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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정 Feb 14. 2023

끝나지 않는 사고의 연속 (1)

바퀴가 빠진 자동차

Moses Lake

나는 지금 워싱턴주의 Moses Lake라는 곳에 있다. 여권분실신고를 마치고 차유리도 갈아 끼운 우리는 출발한 지 30분 만에 아직도 워싱턴주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속도로 한복판에 멈추게 됐다. 오른쪽 앞바퀴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통째로 빠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고속도로에서 80마일로 달리던 중 덜커덩 소리와 함께 타이어가 눈앞으로 굴러갔던 그 찰나의 순간을...  지금도 글을 쓰면서 그날을 상상하면 손이 살짝 떨린다. 타이어가 터진 것도 아니고, 다른 차와 박은 것도 아니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타이어가 빠져 데구루루 굴러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앞바퀴가 빠진 우리 차는 굉음을 내며 그대로 고속도로에 고꾸라졌다. 하늘이 도우신 건지, 그 순간 남편은 순간적인 운전 감각으로 핸들을 틀었고, 우리 차는 고꾸라진 채로 바퀴 없이 10초간 굴러가다가 가까스로 도로를 벗어났다. 강도를 당한 지 3일 만에 다시 난 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순간 그 장면이 너무 현실성 없어서 몇 초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나와 남편은 멍만 때렸다.       


남편왈 : 00아 다친데 없어? 괜찮아?

나 :... (아무 말도 안 나옴)     


‘나 다쳤나?’ 손이 덜덜 떨리며 패닉 그 자체였던 당시의 나는 갑자기 차 본넷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남편도 뒤따라 뛰어나옴)  ‘뭐야 터지는 거 아니야? 이게 무슨 상황이야 대체’ (정말 당시의 나는 패닉이었다)

 유튜브로만 봤던, 뉴스로만 봤던 사고를 내가 직접 당하다니.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겠구나 온몸으로 체험한 순간이었다.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그날이 처음이었고, 황당하게도 강도를 당한 지 3일 만에 다시 난 사고였다.   

 밖에서 본 우리 차는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멘탈이 나간 나를 붙잡으며 남편은 내 몸을 찬찬히 점검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지금생각해도 신기..) 멀쩡했던 차가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걸까? 우린 가장 먼저 유리창을 깨고 도망간 그 도둑놈이 차량 부품을 떼가서 고장 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지만 알고 보니 우리가 시애틀에 도착하자마자 점검을 위해 갔던 혼다 시애틀지점 직원의 실. 수. 인게 밝혀졌다. 

 그날 차량을 점검한 그 직원이 권했던 '타이어 교체 작업'이 잘못됐던 것이었다. 타이어 교체 당시 나사를 다 조이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는데, 진짜 지금도 시애틀로 달려가 그 직원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다.      

나의 속마음 : 너 때문에 사람 두 명이 고속도로에서 죽을뻔했다고!! X@!!     

 그리고 천운으로 바퀴가 빠지던 그 순간, 우리 앞 뒤로 차량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차량도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 : 흐윽 흐으ㅡ윽읗그 ㅠㅠ ㅠ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거지..? 도대체 왜? 한국으로 가고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국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을 거야. 이게 뭐야 시애틀에서 차량정비만 하지 않았어도.. 그 시애틀 숙소에 묵지만 않았으면.. 아니 애초에 그냥 여행하지 말고 버지니아로 바로 비행기를 타고 갔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짧은 순간 많은 후회의 감정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는데.. 역시 이성적인 우리 남편 왈


남편 : 괜찮아 괜찮아 보험사 부르자..   


그래.. 일단 고속도로에서 잘 순 없잖아. 보험사 부르자.. 그리고 10분째.. 음악만 들려주는 우리의 보험사 게이코 ^^*


남편 : 하... 얘네들은 통화가 안돼... 진짜..@#$# 


미국에서 문제가 생겨서 고객센터로 연결하려면 정말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사전에 나오는 자동응답기 매뉴얼을 넘어가도, 제대로 부서사람과 연결되려면 몇 명을 거쳐야 했고 우리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반복적으로 우리 상황을 계속 설명해야 했다.  남편이 열심히 통화를 하던 그때 우리 뒤로 차가 한 대 멈췄다. 


지나가던 행인 1(미국 할아버지) : 너희 괜찮아? 바퀴가 터진 거야??


그리고 또 뒤이어 차량 한 대가 더 멈췄다. 


지나가던 행인 2 (현직 공군 대위) : 괜찮아? 내가 도와줄 건 없어? 


남편은 게이코(미국보험사)와 통화 중, 나는 우는 중.. 


나 : 브흐브흡 도와줘..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지나가던 행인 1,2는 서로 통성명을 한 뒤, 이 아시아인 2명을 어떻게 도울지 서로 의논하고 있었다. 옆에 통화 중인 남편은 보험사와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모양이다. 일단 전화를 끊고 도와주러 온 미국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 할아버지가 찬찬히 우리 차를 보더니 자기차에 이런 상황을 대비한 차량공구들이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우리 차량 잔해를 밟지 않도록 뒤에 오는 차들의 교통정리를 부탁하고 공군대위, 남편, 할아버지는 통째로 빠진 바퀴를 주우러 고속도로 한복판을 뛰어다녔다. 

 나는 사고지점에서 거슬러 올라와 뒤에 달려오는 차량을 향해 1차선으로 달려달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면 중앙선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떨어진 나사를 줍고, 굴러간 타이어를 재조립하는 3명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고, 40분째 교통정리만 하는 나는 언제 이 고속도로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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