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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na Nov 01. 2023

'불안'은 곧 내 마음의 '뿌리'이다

내 마음속에는 항상 불안에 떠는 작은 아이가 있다. 사실 그 자각한 것도 꽤 나이를 먹은 어른이 되어서였다.


우리 부모님은 자주 싸우셨다. 두분이 언제 싸울지 모르는..매일같이 살얼음판을 걷는 마음으로 어린시절을 보내야했다. 그렇기에 '불안'이 내가 뿌리 깊게 심어져있던 것은 아마도 당연한 것이였으리라.


나의 불안은 20대 시절, 광적으로 이성친구에게 의지하 사랑을 갈구하는 형태로 변질되었다. 그때 나는 내 자신을 혐오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나를 온전히 사랑해줄 사람필요했다.


나의 마음을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없음을 점점 깨달으며 오히려 나는 더 공허해졌고 텅 비어진 마음은 한때 나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로 했다. 인생이 밑바닥 까지 가면 더 내려갈 곳이 없어 올라온다고 했었나? 나에도 '밑바닥을 찍는 구나'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서야 나의 삶을 나의 마음을 망치는  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랑으로 사람으로 안정감을 찾고 싶은 간절한 소망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난 결혼을 갈망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해서 이룰 가정에 대해서도 수십번은 상상했던 것 같다. 결혼만이 나에게 안정을 주리라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결혼안의 많은 것들은 불안정한 것 투성이였고 한 집에 사는 배우자 한 길 마음 조차 알 수 없었다.


내게 하나밖에 없는 지금의 아이를 가지면 안되는 조금 불안한 시기에 가지게 되었다. 그 것은 또 불안이 되었고 우리 부부에겐 첫 아이를 가진 기쁨보다 우리 날카로운 싸늘함이 불었다. 태어난 아이는 자주 아팠고 병원을 밥 먹듯이 다녔다. 커가면서는 발달 지체가 발견되어 치료실을 전전해야했데 그 모든게 내 탓만 같았다.


아이를 어린이집 유치원을 보내놓고 나면 심심하면 전화가 왔다. 발달이 다소 늦고 과잉행동이 있는 아이여서 여러 문제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기에 단 한 번도 좋은 전화가 없었고 울리는 전화 소리에 오늘은 또 무슨일인가 마음속에서 떨어야했다.


생각과 너무 다른 결혼 생활에 우리는 너무 많이 다퉜다. 그 다툼 속에 아이 역시 마음 속에 불안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결혼생활이야 내 마음 같진 않겠지만 죽어도 내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았던 그 불안을 되물림 한다는건 나에게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였다. 더욱이 아이가 다른 아이와는 조금 달랐기에 더욱 그랬다. 이럴수록 엄마 아빠가 서로 다정하고 사이좋고 사랑하며 위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할텐데... 그 바램은 분명 둘 다 같을지인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집을 잘못 사고 팔며 큰 손해를 보게 되고 당시 전세로 살던 우리 가족은 동네의 집값이 갑자기 1억이 오르며 원하지도 않는 이사를 해야했다. 갑자기 어디로 갈지 알 수 없게 된 상황이 나에게는 당연 너무 크나큰 불안이였다.

아이는 그나마 한 동네에서만 꾸준히 자라 여러가지 안정장치가 있었다. 적응도 예민한 아이를 다른 동네에 적응시켜 키운다는 것 부터 막막했다. 남편은 이직을 계획 하고 있었고 앞으로 다시 다닐 직장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지라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말 그대로 공중에 붕~뜬 상황이 되었다. 그때의 나의 불안이 아마 최고조로 달했던 것 같다. 돈한정적이여서 마음대로 고를 수도 없는 현실이였기에..


집 문제가 겨우 겨우 해결되던 시점 갑자기 아빠를 사고로 하늘나라로 보내드려야했다. 아무 준비 없던 이별은 나를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티비에서나 보던 일들을 직접 겪고 나니 이 세상의 불행이 나만 피해주는것은 아니란걸 새삼 깨는 나였다.


아빠가 병원에 누워계신 며칠동안..아빠의 장례를 치루면서도 이사갈 집의 계약, 대출, 잔금 들을 해결하며 나는 또 나의 현실을 해쳐나가야했다.

전혀 새로운 동네에서 살아나는게 긴장되는건 아이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3/4를 한 동네에서만 살아서 사실 다른 동네에 산다는게 상상도 안되는 사람이였다. 게다가 갑자스런 아빠의 부재로 인해 마음까지 공허한 상태로 이사한 동네에서 시작하는 삶을 적응해 나가야했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빠를 잃었기에 가족들은 모두 마음 불안이 생겼다. 모든 것들이 사고의 원인으로 보였고 불안하게 느껴졌다. 티비에서 나오는 각종 사고들도 남의 일 같이잖아 한동안은 뉴스를 보는게 힘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특히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그렇게 불안은 눈덩이 처럼 불어나만했다.


나의 불안은 당연 나의 아이에게 전가 되었다. 뱃 속에 열달 이었다는 이유로 엄마와 가장 오랜시간 긴밀한 관계를 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감정은 항상 엄마의 감정에 물들어 간다. 누군가 부모를 보내고 정신줄을 놓은 상황에도 자식이 배고프다는 말에 정신이 차려진다더니, 내 아이를 보고 있자니 얼른 마음을 추스려 단단해져야겠다는 다짐이 되었다.


지금은 다소 일상을 살아가는 듯 하는데도 자꾸만 내 마음 속의 불안이 불쑥 불쑥 올라온다. 그 불안의 대상 또한 그때마다 수시로 바뀌기도 한다. 사람상상력에는 한계가 없어서 머릿속에 오만가지를 떠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생각들은 모두 불안이였다.


내의 아이에게서 내 안에 불안에 떠는 아이의 모습이 비춰지고한다. 부모에게 있어 상처를 되물려주는 것 만큼 아픈 것은 없을 것이다. 너를 정말 사랑하는데.. 네가 너무 나에게는 소중한데.. 그 걸 네가 온전히 느끼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속에서 또 죄책감이 휘몰아친다.


'아 지금 내가 불안하구나.. 불안하구나..'

이제는 그래도 마음이  어른이 되었기에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불안한 이유를 찾아 되짚어보면 내 불안은 사실 실체가 없는 마음에서 우러난 불안인 경우가 훨씬 많다.


나의 불안은 아마 아예 없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 불안으로 인해 내 삶을 내 인생을 '불행'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걸 충분한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아이의 마음의 뿌리가 '불안'이 되도록 살게 내버려둘 수가 없다.


그렇기에 다소 불안한 내 마음의 뿌리를 인정하고 내가 나의 마음을 돌보고 위로 하며 '괜찮다. 다 괜찮다.'하며 없는 힘이라도 쥐어짜내 본다.

 

불안은 마음은 좀 처럼 갉아먹고 주변의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급기야 나의 삶과 인생마져 집어 삼켜버린다. 그렇기에 불안에 내 삶을 내 인생을 내어주지 말자.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글귀가 나게 작은 위로를 건낸다.


"오늘도 너무 걱정이 과하시네요. 괜찮아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은 잘 해낼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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