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오신걸 환영합니다(3)
해가 지지 않는 곳,
나를 태운 드론이 하늘위로 떠올랐다. 방금 걸어왔던 길들이 저 아래 한 눈에 들어왔다.
“혹시 밤이 없다는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떠오르시는 생각 있으세요?”
한참 드론위에서 이런 저런 장면을 감상하고 있는 내게 도우미가 물었다.
“글쎄요... 밤이 없다면... 음... 잠은.. 잠은 언제 자는거죠?”
“하하 네. 정확히는 잠을 잘 필요가 없습니다. 잠을 자지 않아도 돼는 몸이 됐으니까요. 오늘 꽤 많이 걸으셨는데 혹시 피로함을 느끼셨나요? 힘들다는 느낌은요??”
그러고 보니 전혀 지친다는 느낌이 없었다. 사실 정확하게는 체력을 소진한다는 느낌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이 곳의 새로움과 신비함과 놀라운 광경에 빠져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을 뿐,
“그러고보니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제가 처음 눈을 떴을 때는 분명 침대위에서 눈을 떴는데... 그때는 잠에서 깨어났던 것 아닌가요?”
“아~ 그렇게 느끼실 수 있겠네요. 사실 정확하게는 잠에서 깬 것이 아닌 ‘죽음’에서 깬 것이지만요.”
도우미의 말을 정확하게 다 이해한 건 아니였지만 몸의 에너지가 100이라면 계속 100을 유지하는 느낌이 드는건 확실했다.
“밤이 없으면 즉 해가 뜨고 지지 않으면 하루의 시작과 끝은 어떻게 알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아 그러고 보니.. 해가 지지 않아서 지금까지 제가 하루가 지났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 걸가요? 그럼 시계? 시계로 확인하나요? 그러고보니 지금 몇 시인거죠?”
“하하 사실은 천국에는 시간의 개념이 조금 다르답니다. 시간이 분명히 흐르고 있지만 계속 ‘오늘’이죠. 오늘의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겁니다.”
“그.. 그게 어떻게 가능한거죠?”
“음..간단히 표현해보자면 저희 천국은 시공간이 뒤틀려 마치 뫼비우스의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표현하자면 오늘이 시작되면서 끝나고 끝나면 시작된다고 할까요. 그렇게 ‘영원’이라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도우미의 말은 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천국은 ‘영원’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일단 머릿 속에 정리를 해보았다.
“밤이 없긴 하지만 밤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있습니다. 바로 “인공 밤(night)"이죠. 생전에 멋진 야경이 보이는 곳에 살고 싶다고 염원하신 분도 있을 테니까요.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인공 밤”으로 내려가 보실까요?”
도우미와 얘기하는데 정신이 빠져 어디로 이동하는지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아래를 바라보니 이미 아랫쪽으로 까만 어둠 속에서 일루미네이션들과 높고 낮은 빌딩 숲의 빛이 반짝 이고 있었다. 밤바다가 보였고 바다위로 조명이 번쩍 거리는 다리가 지나고 있었다. 그 뒤로는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황홀해서 나도 모르게 입이 떠억 하고 벌어졌다. 순간 입에서 침이 흐를 뻔 했다. 그렇게 입을 벌리고 감상하고 있는 나를 태운 드론이 그 까만 밤으로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드론은 바다와 다리가 보이는 길 위에 살며시 내렸다.
“여기도 한 번 걸어보시겠어요?”
폭이 제법 넓은 길 양쪽으로는 일루미네이션들이 쭉 서 있었고 바다가 보이는 방향을 돌아서 반대편에는 빌딩 숲들이 멋지게 일렬로 줄 서 있었다.
“너무... 너무 아름다워요.”
“그렇죠? 인공 밤이 없었으면 정말 아쉬웠을 껍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은건 사람들의 본능이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하니까요. 조금만 걸어가시면 빌딩 숲 앞 포장마차들이 있으니 거기에서 뭐하나 드실까요?”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뭘 먹지 않았다. 뭘 먹긴 커녕 물 한잔도 마시지 않은 것 같다. 풍경에 취해 배고픔도 못 느꼈던 걸까?”
“아까.. 아까 드론에서 말이에요. 잠을 잘 필요가 없는 몸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혹시 이제 배고픔도 못 느끼는 몸이 된 건가요?”
“아하하~ 맞습니다. 사실 정확히는 저희는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먹는걸로 ‘생명’을 유지하는게 아니기 때문이죠.”
“그.. 그럼 생명은 어떻게 유지하는거죠? 그... 그리고 그렇다면 왜 먹는거죠?”
도우미는 너무 재미있다는 웃음소리를 내며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있을까요? 저희는 맛을 느끼고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기위해 먹는 거랍니다.”
물론 음식을 먹는 거야 너무도 행복(?)한 일이긴 하지만 배고픔을 느끼기에 음식을 먹는 것아닌가? 배고픔을 느끼기에 음식도 맛 있게 느껴지는거고(“시장이 반찬이다”말도 있듯이..)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데 음식을 먹으면 배부름은 느끼는 걸까 못 느끼는걸까...
수많은 질문이 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동안 어느새 포장마차에 도착했다.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져 있었고 도우미와 나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메뉴 한번 보실까요?”
도우미는 갑자기 테이블을 손으로 톡톡쳤다. 그랬더니 테이블위로 메뉴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건 또 뭐야? 그냥 플라스틱 테이블 아니였어?’
“자리에 앉으시면 인식되어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들로 메뉴가 알아서 정리해서 뜬답니다. 좋아하시던 음식과 그 맛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실껍니다.”
‘메뉴 화면의 뜨는 플라스틱 테이블도 놀라운데 나를 인식하는 플라스틱 의자라고?’ 하고 놀랄 새도 없이 정말 도우미 말처럼 머릿 속에 좋아하는 음식과 맛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내가 죽었다.’는 기억 다음 처음 떠오른 기억이였다. 처음 떠오른 기억이 음식 맛이라니..??
“생전에 드시는걸 좋아하셨던 모양입니다. 럭셔리한 레스토랑도 좋지만 멋진 야경을 보며 포장마차에서 먹는 소박한 음식들을 훨씬 좋아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안내하는 테마에 “인공밤과 함께 포장마차에서 음식먹기”가 있을 테죠?”
“말씀 하시는 순간 제가 좋아했던 음식과 음식 맛이 기억이 나네요. 사실 그 어떤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제가 죽었다는 것 말구요. 그 외의 기억도 하나씩 떠오르게 되는 건가요?”
“음.. 생전의 기준으로 정확히는 떠오르는 기억도 있으시고 절대 생각 안 나는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필요”한 기억만 떠오른다고 해야할까요.. 사실 기억보다는 무엇을 “인지”하는가 “인지”하지 못하는가의 차이도 있긴 하지만 그건 또 천천히 알게 되실꺼고 우선 메뉴부터 골라서 음식을 골라보시죠. 메뉴를 쭉 보시다 원하시는 음식이 보이시면 터치하시고 터치하시면 주문버튼이 나옵니다. 주문 누르시면 음식은 테이블로 나올껍니다.”
나는 도우미의 설명대로 메뉴안에서 “선지국밥”을 주문을 눌러 놓고 음식 나오길 기다리며 도우미에게 물었다.
“그렇게 따지면 좋아하던 음식이나 그 맛은 그렇게 “필요”한 기억은 아니지 않나요? 기억이 없어도 음식을 보고 고르고 맛을 보면 맛이 느껴질꺼고 그렇게 음식과 맛에 대해 점점 알아가면 되니까요.”
“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음식은 “아는 맛”으로 먹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좋아하는 음식과 맛은 기억하셔도 그 음식을 어디서 누구와 먹었는지 그 음식을 먹으며 있었던 일은 기억은 전혀 나지 않으실껍니다. 오로지 좋아하는 음식과 그 맛 딱 그 기억뿐이죠. 음식을 “맛있게”먹기 위한 필요한 기억만 남아있는겁니다.”
그러고보니 맞았다. 왜 그 생각을 못했던 걸까? 아직 내가 “천국”으로 왔다는 것 이 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얼떨떨함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고 사실은 내가 누구인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억하지 못 하는게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기억할 필요도 느끼지 않고 있다는걸.. 그러고 보니 아까 도우미가 사실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의 문제 라는게 이런 의미인걸까...?
그 생각을 하는 동안 음식을 실은 서빙로봇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아직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한 곳은 맞는 것 같다.’
지금까지 본 것에 비하면 서빙로봇은 사실 놀랄 일도 아니긴 했다.
선지국밥 2개와 부추 겉절이 새우젓, 고추, 편마늘, 쌈장, 잘라진 양파, 깍두기가 실려나왔다. 음식을 테이블로 옮기자 서빙로봇은 유유히 사라졌다.
국밥에 수저를 넣어 휘휘 져어 한 숟갈 입에 넣기 전
“설마 음식도 로봇이 만드는거 아니죠?”
“맞는데요?”
순간 방금 입에 넣은 국밥을 뿜을 뻔했다.
“저희 방금 드론 타고 이곳을 왔는데 음식 정도야 로봇이 만들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 자율주행 자동차에 드론을 타고 이동해놓고 요리하는 로봇에 놀랄일도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쯤 한 숟갈 입에 넣은 국밥의 맛이 느껴졌다.
‘아 따뜻하다.. 국물이 깊은 맛이 나네..선지는 너무 고소한걸..?’
흔하디 흔한 국밥 이였는데 황홀하게 느껴질 만큼 맛있었다.
“맛이 어떠세요?”
“너무.. 너무 맛있어요.”
“국밥 중에서도 가장 맛있다고 무의식중 기억에 남은 그 국밥 맛일껍니다. 거기 다 천국의 맛 한 숟갈 플러스?”
도우미는 조금 썰렁한 농담을 한 마디 던지더니 스윽 웃고는 자신의 국밥도 말아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 맛있게 먹는 모습에 왠지 음식 맛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국밥 한 그릇과 나온 반찬 그릇까지 싸악 비우고 나니 미각, 식감, 후각들이 아까 그 터지던 폭죽처럼 내 안에서 터졌다.
“정말 잘 드시네요. 혹시 더 드시고 싶으신건 없으세요?”
“네...네?”
방금 국밥 한 그릇 뚝딱했는데??
“배고파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니 배부름도 느끼지 못하겠죠? 그 말은 원하신다면 국밥을 100그릇 드실 수도 있고 100가지 음식을 드실 수도 있다는 거죠. 우리는 오직 음식을 먹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 먹는 것이니까요.”
로봇이 요리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보다 더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고보니 배가 부르다는 느낌은 없었다. 오로지 음식을 먹은 대한 기쁨과 감각만이 존재할 뿐...
도대체 이 천국이란 곳 뭐야... 호기심과 신기함을 넘어 이제 경의로움에 다가가고 있었다.
“아.. 음식은 더 안 먹어도 될 것 같습니다.”
“네 그럼 여기 길을 걸으며 야경을 더 감상하시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시죠.”
“그 다음은 또 어디로 이동하는 건가요?”
난 도우미와 천천히 걸으며 눈에 가득 야경을 넣어가며 말했다.
“깨어나신 곳의 날씨는 혹시 어땠나요?”
“네...?아...날씨요.. 해가 쨍쨍했는데 기온이 딱 좋았어요. 하늘에 구름 한 점도 없었던 것 같아요. 바람도 적당히 불었구요. 그런데 갑자기 날씨는 왜...”
“생전에 그런 날씨를 제일 좋아하셨나 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항상 “좋은 날씨”만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무리 좋은 날씨라도 계속 같은 날씨라면 지겹게 느껴지기도 하고 좋은 날씨가 진짜 좋다는 감동도 덜하겠죠? 때로는 비오는 날 빗 소리가 듣고 싶기도 하고 하얀 눈이 펑펑 내린 곳에서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하고 썰매 스키 같은 겨울 스포츠를 즐기고 싶을 때도 있구요.”
“그럼 “인공 날씨”같은 곳이 있는 건가요? “인공 비”, “인공 눈”, “인공 스키장” 같은??”
도우미는 뭐가 재미있는지 크게 한 번 웃고는
“아니요. 날씨는 모두 “자연”입니다. 밤은 천국에 “존재”하지 않기에 “인공”으로 만들었지만 이곳에도 “자연”은 존재하니까요. 그럼 한 번 가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