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in_film 추천 no. 25
제목: 남한산성
감독: 황동혁
출연: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등
네이버 평점: 8.17
개봉: 2017
시대의 집합체인 역사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써 살아 숨 쉰다. 이미 지나가버린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은 새로운 형태와 얼굴로 반복된다.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고증에 있어서 모두가 함구할 수밖에 없는 웰메이드 사극 영화, 남한 산성을 소개한다.
1. 패배의 역사
이 작품은 국뽕과는 거리가 먼, 수치심 가득한 패배의 역사를 다룬다. 수많은 외침이 조국을 위태롭게 만들었지만, 그중에서도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근본적인 기조를 뒤엎을 정도로 굵직한 침략, 왜란과 호란이 있었다. <명량>, <한산>으로도 연출된 바 있는 대승리의 역사는 우리들 몸속 깊숙이 자리 잡은 긍과의 DNA를 끌어올리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호란에서의 조상들의 쓰라린 참상은 말할 수 없는 분노와, 후손으로서의 겸손을 가중한다.
2. 좋은 사극 영화
이 작품은 거대한 CG, 강렬한 전투 장면 대신, 배우들의 묵직한 대사와, 완전한 고증에 집중했다. 역사의 섬세한 기록을 배우들의 대사로 녹여냈고, 실존 인물을 연기한 모든 배우들이 해당 인물들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대 인물들이 가졌을 사상과, 그들이 느꼈을 감정을 그대로 담아 펼치는 배우들의 연기는 이 작품을 '좋은 사극 영화'로 이끈다. 완벽한 고증과, 실존 인물들에 대한 배우들의 해박한 이해력으로 펼쳐지는 명품 연기의 향연. 좋은 사극 영화란 바로 이런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3. 명분의 국가, 조선
현시대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조선은 명분이 매우 중요한 국가였다. 절대 권력을 누린 왕마저도 명분 없이는 그 무소불위의 권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고, 신하들도 분명한 명분을 가진 왕을 섬기길 원했다. 그러던 와중에 정해진 질서나 명분 없이 등장한 강대국, '청'의 존재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근간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국내에서 오랫동안 굳어진 질서를 지키는 것과 국외에서 불어오는 변화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 중에서 과연 무엇을 택해야 할까.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무능한 모습만을 보여준 인조의 자리를 다른 인물이 대신했다고 해서 조선의 운명은 뒤집힐 수 있었을까. 역시 역사에서 만약이란 없다.
4. 척화와 화친
동명의 원작 소설 <남한산성>에서 김훈 작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척화는 실천 불가능한 정의이고, 화친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다." 현시대의 눈으로 보았을 때 당장의 치욕보다는 화친으로 실리를 추구해 훗날을 도모해야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레 나오지만, 지금도 '친미'와 '친중'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론에 대해 생각해보면 당시의 결정도 그리 쉬운 결정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새로운 형태로 반복된다. 후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반복된 실패를 최대한 피하는 것뿐이다. 그 당시 실천 불가능한 정의처럼 보였던 척화로 50만 명의 조선인들이 청에 피랍되었고, 실천 가능한 치욕으로 여겨진 화친은 사상자의 발생을 멈추었다. 결국 척화는 정의가 아니었고, 화친은 치욕이 아니었던 것이다.
5. 한 줄 평-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영원한 정답도, 영원한 오답도 없다. 다만 흘러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