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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na May 24. 2021

아빠를 갑자기 하늘로 보내드리고...

어버이날 드린 용돈으로 부모님 두분이서 여행을 가셨다

유난히도 안다녀본 지역이라며

아빠는 여행 팜플렛을 한가득 재어놓고 보고 계셨다

이제 다음날은 챙겨서 내려가자며 여행을 마무리하던 날

아빠는 불의의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치셨다


워낙 외곽지역이여서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길에서만 몇시간..

겨우 한 병원에서 받아줬는데

열이 나시는 바람에

시국이 이런지라 무조건 격리병동이 있는곳에 가야한다고

또 먼길을 이송해야했다


이송 병원이 결정되어 자식 셋이 올라가면서도

난 사실 어느정도 심각한 상황인지 알지못했다

혹시 모를 입원상황에 엄마가 필요하실 물건을 챙겨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사실 우리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아빠는 코로나 결과가 나오기까지 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를 다 들어오라고 했다

의사는 아빠가 뇌사상태라고  했다


아빠 얼굴을 보지도 못한 상황에

이게 도대체 무슨일인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이게 현실인가 부인하고 싶었다

뇌사인게 나오자 연명치료를 할껀지와

장기이식의사를 바로 물어왔다

연명치료는 자식들은 뭐라 말할 수 없었기에

생전부터 안하기로 가서 신청한다는걸 미뤘다며

엄마가 선을 그으셨다

하지만 장기이식수술은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상황에서 우린 결정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있는 지역으로의 이송도 쉽지않았다

아빠의 상태도 시국도 시국인지라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몇 개의 병원을 통화중에 이송병원이 결정되어

앰블러스에 실리시는 걸 보고 우리 모두 집으로 다시 내려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면회도 어려웠다

면회에 단 한명 두번의 면회 시간이 있었으니

우리는 식구도 많아서

아빠 얼굴 보려면 며칠을 애를 태워야했다


아빠는 외관상의 다치신곳은 없어서 주무시는 것 같았다

너무 믿을 수가 없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아빠의 손과 얼굴을 만지며

애타게 아빠..아빠...부르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자 아빠가 처음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고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가족들을 설득해

장기이식을 결정하게 되었다


나도 장기이식신청을 한지라 평소 뜻이 있었음에도

막상 닥쳐보니 얼마나 큰 결심을 하는지 알것같았다

그리고 부모님이기에 더욱 어려웠다


장기이식수술은 지정 병원이 있어  또 이송해야한단말에

잠시 결정을 보류했지만

(이미 이송을 많이 하신 상황이고 이송 자체도 위험이 따라서)

더 늦어지기전에 결정해야한다고 설득했다

다행히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게 되었다


장기이식수술을  해야하다보니

사람을 다시 살려야해서

의료기술이 들어가니

아빠가 처음처럼 모습이 많이 좋아지셨다

고통스럽고 힘겹게 버티도록 놔두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너무 슬펐다


지병도 없고 워낙 건강하던 분이긴 했지만

연세가 있다보니 개복후 조직검사에 이상이 없어야

기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마음을 졸여야했다

다행히 장기이식수술은 잘 진행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오래 사실분이였는데..

하며 너무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수술끝나고 영안실 이동할때도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난 굳이 보지않았다

장기이식수술전 마지막 인사 나누는 시간을 주는데

그날만큼은 살아계신 모습이

내 기억속의 마직막 모습이였으면 해서..


수술이 끝나고 장례치르는것도 녹녹치않았다

 사고사라 경찰에 사건 접수가 되고

검찰에서 단순 사고사로 인정한 서류를 받아야하는데

사고 자체는 다른 지역에서 났는데

우리 연고지는  다른곳이라

경찰에서 서로 담당을 안맡으려고 미뤘다


안그래도 사고의 가장 충격을 먹으셨을 엄마가

경찰서만 몇 군데 돌며

회상하고 싶지도 않은 사건을 몇번이고 조사받고

형사들은 유죄의 법칙으로 조사한다는 원칙때문에

엄마를 거의 범죄자 취급했다


상처밖에 없는 우리 가족들 마음에

병원 경찰 모두가 마음에 더 상처를 줬다


그 서류가 없이는 아빠를 이송할 수가 없었다

뉴스에서 영안실에 며칠있다 장례치르는게

이런거때문이였구나며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다행이도 장기이식수술을 한 병원에서는

경찰의 서류없이 장례를 치를 수 있어서

무사히 장례를 시작하게 되었다


과정들은 참 비참하고 슬프고 속상했지만

장기이식수술을 했던 마지막 병원

최종 경찰조사를 받았던 파출소에서

아빠도 예우있게 대해주고

우리 역시 잘 위로해주고 절차도 잘 진행하게 도와주셔서

마무리는 다행이 위안받으며  잘 마무리가 됐다


장기이식수술이 늦어져서

다음날 입관이 오후에 잡혔다

그 전까지는 영정사진을 보고도 실감이 안났다


입관이 진행되고 돌아가신 모습을 처음 보고

그제서야 실감이 나서

너무도 너무도 슬피 울었다


장례를 치르고 화장장으로 옮겨서

화장을 마치고 유골이 나오는데

사람이 한줌의 재가 된다는걸 눈으로 보고나니

허무하고 허망해졌다


오히려 유골은 형체가 없으니

이게 아빠인가..또 믿을 수 없었다


내일이 내 것인양 살지말라는 말을 많이들었지만

그걸 내 눈앞에서 바로 겪게 되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건지 갑자기 막막해졌다


산 사람은  또 살아야한다고

난 이사를 코 앞에 둔 상황이라

내 할 일을 다해나가야 했고


아직도 믿을 수 없다가도

쌩뚱맞은 시점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지기도 한다


그래도 고통없이 가신 아빠

우리에게 험한 모습도 안보이시고 고생도 안시키신 아빠

생명을 나누시고 가신 아빠

너무도 감사합니다


벌써 보고싶고

벌써 아빠 목소리가 생각이 안나요

전화라도 자주 할껄...


남은이는 모든게 후회가 되네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저희 아빠의 명복을 빌어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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