노트에 적어 당신의 정답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가 보자.
이 오답노트는 당신의 새로운 인생에 든든한 내비게이션이 되어줄 것이다. 생선 뼈를 발라 맛있는 살만 쏙쏙 골라먹는 것처럼 당신도 인생에서 '진짜' 즐거움만 골라먹길 바란다. 우리 모두는 그럴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