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in 단편선 (6)
애초에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었다. 물론 와이프의 입장도 들어 봐야겠지만.
최 경사는 오랜 수험 생활을 청산하고 떠난 유럽 여행에서 소현을 처음 만났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서 그녀를 만났고, 입국 수속을 돕던 그녀의 친절함에 최 경사는 자신의 첫 키스와 총각 딱지를 바쳤다. 그가 기대했던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그녀와의 영원을 약속했다.
미래가 보장된 이의 연애는 파죽지세로 흘러갔다.
최 경사는 귀국 후 가족과 지인들에게 소현을 소개해 주었고, 결혼이라는 이름의 골문 앞에 최 경사는 최전방 공격수였다. 그러나 그의 슈팅이 곧바로 골문을 흔들지 못했다.
경찰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최 경사의 집착은 더욱 지독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소현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의 마음은 손편지와 이메일로도 전해졌다.
소현은 때때로 답장했고, 자주 답장하지 않았다.
소속이 배정되고 소현을 다시 만나는 날, 최 경사는 두 눈을 의심했다. 그가 그토록 그리던 그녀가 옆에 남자를 끼고 온 것이었다. 둘은 프랑스 니스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처음 만났다고 그 남자는 설명했다.
최 경사는 주먹을 꺼내 들었지만 본인의 신분을 자각하고 방향을 벽 쪽으로 틀었다. 주먹이 새까맣게 타들어 갈 때까지 벽을 쳐댔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입에선 분노와 울음이 섞인 괴성이 나왔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
”이제 놓아줘. 우리 이제 남이야. “
최 경사는 문득 자신이 어쩌다 이 여자와 관계를 회복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지 생각했다. 침대는 땀으로 젖어 있었고,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장에게 전화가 왔다.
“소식은 들었다. 당분간 휴가 나가라. 출근해 봐야 보는 너를 우리가 더 힘드니까.”
“...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그는 가장 먼저 소주를 병째 꺼내 들고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몸을 벽에 기대었다.
며칠 째 아파트 cctv를 죄다 뒤지고, 처가와 와이프의 지인 한 명 한 명을 심문했더니 온몸과 영혼이 물에 젖은 솜 같았다. 곯은 몸에 알코올까지 들어가니 곧 졸음이 쏟아졌다.
“다신 안 그럴 게. 미안해..” 보름 후 서까지 직접 찾아온 소현의 몰골은 이미 사람의 형상과 거리가 멀었다.
“이제 우린 남이라며. 그 사람이랑 결혼까지 할 것 같더니 왜 다시 돌아온 거야?”
“제발. 내가 다 잘못했어..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그녀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말을 할 때마다 턱이 덜덜 떨렸다.
우여곡절을 듣다 보니 소현은 그 사람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데이트 폭력에서부터 동영상 촬영까지. 그녀는 본인 인생에서 최악의 남자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새끼 지금 어딨어?”
또다시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벽에 기댄 채로 몇 시간을 더 잔 모양이었다.
“예, 여보세요.”
“야, 형섭아. 뉴스 봤냐?” 김 경장의 목소리다.
“뭔데.. 별 거 아니면 진짜 죽일 거야 너.. “
”아 자느라 못 봤구나... 아... 이게 뭐냐면.. “
그는 군중심리에서 비롯된 음모론인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현상인지 모를 기이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그 소문은 증발 사건의 원인에 대한 내용이었다. 김 경장이 두서없이 요약한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증발은 사라지는 게 아닌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신체가 작아지는 ‘바이러스’라는 점,
호흡기로 전파되고 감염될 시 신체가 급격하게 작아지며 온 세포가 얇은 수포로 뒤덮이는 신체 변형이 일어나는데, 그 모습이 꼭 파리와 비슷하다는 점.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최 경사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을 김 경장에서 쏟아부었다. 김 경장은 예상했다는 듯이 통화를 끊고 각종 뉴스 기사와 구글 검색 결과를 링크로 보내주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이 논리에 동조하고 있었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었다.
“사람이 파리가 된다라..” 최 경사는 실성한 듯 보였다. 그는 만약 와이프가 파리가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지 생각해 보았다.
일단 사망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인지, 실종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인지 결정할 수 없었다.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 만약 찾는다면 파리가 된 아내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안방의 적막을 깨고 어떤 소리가 났다. 집중을 해야만 들릴 정도의 작고 힘없는 날갯짓 소리였다.
형광등 옆으로 엄지손톱보다 조금 작은 까만 생명체가 다리를 비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