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강도 편
2022년의 한해 중 가장 잊지 못할 사건은 시애틀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날짜가 2023. 2월이니깐... 그래 거의 7개월이 지났구나.. 이젠 누군가에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썰이지만.. 당시 차량강도는 내 인생에서 처음 겪어 본 범죄사건이었다.
오전 8시, 시애틀 다운타운 Holiday Inn 지하 주차장 바닥에는 유리조각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차 안도 주차장도 난장판이었다. 우리는 유리조각이고 뭐고 차 안에 뭐가 없어졌는지 확인했다.
‘제발.. 내 가방만 아니길 제발...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내 가방은 안돼...’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가방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권과 노트북이 들어있던 내 가방은 그렇게 미국 입국 한 달 만에 사라졌다. 차유리창을 깨고 가방을 가져간 그 도둑놈은 다른 건 다 놔두고 어떻게 알았는지 내 백팩만 홀라당 가져갔다. 우리는 호텔 CCTV를 확인하기 위해 프런트로 올라갔다.
남편 : “호텔 지하주차장 CCTV좀 보여주세요 저희 차가 털렸어요”
호텔 매니저 : “우리 CCTV 같은 거 없는데?”
남편 : “아니 호텔 주차장 앞에 CCTV 있다고 써져 있잖아요”
호텔 매니저 : “아 그거.. 그냥 없는데 우리가 만들어놓은 거야.. 우리 지하주차장에 CCTV 없어”
남편 : “아니.. 그럼 주차장 입구에 CCTV 돌아간다 Security 되는 주차장이라는 문구를 왜 했어요? 우리 차 안에 있는 가방이 털렸다고요. 이거 그럼 어떻게 해요? 저희는 저 문구를 보고 믿었는데!”
호텔매니저 : “음.. 안타깝지만 일단 경찰에 빨리 신고해. 그리고 차 안에 물건을 둔 너희 잘못이지. 우리 잘못이 아니잖아?”
아마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바보같이 누가 미국에서 차 안에 물건을 둬라고 이야기하겠지만,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다. 피해자에게 네가 간수를 잘했어야지 너의 잘못이야 라고 말하는 호텔매니저의 태도, 그 상황에서 혹시라도 자신들의 책임이 될까 선을 그으며 이야기하는 그 매니저의 얼굴은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잘못 없고 그냥 너희가 재수 없었을 뿐'이라는 그 말은 정말인지 너무 상처였다. 그래 물론 내가 안전을 간과한 탓도 있겠지만 피해자에게 위로는커녕 왜 차 안에 물건을 뒀냐고 오히려 꾸짖는 너.. 진짜.. 너도 꼭 한 번 당해봐라 (너도 빡치나 안빡치나 ^^) 망연자실하며 호텔로비에서 경찰에 신고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인도인 : “너희도 차 털렸어?”
나 : “O_O? 응.. 너네도?”
알고 보니 그날 우리뿐만 아니라 인도인, 캐나다인 등 다른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의 차가 모두 털렸다. 그놈들은 교묘하게 차 플레이트를 보고 워싱턴주 사람이 아닌 관광객들만 노려 차를 털었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차가 제일 마지막으로 털린 차량 같았다. 왜냐하면 다른 차들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털렸지만 우리는 내 가방 하나만 없어졌기 때문이다.
인도인 : “너네 얼마 털렸어? 우리는 그냥 차 안에 뒀던 물건이 다 없어졌어. 귀금속도 있었는데 한 10000$ 정도 (한화 1000만 원 정도 상당)돼”
캐나다인 : “난 캐나다에서 혼자 여행 중인데 나도 옷가방이랑 카메라 몽땅 다 사라졌어.. 한 1000$ (한화 약 120만 원) 정도 돼”
나 : “나는 여권이랑 노트북이 사라졌어..”
인도인, 캐나다인 : “빨리 경찰에 신고해서 여권분실신고해.. ”
피해자들 중 인도인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호텔을 정식으로 고소하겠다고 했다.
인도인 : “아니 나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인데, 호텔주차장 앞에 문구 써져 있는 거 너희도 봤지? 이게 어떻게 호텔 잘못이 아니야? 우릴 기망한 거 아니야? 나 여기서 캘리포니아까지 5-6시간 걸리는데 그냥 집 가려고 오늘 토요일이라 차량수리도 못하고.. ”
그래.. 오늘은 토요일이다. 제일 큰 문제는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즉, 여권 재발급을 하려면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하고, 차량 수리를 위해서도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말이었다.
이런 일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여권 재발급은 어떻게 하는 거고, 월요일에 가면 당장 발급받을 수 있는지, 나는 시애틀사람이 아니고 완전 반대방향인 버지니아주로 가야 하는데 우편으로 받을 수 있는지, 서류는 또 뭘 구비해야 되는지.. 물어보고 싶어도 오늘은 토요일이다.
우리는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난장판이 된 차 안을 수습하고 차에 있는 모든 것을 호텔로 옮겼다. 오늘밤에 떠나기로 한 일정은 다음 주 화요일까지로 조정하고 월요일이 되자마자 시애틀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방문한 뒤 Honda Service Center로 가서 유리창을 손보기로 했다.
다시 룸으로 올라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여권 재발급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도난사고가 났을 때>
1. 경찰에 신고해 경찰 리포트를 작성하고 여권 도난신고를 한다. (인터넷으로도 가능)
- 작성 후 Police report number 받을 것
- 언어적 문제로 의사소통이 힘들 경 우에는 외교부 영사콜센터 (+82-2-3210-0404)의 '해외 긴급상황시 통역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음.
2. 경찰서에서 절차를 완료한 후 해당 지역의 가까운 한국 대사관에서 여권 재발급 신청을 한다.
* 여권 재발급 시 필요한 서류
- 이 지역 사람이 아닐 경우 인근 우체국으로 가서 PRIORITY MAIL구매할 것.
- 여권용 사진 2장 (대사관에서 사진촬영가능)
- 여권분실신고서, 여권 신청서 (대사관에 구비되어 있음)
- 분실된 여권의 사진과 사증 촬영본이나 복사본이 있으면 가져올 것.
- Police report number
대충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는데, 나는 그래도 인터넷만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외교부 영사콜센터 앱을 다운로드하고 긴급 전화를 눌렀다. (앱으로 통화가능) 그리고 시애틀 영사관과 직접 통화해 구비서류를 정확히 확인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8:00에 오면 최대한 빨리 처리해 주겠다고 많이 놀라지 않았냐며 다독여 주셨다. (친절이 사람을 살린다.. )
다행히 여권발급은 우편으로 가능했지만, 문제는 비자였다. 나는 남편의 유학으로 F2비자를 발급받았는데, 비자발급은 미국 내에서 재발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비자는 반드시 미국외의 타 3국으로 가서 다시 재신청을 해야 했고 (캐나다, 멕시코, 대한민국등), i-20는 온라인상 살아있기 때문에 국내체류는 문제 되지 않지만, 만약 타국가로 여행을 가면 미국으로 재입국이 불가능하단다.
즉, 미국 외 다른 국가를 가려면 그 국가에서 비자 재신청하고 비자 나오면 미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망했다.. 이번 겨울에 칸쿤가려 했는데..' (지금생각하면 그 상황에 이런 철없는 생각을 하다니.. )
오후 2시가 다 되어 상황정리를 끝낸 나와 남편은 그렇게 월요일이 되기 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가 사건 접수한 게 오전 8시인데 경찰은 왜 안 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