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na Jun 20. 2023

40대에 신입사원이 되었습니다 3편

나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발달이 아주 느렸었다

결국 7세부터 '특수교육 대상자'가 된 내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도움반을 왔다갔다 하며 학교 생활을 했다

감사하게도 3학년때 진행하는 검사를 통해

특수대상자가 해제되며 4학년부터는 일반교실에만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치료실도 많이 다녔고 병원도 정기적으로 가야했고

한동안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빈혈에 대학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녀야했다

이런 이유들이 있었기에 '맞벌이'라는건 난 꿈도 꿀 수 없없다


"아이 잘 키우는게 돈 버는 일이다"

라는 말을 제일 많이 실감한게 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을 것이다

치로실..병원비..한 달에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나는 아이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장애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사이에 있는

우리 아이같은 경우는

엄마가 얼마나 신경쓰고 투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 달랐음으로

아이에게 나의 시간을 쏟아부을 수 밖에 없었다


워낙 적응이 어렵고 예민한 아이였는데

태어나서부터 쭉 자란 동네를 떠나

전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3학년 중반)

나는 동네 길부터 학교 등하교길 교실 배치도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가 익숙해질때까지 함께 해주어야했다

일반적인 아이보다 훨씬 더 세세한 부분을 알려줘야하고

똑같은 것을 알려줘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일반 아이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다행히 아이가 그래도 좀 컸다고 생각보다는 잘 적응을 해주었다

4학년부터는 도움반없이 교실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부분에

신경을 써서 케어해줘야했다

아이는 학교 생활을 매우 힘들어했고

또래관계도 어려워했다

더더욱이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곳이였으니 더했으랴

심지어 나도 인맥이라곤 전혀 없는 곳이였다

도움반은 아이에게 학교에서 피난처와 같은 곳이였다

그곳이 있었기에 학교 생활을 버텼던 아이였기에

도움반을 가지 않아도 힘들지 않도록 도와줘야했다


그리고 그동안은 '발달'부분에 집중해서 아이를 돌봤지만

이제 교실에서만 생활하는 만큼

'학습'적인 부분도 신경을 안쓸 수가 없었다

이게 '공부를 잘해라' 뭐 이런 의미의 학습이 아니고

우리 아이는 선생님이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정보로 받아들이지 못해

꼭 따로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편이였다

게다가 산만하기 까지..

이런 아이들은 교실에서 행해지는 수업을 알아듣지 못해 더욱 산만해지기도 한다

난 그래서 교실에서 수업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의 교육을 해줘야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그 정도 교육을 시키는 것도 매우 매우 힘들었다

나도 갑자기 '교육'에 신경써서 아이를 케어하다보니

'발달'부분에 신경쓰는건 덜 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엄마'로써 한계를 느끼는 나였지만

또 한번 나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였다


특수대상자는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발달이 차이가 났고

학습하는데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존재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으로

아이의 '학습 습관'은 꽤 잘 만들어 놓은터라

앉아있는 연습이나 자기할 부분은 해놓은건 잘 하는 편이였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훨씬 높아진 난이도와 학습양이

아이와 나도 사실 벅찰 수 밖에 없었다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에

했던 것을 또 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특출나게 잘하진 않아도 학교에서 수업은 따라갈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이제 5학년이 된 올해

이제는 내가 좀 자리를 비켜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하나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발달이 느려

나도 모르게 아이가 크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사실 알면서도 그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이제는 '아이가 클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로 아이는 내가 출근해서 생기는 자연스런 공백속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참 적절한 시기에 직장을 가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빨랐어도 너무 늦었어도 안좋았겠구나 하는 생각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출근 시간이 빨라서

아이가 일어나기도 전에 출근을 해야했다

남편 출근시간이 늦고 남편도 직장이 가까우서

아침 먹여서 등교시키는게 오롯이 남편 몫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남편이 그런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면

역시나 직장을 구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남편은 원래 현장직이라 별보고 출근하고 별보고 퇴근하고

정말 바쁠때는 주말도 공휴일도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운이 좋게 집에서 가까운 연구소에서

남편이 하는 부분의 기술직을 구하며 취직이 되었고

남편은 결혼 10년만에 처음으로 '워라벨'생활을 하게 되었다


무튼 집안 일도 아이케어도 해본 적 없는 남편이

(솔직히 그런걸 할 시간적 육체적 정신적 여유도 없었던 것)

아이 둘이서 나 없는 아침을 보내다 보니

그 과정 속에서 아이가 훨씬 더 성장하게 된 것 같다


갑자기 직장생활을 하게 되어

아이의 정서적인 부분에 걱정이 많았는데

(실제로 엄마의 직장 생활로 아이가 소아 우울증이 걸려 관두는 사례를 보기도 했고 아이가 정서적으로 예민하고 불안한 것이 신경쓰였다)

출근이 빠르다 보니 퇴근도 빨랐고

아이가 하교하기 전 나는 항상 집에 있을 수 있었다

하교할 때 항상 내가 맞이 하다보니

아이도 다행히 엄마의 공백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고

내가 직장을 다녀도 정서적으로도 굉장히 안정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 초등학교 3학년 이사하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이 변했다

아이가 특수대상자에서 해제되고

남편의 직장이 좋은 곳으로 옮기게 되고

이제 나도 취업하게 되고

지금의 집하고 우리 가족하고 터가 잘 맞는다 보다~

하는 농담 겸 진담을 하기도 한다


지나가보면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나도 굳이 서두르지 않고 적당한 '때'를 기다렸고

그 '때'가 맞았기에 이렇게 취직하게 된게 아닐까


지금도 수많은 이유로 때론 어려움으로 개인 사정으로

'맞벌이'를 꿈도 못 꾸는 엄마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래된 경력단절

그리고 기존의 경력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리라..

나도 뭐 대단한 곳에 취직해서 많은 돈을 버는건 아니지만

극히 평범한 나도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또 어떤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반드시 적절한 '때'가 올 것이니

너무 마음 급해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 가장 중요하고 충실해야 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 것에 충분히 집중하고 몰입했을 때

오히려 그 '때'가 빨리 가까워진다고...


오늘 좀 사설이 길었는데 ㅎㅎ

여차저차 나는 올해 3월부터 신입사원으로써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벌써 만3개월하고도 20일이 지났다

직장 생활을 하니 시간은 무진장 빨리가는 것 같다 ㅎㅎ


직장생활을 시작하므로써 나에게 찾아온 변화와

또 '맞벌이'로 인해 생기게 되는 '장점'과 '단점'들

솔직 담백하게 다시 찾아오기로 약속하며 이 글을 마친다



("40대에 신입사원이 되었습니다 : 에피소드"로 찾아뵙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40대에 신입사원이 되었습니다 2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