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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in Apr 13. 2023

어느 대통령의 죽음

hwain 단편선 (10)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죽었다."


SNS에 올라온 짤막한 글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내용은 이러했다. 대통령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정부와 언론은 이를 은폐하는 중이라는 이야기.


처음에는 반대 진영의 급진적인 세력에서 퍼뜨린 싸구려 가짜 뉴스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3시간 후에 올라온 또 다른 영상이 믿기 힘든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는 사실로 만들었다.


영상은 대통령 관저의 가장 은밀한 장소에서 시작된다. 영상의 구도와 각도를 보면 누군가가 뒤에서 몰래 촬영한 영상처럼 보인다. 영상을 더욱 충격적으로 꾸미는 것은 대통령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는 점(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지만)과, 영상 말미에 그가 욕실 바닥에 흥건한 거품을 밟고 욕조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한다는 점이다.


영상의 조회수는 끝없이 올라갔고, 이를 틈타 채널의 수익과 구독자를 올리려던 사람들 때문에 영상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의 추측은 다양했다.


 북의 소행으로 보기엔 무척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고, 최근 대통령과의 불화설이 대두되던 참모진들도 유력한 용의자가 되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영부인의 치정극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영상이 풀리고 주식시장도 요동쳤다. 주가가 폭락해서 전쟁 분위기가 조성된 것인지, 전쟁 위기가 주가를 폭락시킨 것인지 모든 요소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난세의 판이 짜졌다.


대통령 관저가 민중과 민중의 지팡이로 둘러 쌓였다. 민중은 또다시 두 갈래의 목소리로 나뉘었는데, 한쪽은 대통령의 죽음의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목소리, 다른 쪽은 국가의 원수를 죽인 북한과의 전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정부가 입장을 표명했다. 당연히 국무총리가 나설 줄 알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발표자를 보고 새파랗게 질렸다.


 “국민 여러분들께 혼란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는 무사히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대통령이었다. 그는 건강해 보였다. 그래, 멀쩡해 보였다.


대통령의 연설 방송은 TV와 유튜브로 생중계되었고 녹화본은 유사 언론 기관에서 가공되어 대중에게 깊이 전달되었다.


대통령의 입장 표명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기 달랐는데, 국가 비상사태를 우려한 정부에서 대통령과 똑같이 생긴 연기자를 내세웠다는 반응도 있었고, 일류 의료진에게 급하게 수술을 받고 의식을 회복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반응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영상을 만든 것인가 ‘


불안감과 긴급함 때문에 이성적인 해석을 내놓지 못했던 전문가들이 영상을 다시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사실을 알고 다시 본 영상은 확실히 조잡했다.


영상 속 대통령의 손가락은 6개였고, 그의 귀가 어색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며, 특히 머리카락 부분은 퀄리티가 너무 떨어져 만화 같았다.


전문가들은 해당 영상이 딥페이크와 AI 기술로 만들어진 가짜 영상이라고 결론 내렸다.


초대형 해프닝으로 전락한 국가 원수 사망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밈이 되어 세계를 떠돌기 시작했고, 나무위키를 비롯한 각종 오픈 백과사전에서는 이 사건을 국민들의 무지함과 인공지능 기술의 파괴력을 볼 수 있었던 충격적인 사건으로 정리되었다.


이미 사건이 일단락되었음에도 광화문과 대통령 관저 앞은 항상 시위로 복잡스러웠다. 시위대는 사이버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고 주장했다.


 국민들은 본인이 착각했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을 수단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시위대의 고성이 커질수록 대통령의 지지율은 나날이 떨어졌고, 곧 탄핵에 대한 여론까지 조성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뉴스에서 대통령의 사망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집무실에서 자필로 유서를 쓰고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기사였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영상이 조잡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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