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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in Jul 19. 2022

영화 『헤어질 결심』과 사람의 감정

hwain_film 추천 no. 24

제목: 헤어질 결심

감독: 박찬욱

출연: 박해일, 탕 웨이, 이정현, 김신영 등

네이버 평점: 8.87(2022.07.19 기준)

개봉: 2022


 감동과 여운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작품이 있고,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드는 작품이 있다. 물에 퍼지는 잉크처럼 조용히 퍼져 이내 파도처럼 압도하는 영화, 헤어질 결심을 소개한다.


 1. 6년 만의 복귀, 절제 속의 강렬함


 박찬욱 감독은 2016년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복귀했다. 6년 전에도 유수의 시상식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국내 개봉 전부터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비평가들은 이번 작품의 묘미를 '절제의 미학'으로 꼽았는데, 그럼에도 작품의 강렬함 만큼은 전혀 절제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은 감독의 전작에 비해 잔혹한 장면이나 파격적인 장면이 현저하게 적었지만, 작품 내내 난무하는 서스펜스 기법은 관객들을 압도시키기에 충분했다.  


 2. 디테일, 그리고 미장센


 관람평 중에서 유독 많았던 내용은 바로 '디테일'과 '미장센'.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인간 감정의 모순,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금기, 곱씹을수록 쫄깃한 유머가 담긴 대사까지. 이 모든 것이 자로 잰 듯이 딱 맞아떨어진다. 장황한 설명은 매끄러운 미장센으로 대체하고, 배우들의 열연은 그 좁디좁은 공백을 넘치지 않게 비집고 들어온다. 모든 장면과 대사, 배우들의 동선마저도 조화롭게 흘러간다. 관객들은 그 안에서 서서히 압도되다가 끝내 완전히 잠겨 허우적거릴 뿐이다.   


 3. 마침내, 단일한, 붕괴


 이 작품에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을 의도적으로 등장시킨다. 만약 한국어가 모국어인 한국 사람이 내뱉으면 어색하게 소모될 단어들이 한국말이 서툰 중국인의 입에서 아름답게 버벅이며 꽃 피워진다. '드디어'보다는 '마침내'가 애틋하게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고, '유일한'보다는 '단일한'이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끈끈이 휘감는 느낌을 주며, '망하다'보다는 '붕괴된다'는 표현이 더욱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두 사람이 보여준 금기된 사랑의 마침표는 '마침내', '단일한', '붕괴'로 남겨졌다.


 4. 사람의 감정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은 무엇일까. 주말 부부가 주마다 갖는 뜨거운 시간이 사랑일까? 배우자가 모르게 낯선 이와 나누는 시간이 사랑일까? 아니면 사랑한다는 말이 사랑일까?


 감정이란 지극히 추상적인 것이다. 애초에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행동이나 귀로 들을 수 있는 말로 감정을 유추하거나 짐작한다. 오감이 아닌 상상으로 느껴야만 하는 감정은 그래서 어렵다. 마치 뿌연 안갯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상대방의 감정은 쉽게 알 수 없고, 나의 감정 역시 어떤 감정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마치 상대방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진짜 눈물인지 인공 눈물인지 겉으로만 봐서는 잘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감정을 속단해서는 안 된다. 감정을 오해하여 사랑하는 이를 바다 깊은 곳에 빠뜨리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누군가가 나를 향해서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갯속을 들여다보듯 깊숙이 들여다봐야 한다.


 5.   - 사심으로 시작한 감정은 의심이 되었고, '마침내' 헤어질 결심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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