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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퐈느님 Feb 27. 2016

퇴직금을 털어 지구 반대편에 다녀왔습니다.

여행 중에 나의 기록을 공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 혹은 핑계

아직은 '감사합니다' 혹은 'Thanks' 보다는 'Gracias!' 가 더 먼저 튀어나오는 지금, 이 기분이 잊혀지고 변하기 전에 여행초보자의 지구 반대편 방문이야기의 에필로그를 먼저 써본다.

내가 두서 없다는 것은 내 주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기 때문에 프롤로그도 아닌, 에필로그부터 공유하는게 새롭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다시 배낭을 메고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체력이 좋은 편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체력이 안좋았다. 20대 초반과 같은 일정의 여행을 할 수 있는건 아니었다. 가격만 싸다면 20인실까지 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14인 혼성 도미토리에 들어서자 숨이 막히는 날 발견했다. 40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나니 비행기를 찾게 되더라. 38시간 정도의 비행 시간을 보내고 나니 무릎이 잘 접혀지지 않더라.

20대 초반, 첫 해외 배낭여행 후에 나는 30대가 되면 호텔에서만 묵는 여행을 갈 줄 알았다. 

첫 해외여행 후 딱 10년이 지났는데 나는 그때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여전히 도미토리에 묵었다. 


나는 눈물이 많았다.

어렸을 적부터 보고 싶었던 유적지 앞에서 눈물이 나고, 자연 경관이 놀라워서 눈물이 나고, 너무 추워서 눈물이 나고, 여행 중 영화보다가도 눈물이 나고, 팟캐스트 듣다 웃겨서 눈물 나고, 한국에 있는 사람에게 서운해서 눈물이 나고, 여행 중 만난 일면식 없던 사람들하고 정 들어서 눈물이 나고, 음악을 듣다가도 눈물이 나고, 그 음악이 날 위로해줘서 또 눈물이 나고.

나이 들었나보다. 인정할건 인정해야지. 


걱정 말아요 그대.

후회없이 꿈을 꿨다 말할 수 있었을까. 여행 중 시간이 많아지면 드는 생각이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었을테니 괜찮다고 그 노래가 날 위로해주었다.

나는 나이드는게 너무 너무 싫었다. 아직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눈빛이 초롱초롱한 20대 초중반의 배낭여행객들만 만나면 필요 이상으로 너무 부러워했고 예뻐보였다. 하지만 그 나이에 여행했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 그러니까 '걱정말아요 그대'가 내 가슴을 파고 드는 것 같은 그런 감정도 분명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나이 드는건 너무 너무 싫다.

인터넷도 안되고 폰도 안되는 그 상황에 무한반복으로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노래 제목 가나다순의 첫페이지 중간에 있던 응답하라1988의 OST '걱정말아요 그대' 였다. 


담백한 여행

여행 일정 중 90%기간을 15~17kg 의 배낭을 짊어지고 다녔다. 꽤 무거운 편인데 추위를 많이 타는지라 난 항상 추웠고 아쉬움이 많은 사람이라 짐을 쉽사리 줄이지 못했다. 

집에 올 때는 입고 있던 옷만 빼고 다 버리고 왔다. 평소 버리는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여행 중에 만난 배낭여행자들을 보면 나는 참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더라.

원치 않게 휴대폰과 인터넷 없는 여행도 했으면서 내 배낭은 왜그렇게 줄이지 못했을까.

언제쯤 담백함이 내 인생에 탑재될까.

키 170cm가 넘는 나의 상체만한 65리터 배낭1(대략17kg)과 보조배낭2(대략 5kg)을 장착하고 육로로 국경을 넘는 중 @Peru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건 날씨와 동행이 아닐까

어떤 여행지를 떠올렸을 때, 혹은 그날을 마무리하면서 드는 기분에는 많은 것들이 영향을 끼친다. 맛있는 음식, 풍경, 숙소의 컨디션, 도시의 향기, 내 체력 등등

하지만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치는건 그 날의 날씨와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쳐간 인연 하나하나 떠오를 때마다 흐뭇한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여행 중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 모두 다들 잘 지내고 있나요? 



우리나라에서 땅파고 계속 내려가면 나오는 지구 반대편에 가는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생각치도 못한 일이 닥쳤을 때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고, 혹은 여전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때론 나에게 실망하고 가끔은 나에게 감동하고.

하지만 여행을 하고 나니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귀국하고 보니 정치인들은 여전히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고, 버벅이던 노트북은 여전히 버벅인다. 열심히 공부했던 에스파뇰은 어느새 기억도 잘 안나고, 3개월에 걸쳐 약간은 빠진 듯한 살은 귀국하기 삼일 전에 마지막 도시에서 이미 복구되었다. 여행 중 다쳤던 손은 새 살이 차올라 눈을 크게 뜨고 봐야 다쳤던 흔적이 보인다. 

나는 그냥 한살 더 먹은 내가 되었다. 이제 남은 건 걱정 뿐이다. 실컷 놀고 왔으니 일하라는 듯 통장 잔고는 밥한끼를 사먹기가 힘들고 지구 반대편에 가보겠다고 회사를 때려쳤으니 나는 이제 수입도 없다. 

여행의 가장 강렬한 외향적 흔적으로 남아있는 온몸을 넘어 두피까지 그을려버린 피부와 주근깨도 몇년이 지나면 옅어지겠지. 


원래 계획은 여행 중 브런치에 기록을 공유해보고자 했지만, 나에게는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단말기가 모두 사라졌었다. 여행 중에 벌어진 생각치 못한 변수였다. 

나에게는 다행히 클라우드라는 최신의 시스템과 함께 종이와 볼펜이 있었다. 단말기가 있었을 때의 기록은 클라우드에, 그 이후 기록은 종이에 남아 있다. 

더 게을러지기 전에, 더 옅어지기 전에 여행 이야기를 계속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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