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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in Apr 02. 2023

더운 죽에 파리 날아들듯(下)

hwain 단편선 (7)

 소현의 연애는 항상 불안했다. 학창 시절의 연애는 좋아도 그때는 좋은 줄 몰랐고, 성인의 연애는 언제나 자극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연애의 끝에 그녀는 언제나 본인이 피해자였음을 증명해야 했다.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장까지 찾아온 남자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났다. 출국과 귀국을 반복하면서 그녀는 붕괴된 내면을 서서히 되찾아갔다.


 누군가와 언젠가를 위해 준비한 결혼 자금은 어느새 여행 경비가 되었고, 부족해지자 퇴직금까지 부어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형섭을 만났다.


 형섭은 그동안 만나보지 못한, 빈틈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나 너무 까매서 텅 빈듯한 그의 눈동자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어 보였다.


 정의를 넣으면 정의감에 불타고, 사랑을 넣으면 다정함이 느껴지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녀는 제발 그 눈에 자신을 위협하는 게 담기지 않길 바랐고, 제발 이 남자의 상냥함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길 바랐다.


 그녀의 바람대로 형섭의 눈빛은 사랑과 다정함으로만 가득했다.


 형섭은 소현에게서 은은히 풍기는 아카시아 향이 좋아한다 말했고, 그것을 영원히 맡고 싶다는 밋밋한 멘트로 청혼했다. 소현은 그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향기라는 원초적인 단어로 사랑을 고백하는 이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휴식이 불규칙한 형섭의 직업이 사랑의 온도를 더욱 달구었고, 틈틈이 나누는 사랑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록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처음에 소현은 본인의 과거가 새 생명의 안착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며 자책했다. 그럴 때마다 형섭은 소현을 다독이며 열심히 자신을 관리했고, 그 모습에 그녀는 다른 측면의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기나긴 실망은 둘에게 고문이 되었고, 이내 대화까지 단절시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형섭은 일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소현은 그런 그를 기다렸다.


 형섭이 집에서 저녁밥을 먹는 시간이 두 사람의 유일한 대화창구였다.


 “오늘은 뭐 했어?”


 “일했지 뭐.” 그가 귀찮은 듯한 기색을 보였다.


 “무슨 일이었는데?” 소현이 그의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말하고 다니면 안 돼. 별일 없었어.” 형섭의 눈은 휴대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구나.”


 ”저기. 되도록이면 외출 안 해도 씻어. 너한테 냄새난다. “ 소현의 눈에 형섭의 무표정이 보였다.


 ”씻었는데 왜 냄새가 나지? “ 그녀가 머리카락을 코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이상한 꽃 냄새 비슷한 게 나는데. “

 

 ”꽃? 좋은 거 아니야? 너도 꽃 냄새 좋아하잖아. “


 ”무슨 소리야. 나 꽃 싫어해. “ 형섭은  조용히 식사를 계속했다.


 하루는 형섭이 회식에서 얼큰하게 취해 집에 들어온 날이 있었다.


 “여보. 소현아.” 형섭이 몸을 비틀거리며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가 쓰러졌다.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


 “나, 뭐 하나만 물어보자. 너 예전에 애 지운 적 있었어?” 그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뭐라고? “ 소현의 표정이 굳었다.


 ”예전에 만난 놈들이랑 실수한 적 있었다 했잖아. 혹시 내가 모르는 얘기가 더 있었나 해서. “ 형섭의 취기 가득한 목소리에는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었다.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아니~ 서장님이 애기 지우면 다시 갖기 힘들 수 있다고 그래서. 그런 거면 우리도 이제 너무 애쓰지 말자고.”




 파리에게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아카시야 향이었다. 그 순간 최 경사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나왔다.


 “젠장, 젠장..”


 최 경사는 집에 돌아왔을 때부터 거실 한편에 와이프의 속옷과 잠옷 꾸러미가 쌓여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여... 여보! “


 벽에 붙은 파리는 적갈색 다리를 비비며 최 경사를 바라보았다. 최 경사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호흡은 진정되지 않았다. 한참 멍하니 서 있던 그는 일단 수건과 옷으로 문틈과 창틀을 막아 놓았다.


 그리고 방 안을 제외한 모든 불빛을 껐다. 파리는 최 경사의 요란한 움직임에도 가만히 있었다. 형섭은 일단 파리를 유리병에 옮겼다. 그리고 랩을 씌워 파리가 숨을 잘 쉴 수 있도록 작은 구멍 여러 개를 뚫었다.


 최 경사는 파리의 수명을 검색했다. 2주 남짓되는 시간이었다. 그는 잘게 썰은 과일을 유리병에 집어넣었고, 빨대로 물을 조금씩 흘려주었다.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 검색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파리의 몸에 꿀을 바르면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글 아래에 따라 했다가 파리가 죽어버렸다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최 경사는 눈물 젖은 베개 위에서 깨어나 울다가 지쳐 다시 잠들었다. 그는 계속해서 유리병 속의 파리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파리가 뒤집혀 있었다. 최 경사는 유리병을 뒤집어 손바닥에 털며 파리를 꺼냈다. 파리는 깊은 잠에 빠진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최 경사는 오열하다 쓰러졌다. 세상이 반쪽 나는 슬픔이었다. 슬픔을 외면해도 곧 현실로 돌아오는 그 현실이 애석했다.


 그는 손바닥 위의 파리를 손수건에 옮겨 감쌌다. 눈을 감으면 소현의 얼굴이 보였고, 그녀의 음성이 들렸으며, 달큰한 아카시아 꽃 향기가 났다.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가볍게 쥔 손수건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자 눈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흘렀다.


 그는 실성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처럼 보잘것없는 남자를 만나서 얼마나 고생했니. 우리가 아이를 가지지 못한 건 절대로 네 탓이 아니었어. 그걸 말해줬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 정말.”


 아무도 없는 방에서 그의 목소리가 공명 쳤다. 그리고 그 순간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어? 아직 출근 안 했네? 잘 됐네. 이거 한번 읽어보고 도장 찍어줘. 우리 이제 갈라서자.”


 소현이 형섭에게 노란색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형섭은 멍하니 봉투를 들여다보았다. 법률사무소의 이름과 함께 ‘이혼 전문’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어디선가 진한 아카시야 향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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