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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퐈느님 Apr 12. 2016

[Cuba] 나는 무엇을 먹어야 했을까

특색 없지만 어쩐지 궁금한 쿠바에서 먹고 마신 이야기 2

쿠바 음식이라고 하면 영화 때문에 알려진 쿠바 샌드위치 말고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사실 쿠바 샌드위치는 쿠바에서 온 이민자들에 의한 음식이라고 한다)

멕시코엔 타코, 칠레에 와인, 아르헨티나 소고기 등등 다른 중남미 나라에 비해 나에게 쿠바 하면 떠오르는 건... 글쎄, 시가 정도였다.

쿠바는 역사적인 이유에서 스페인과 아프리카의 문화가 섞여있다고 한다. 음식 역시 아프리카의 요리법과 스페인의 요리법이 섞여있다고 한다.

강렬히 특색 있는 음식은 없었지만 쿠바에서의 먹고 마신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쿠바 전통음식은 뭔가요?

먹고 마시는 게 중요한 나에게 쿠바 입국 전부터 쿠바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쿠바 음식에 대한 정보는 중요했다. 하지만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쿠바는 특별히 맛있는 음식이 없다는 이야기뿐.

거의 지구 반 바퀴를 날아온 쿠바인데,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일단 비싸도 한 번쯤 쿠바 전통음식 전문점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여행책에 나온 '조금 비싸다'는 쿠바 음식점에서 종업원에게 Traditional Cuba Style(?)로 추천 요청하여 나온 음식은 얇게 저민 소고기 스테이크와 쌀, 쥬카(Yuka)였다.

전통음식점에서 추천 받아 주문한 쿠바전통음식이라는데..

검은콩과 쌀로 만든 음식을 Moros y Cristianos라는 쉽지 않은 이름이었다. 일단 나에겐 흑미콩밥 같은 느낌이었다.

Moros y Cristianos

물론 쿠바의 맥주를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더운 날씨 덕인지, 조금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어서였는지 맥주 두병 시켰는데도 칠링을 해주었다.


바나나인 줄로만 알고 먹다 진짜 바나나 튀김과 비교해보니 전혀 다른 음식의 정체는 바로 쥬카(Yuka). 짧은 스페인어로 물어보니 뿌리의 한 종류라고 한다. 서양요리에 감자가 여러 가지 조리법으로 곁들여 나오듯 쿠바의 요리에서 종종 등장하는데 그냥 봤을 때는 마처럼 생겼다. 보통 식당에서는 쪄서 내놓거나 튀겨서 내놓았다. 감자보다 좀 더 수분이 많고 고구마처럼 결이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쥬카(Yuka)

바나나(Platano) 튀김 역시 쿠바 요리에 많이 곁들여져 나온다.

바나나 튀김

쿠바에서는 특별한 요리라던지 특별한 조리법이 따로 있지 않다고 한다. 소스가 발달하지 못해 보통 굽거나 찌거나 삶는 요리들이었다.

대신, 쿠바에서는 비료 사용이 불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먹는 음식들이 다 유기농이라는 것?

그래도 솔직히 뛰어난 맛은 없었다.

흑미밥. 무엇을 시키든 밥을 산더미처럼 줬다.


일반 쿡(CUC)식당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메뉴들. 특색있는 음식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해산물이 풍부한 섬나라, 쿠바

쿠바를 여행하기 전,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에 따르면 쿠바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은 랍스터였다고 했다. 바닷가재는 그냥 쪄도, 그리고 구워도 다 맛있을 재료다. 비싸서 못 먹을 뿐.

어류가 풍부한 쿠바에서는 바닷가재,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랍스터(Lobster)라고 부르는 음식이 우리나라에서보다 훨씬 싸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 특색 있는 음식이 별거냐, 맛있으면 되지!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0마리는 먹고 오겠다는 심산으로 입국했었다.

비냘레스의 까사에서 맛본 바닷가재

비냘레스 방문 중에 가정집, 그러니까 까사(Casa)에서 맛본 바닷가재

살도 꽉 차고 엄청 크다. 9 CUC, 그러니까 미화 9불 정도의 가격이었다. (당연히 흥정한 가격)

바닷가재를 시켰더니 밑반찬(?)이 엄청나게 나왔다.

아바나의 현지인 식당에서 맛본 바닷가재. 랍스터랑은 종류가 살짝 다른 랑구스틴(Langoustine)이라고 한다. 어쨌든 나에겐 바닷가재. 이것 역시 비슷한 가격대였다.

현지인(CUP)식당에서 3인이 함께한 한상 가득한 해산물 (각기 다른 조리법의 바닷가재 삼종)

바닷가재는 한국에서 사 먹는 것보다야 싸지만 역시 현지인들에게는 꽤 고가의 음식이었다. 손님이 엄청 많은 까사 주인 정도는 되야 사 먹는다고. (영어 좀 할 수 있는 까사에는 방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항상 손님이 북적였다. 정부에 세금을 내겠지만, 꽤 부자인듯했다.)

갑각류 알레르기 때문에 입술이 엄청나게 부어버려 쿠바에선 바닷가재는 2번 밖에 못 사 먹었지만(내가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것도 한몫했지만) 나 역시 쿠바에서 먹은 음식 중 제일은 바닷가재라 할 수 있겠다.

같은 식당에서 다른날 먹은 생선요리


정말 저렴한 현지인 식당

고작 일주일 체류해놓고 쓰는 쿠바 이야기에서도 등장했지만 쿠바는 외국인용 화폐가 따로 있기에 외국인 화폐를 받는 식당도 따로 있었다. 외국인 화폐를 받는 식당(CUC식당)에 간다면 우리나라나 유럽과 별다르지 않은 음식값에 놀라겠지만 현지인 식당(CUP식당)에 간다면 쿠바가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도시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길거리 햄버거는 15 CUP, 그러니까 대략 7~800원 정도였다. 물론 굉장히 부실한 맛이지만 줄 서서 사 먹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좀 더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가장 비싼 햄버거는 25 CUP, 그러니까 대략 미화 1불, 한화로 1200원 정도였다.

모네다(CUP) 길거리 음식. 줄서서 먹어야해서 굉장히 맛있을 줄 알았다

피자 역시 길거리에서 많이 파는데 식당에서 앉아서 먹을 경우도 25~30 CUP, 그러니까 1불 정도로 작은 피자를 먹을 수 있었다. 성인 여자 기준 2인 1 피자 가능할 사이즈였다.

쿡(CUC)식당에서는 칠링까지 해주는데.. 그래도 가격차이가 엄청나기에 저렴한 모네다 식당은 배낭여행자에게 필수적인 곳

물론 맛까지 기대할 수는 없지만 식당에서 먹는 음식에도 맛을 기대할 수 없다면 저렴한 피자나 햄버거로 배를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줄서서 먹는 츄러스
솔직히 요즘 한국에 많아진 츄러스 전문점이 훨씬 맛있다만 이 츄러스가 당연히 훨씬 저렴하다


쿠바엔 럼(Rum)이 있다.

멕시코에 데낄라가 있다면 쿠바엔 럼이 있을 것이다. 쿠바의 전통술은 우리에게도 아주 낯설지는 않은 럼(혹은 럼주, Rum)이라는 술이 있다. 보통 나의 경우에는 칵테일로(럼콕이라던지, 모히또라던지) 친숙한 술인데 이 술은 쿠바의 전통 술이다. (유명한 럼 브랜드로는 아바나 클럽이라던지, 바카디가 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쿠바에는 사탕수수 재배가 많았는데 럼은 사탕수수를 원료로 하는 술로 굉장히 독하다. 너무 독하기 때문에 솔직히 그냥 마시기는 굉장한 부담이 있다.

쿠바에서는 럼을 이용한 다양한 칵테일을 맛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는 굉~장히 저렴하다)


쿠바에서 마시는 모히또

럼이 들어가는 칵테일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모히또. 쿠바 가면 모히또 한잔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모히또는 인스턴트였던 것일까? 아바나의 재즈클럽에서 마시는 모히또, 바라데로의 바닷가에서 마시는 모히또 모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상큼함에 짜릿해지는 맛이랄까. 럼이 들어간 칵테일 중 최고봉은 쿠바에서 마신 모히또가 아닐까 싶다.

아바나의 재즈클럽에서 마신 모히또. 다 마시고야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제일 많이 마신 음료, 피냐콜라다

피냐콜라다는 Pina, 그러니까 파인애플이 들어가는 달짝지근한 칵테일이다. 어떤 식당을 가도 모히또는 없어도 피냐콜라다는 반드시 메뉴판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쿠바에 있는 일주일동안 족히 30잔은 마신 것 같다. 우리나라 Bar에서 마시는 것보다 3배 이상은 술 맛이 많이 나서 달달하기만 한 피냐콜라다를 기대했다면 술 빼고 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냘레스에서 마신 피냐콜라다
바라데로의 리조트에서 마신 피냐콜라다


헤밍웨이의 흔적이 묻어있는 나라

생전 처음 보는 동생의 친구를 인터넷도 안 되는 아바나의 한 가운데에서 만났었다. 한국이었다면 서로 잘 몰랐을 텐데, 동양인이 드문 이 곳, 지구 반 바퀴를 날아온 이곳에서 만났기에 우리가 술 한잔할 곳으로 헤밍웨이가 자주 다녔던 엘플로리다타(El Floridita)로 향했다.

쿠바 하면 떠오르는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두 명 있는데,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쿠바인이 아니다.) 헤밍웨이가 자주 다녔던 장소들은 쿠바의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다.

그중 나와 동생의 친구가 갔던 엘플로리다타는 헤밍웨이가 다녔던 술집으로 럼이 들어간 다이끼리(Daiquiri)라는 칵테일을 즐겨마셨다고 한다. 헤밍웨이도 헤밍웨이지만 다이끼리 한잔에, 처음 본 사이였음에도 여행자임을 잠시 망각하고 마치 서울 신촌에서 동생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 정도로 끈끈한 반가움이 있었다.

Bar 한구석에 헤밍웨이의 동상이 있다.
"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

휴학생 신분인 동생 친구에게선 20대 중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생그러운 젊음이, 야근과 상사의 눈치가 아직 찌들지 않은 반짝반짝함이 느껴졌다. 미래에 대한 걱정 반 기대 반의 그 눈빛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도 저 눈빛을 가지고 선배들을 바라보던 때가 있었겠지?  

일주일이라는 짧은 체류시간이었지만 헤밍웨이의 흔적을 느끼고 갈 시간은 충분하지 않을까. 엘 플로리다타에서 헤밍웨이가 마셨다는 다이끼리 한잔은 관광객이라면 어렵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문화유산도시의 전통 칵테일, 칸찬차라

쿠바에는 세계문화유산도시로 지정된 뜨리니다드(Trinidad)라는 지역이 있다. 도시 전체가 과거 쿠바를 느낄 수 있고 인근 지역에는 사탕수수 농장지역도 있는, 아바나에서는 조금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아기자기한 관광 도시다.

그 곳에는 럼이 아닌 좀 덜 정제된 술과 꿀을 넣은 칵테일, 칸찬차라가 유명하다고 한다. 뜨리니다드는 사탕수수와 꿀이 유명하다니 유명한 것들로 만들어진 술을 내가 어찌 그냥 지나치리.

쿠바의 맛이 이런 맛일까

토기처럼 생긴 그릇에 나오는데 주문하면 즉석에서 꿀을 섞어줬다. 관광지여서인지 모히또보다 비싼 가격이었는데 꿀의 단맛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거친 술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모히또나 피냐콜라다처럼 많은 것이 첨가되지 않고 꿀과 술만으로 만들어진 투박한 맛에 가장 어울리는 술잔이 아닐까 싶었다.

달면서도 쓰고, 술잔부터 투박한 그 맛이 어쩌면 쿠바의 역사와 살아온 흔적을 보여주는 맛이지 않았을까.


사탕수수 즙, 달고 시원한 서민들의 음료

럼이 유명할 만큼 사탕수수가 많이 재배되는 쿠바에서는 사탕수수 즙, 사탕수수 주스를 오며 가며 마실 수 있었다. 한잔에 100원도 안 하는 착한 가격으로, 거리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무언갈 마시고 있으면 그곳에 사탕수수 즙을 사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여행자보다는 현지인들이 주로 마시는데, 가격이 적혀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파는지 적혀있는 것도 아니었다. 얼음을 동동 띄운 사탕수수 즙 한잔에 1 CUP였는데 잔돈이 없어 10 CUP를 들고 쭈뼛쭈뼛 차례를 기다리는 나를 보고 내가 마실 음료까지 한 인력거꾼이 계산해주었다. (아바나 시내에는 1~2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인력거를 끌고 다니는 인력거꾼이 많았다.)

가게 뒤편에는 계속해서 사탕수수로 즙을 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거 정말 맛있다!

뜨거운 아바나의 거리를 걷다 차갑고 달달한 사탕수수즙 한잔은 한여름 마시는 식혜가 떠오르는 맛이었다고 할까. 세 번, 네 번 마셨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또 마시고 싶다.


내가 묵었던 까사 앞에는 빵집이 있었는데 빵집에서 이제 갓 나온 빵도 맛이 없었다. 버터를 덜 쓰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보통의 빵집을 지나가면 나는 코를 찌르는 고소한 냄새가 쿠바의 빵집에서는 많이 나지 않았다.

쿠바 여행자 후기 중에 쿠바 음식이 맛있다는 후기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에게 쿠바는 음식 맛이 특색 없어도, 한 달은 머물고 싶은 매력적인 나라였다.


- 특색 없지만 어쩐지 궁금한 쿠바에서 먹고 마신 이야기 1 (쿠바 커피)

- 고작 일주일 체류해놓고 쓰는 쿠바 이야기

아바나의 시간은 천천히, 하지만 생동감 있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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