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in_film 추천 no. 32
제목: 더 웨일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출연: 브렌든 프레이, 세이디 싱크, 홍 차우 등
네이버 평점: 9.0(23.03.01 기준)
개봉: 2023
영화는 항상 관객을 위해 무언가를 준다. 재미, 감동, 공포, 때로는 분노까지. 그런데 어떤 영화는 관객보다 배우에게 더 큰 무언가를 주기도 한다. 보통 그런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는 화면을 뚫고 나온다. 오랜만에 글이 쓰고 싶어지는 영화를 만났다. 영화, 더 웨일을 소개한다.
1. 또 A24?
요 근래 재미있게 본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바로 A24.
A24는 영화계의 판도를 뒤집고 있는 (사실상 이미 뒤집었다.) 영화사다. 최근 작품에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있었고, 그전에는 <미나리>, 더 이전에는 <미드소마>, <문라이트> 등이 있었다. 이 영화도 A24라는 뒷배가 있었다. 상당히 진보적인 가치들을 다양하게 보여주지만 여느 영화처럼 밉지 않고, 그래서 수용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야말로 새로운 것들을 가장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물론 감독의 역량이 가장 크겠지만, 이젠 영화를 보기 전 커피 원두를 확인하듯이 A24 마크를 확인하게 된다. 역시나 이 작품도 신선했다.
2. 브렌든 프레이
이 작품의 주인공을 연기한 브렌든 프레이는 산전과 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배우다.
그는 영화 <미이라>의 대흥행으로 톱스타가 되었지만 시리즈의 흥행에 눈이 먼 감독의 착취로 건강을 잃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혼까지 하면서 폐인이 된다. 게다가 할리우드 외신협회장에게 성추행을 당하면서 우울증에 폭식으로 외모도 역변해 버린다. 그 모습이 SNS 상에서 조롱거리(밈)가 되어버리니 배우로서의 커리어는 사망선고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감독은 그가 이 작품 속 주인공 찰리의 적임자라고 생각했고,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혼신의 연기를 펼친 그는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된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한 남자의 절실함이 스크린을 파괴하며 관객들의 가슴 깊숙한 곳을 찾아 파고든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다다르자, 어느새 찰리와 브렌든 프레이 두 사람 모두를 응원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했다. 배우와 관객의 경계가 모호할수록 작품이 주는 파괴력은 더욱 진해진다.
3. 더 웨일
영화는 상실을 보여준다. 찰리는 연인에 대한 상실로 체중이 272kg이 되는 폭식증을 앓고, 찰리의 외도(동성애)로 하루아침에 가장을 상실한 아내 '메리'와 딸 '엘리'는 혐오감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사춘기까지 겹쳐 더욱 짙은 혐오감을 가진 엘리는 소설 <모비딕>에서 고래 사냥에 혈안이 되어 있는 '에이햅' 선장처럼 몸집이 고래만큼 커진 찰리를 향해 분노를 쏟아낸다.
비단 그녀뿐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의 고래(상실)를 향해 작살(분노)을 던진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작살이 고래를 돌아오게 할 순 없다고. 아무리 배가 터져라 입 속에 음식물을 채워 넣어도 이미 죽은 연인은 돌아오지 못하고, 동성애자가 된 아빠를 향해 폭언을 쏟아내도 그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다. 결국 상실을 향한 분노는 상실감만 깊어지게 만들 뿐 상실감으로부터 우릴 구원해주지 못한다.
4. 용서, 그리고 구원
영화의 마지막에서 등장인물들은 상실감으로부터 구원받는 방법을 스스로 찾는다. 바로 용서다.
애인의 죽음을 막지 못한 자신을 향한 분노에 폭식을 시작한 찰리는 끝내 분노를 접고 스스로를 용서했고, 엘리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빠를 용서한다. 극 중에서는 종교적인 언어들도 등장하지만, 결국 상처받은 이들을 구원해 준 것은 사람의 용서였다.
용서는 분노의 철회다. 던진 작살들을 다시 회수하는 것이다. 분노의 철회는 두 사람을 구원한다. 던진 작살들을 다시 줍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먼저 용서해 구원하고, 상대에게 이미 꽂힌 작살들도 하나둘씩 뽑아주면서 그를 구원한다.
5. 한 줄 평- 작살을 던진 사람이 작살을 뽑을 수 있고, 작살이 뽑힌 고래가 더 멀리 헤엄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