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색 없지만 어쩐지 궁금한 쿠바에서 먹고 마신 이야기 1
커피는 잘 모르지만 중남미 커피가 유명한 건 알고 있었다. 핸드드립 까페에 가면 자주 만나는 원두의 생산지들이 주로 아프리카 아니면 중남미 아니던가!
내가 방문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 중 물가가 저렴한 편에 속하던 쿠바에서는 커피 맛도 모르는 내가 1일 1 커피를 했다. 나에게 커피라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날이면 회사 선배들이 회사 건물 아래에서 사주는 아메리카노나 점심을 먹고 난 후 동료들과 수다 떨며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전부 아니었던가.
그래, 그때도 그렇게 커피맛도 잘 모르면서도 1일 1 커피 이상 마시긴 했다.
우리나라보다 커피를 오래 마셨던 중남미에서는 에스프레소 샷에 물을 타 먹는 아메리카노보다는 그냥 에스프레소가 훨씬 대중적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나도 미국식 Coffee라는 이름보다는 Cafe, 까풰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졌다.
혼자라도 괜찮아, 두 잔 마시면 되니까 Cafe El Escorial
아바나의 비에하 광장에 있는 Cafe El Escorial은 오래된 커피숍으로 여행자들 사이에 유명한 커피숍이다. 서양인들에게 유명한 여행사이트나 여행 가이드북에 빠지지 않고 소개되고 있으니 말이다.
지독한 길치인지라 전날 저녁 길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길 안내를 받아 이 커피숍까지 올 수 있었다. 커피맛도 모르는 나는 에스프레소고 뭐고 너무 더워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곁들여 마셨다.
이게 웬걸! 눈이 번쩍 뜨이는 맛있는 맛! 이게 쿠바 커피구나.
다음날 일찍 오픈 시간에 맞춰 재방문한 Cafe El Escorial에서는 광장이 다 보이는 좋은 자리에 앉아 일말의 고민도 없이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마치 일행이 뒤따라 올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올 사람 누가 있으리, 두 잔 다 내가 마실 예정이었다.
Traditional Coffee의 잔당 평균 2불이 안 되는 가격이니 우리나라 커피값에 비교해보자면 분명 싸다고 느껴지지만, 길에서 현지인 대상으로 파는 Cafe의 24배 정도였다.
앉아서 커피 마시는 사람들보다는 원두를 사러 오는 줄이 더 길었다. 맛집 맞나 보다.
커피를 시켜놓고 보니 주변에 호텔이 많아서인지 부부나 연인으로 보이는 여행객들이 아침 겸 커피를 마시러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꽤 오래 앉아 까풰를 즐긴지라 다른 테이블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아침이지만 예쁜 옷으로 꾸며 입고 앉아 오늘의 일정에 대해 토론하거나 각자 여행 온 커플들끼리 본인들의 나라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굉장히 부러웠다.
배낭여행자인 내가 혼자라서 그들이 부러웠던 건지, 예쁜 옷에 화사한 화장이 부러웠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 앞에는 아주 훌륭한 커피가 두 잔이나 있잖아.
나도 집에 가면 예쁜 옷으로 꾸며 입을 수 있잖아, 부러울 것 없다 생각하는데 어제 길을 안내해준 여행자들 역시 어제의 커피맛에 반해 재방문한 것 아닌가! 그들이 어쩜 그렇게 반가웠는지! 내가 앉아있던 광장이 다 보이는 자리에 기분 좋은 합석으로 함께 향긋한 모닝 까풰 한잔의 여유를 즐겼다.
1잔에 100원도 안 하는 에스프레소
쿠바 물가가 싸다고 하기도 하고 비싸다고 하기도 하는데,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쿡(CUC) 식당을 이용한다면 유럽 여행할 때 느끼는 물가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싸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모네다(CUP) 식당은 굉장히 저렴하다. 에스프레소 한잔에 1 CUP,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100원도 안 했다. (대략 50원 정도)
오며 가며 지나가며 한잔씩 마시고 컵을 반납하면 되는데 진한 에스프레소에 굉장히 달달한 까풰다. 보통 우리가 자판기 커피 한잔씩 뽑아먹듯 쿠바에서는 현지인들이 오며 가며 한잔씩 까풰를 마시곤 하더라.
매일 아침 마시는 커피 한잔
쿠바에는 정부 허가 민박, 그러니까 까사(Casa) 형태의 숙소가 여행자들의 일반적인 숙소 형태로, 내가 묵는 까사에 돈을 주면 아침이나 저녁식사를 해주기도 한다.
배낭만 멘 가난한 여행자에다 아침을 가볍게 먹는 나에게 까사의 아침 식사는 비싼 편이었으니(쿠바 물가가 싸기 때문에 보통 길거리 음식은 굉장히 저렴하다) 아침을 먹진 않았다.
아바나에서 묵었던 까사 주인 할머니는 오전 9시, 10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서는 나에게 항상 까풰를 한잔 권하셨다. 돈 받지 않을 테니 한잔 하라고. (대화는 각각 할머니는 스페인어로, 나는 영어로 각각 말해도 신기하게도 통하였다. 심지어 내가 다른 지역에 잠시 여행 다녀온다고 짐 맡아달라는 말도 통하였으니 이 얼마나 신기방기한 일이 아닐쏜가)
할머니가 주시는 커피 마저도 얼마나 향긋하고 맛있었는지!
소박 한듯한 까풰 한잔이지만 정갈하고 클래식하게 차려주신지라, Cafe El Escorial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보다 더 비싼 커피숍에서 마시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에스프레소는 입에도 못 대던 내가 두 잔이나 마실 수 있게, 에스프레소에 입문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 아바나 까사 할머니의 까풰 덕이 아니었을까.
고작 일주일 체류 해놓고 쓰는 쿠바 이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