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부부가 지켜야할 '경계선'은 어디까지일까?
이혼을 했다는건 그 어떤 권리도 책임도 내려놓는 일 일것이다
하지만 오랜시간을 살아온 만큼 많은 것들이 얽혀있고
살림살이건 육아건 집 관리건 도맡아 하던 나였기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리해줘야하는 상황이 간간히 생기곤 했다
아이에 관한 문제야 얼마든지 버선발로 나서서 함께할 수 있으니 그건 문제가 안됐다
문제가 된건 명의를 결국 양보하게된 그 집이였다
명의를 줬다는건 발생하는 그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진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집관리건 세입자관리건 해본적없는 상대는
막상 문제에 닥치자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했다
세입자 한명이 특히 속을 썩였는데
보증금도 없이 계약서도 쓰지않고 월세가 밀리고 가스,전세도 납부하지 않은채 잠수를 탄 것이다
알고보니 전남편과 아이가 사는 안채와 그 원룸의 도시가스 명의가 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본인에게 필요한 것들에 대한 명의는 이혼전부터 넘겨달라고 성화였던 사람이였다
그런데 나에게 손해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게 화가났다
그제서야 도시가스 명의를 모두 넘겼다
가스비 정산도 상대가 해야했기에 고객센터에 직접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잠시후 도시가스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본인이 사는 집의 가스명의는 이전받았지만 원룸은 명의변경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황당하기가 그지 없었다
뭐하는 짓이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내가 쓰레기같은 세입자를 구해놨으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였다
집주인이면서 같은 집에 사는 본인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나보고 알아서 해결하란 식으로 얘기했다
실로 어의가 없었다
앞으로 집에 어떤 문제가 생기든 내 탓으로 돌리는거 아닐까하는 두려운 마음도 생겼다
다행히 밀린 가스비가 많지는 않아 가스비를 정산한 후 이사처리를 해버렸다
집의 구조상 원룸안을 들어가지 않아도 가스를 차단시킬 수 있었다
가스를 차단해놓으면 원룸 세입자가 불편해서라도 연락이 올터였다
실제 얼마후에 원룸 세입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물론 나에게 연락이 왔다
세입자들은 언제나 그랬듯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나는 일일히 남편에게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알려줘야했다
본인이 필요한 일은 깔끔하게 정리해달라고 성화였던 사람이였다
난 무슨 요구이든 들어줬고 뭐든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뭐하는 행동인가 싶었다
서류정리되는 그날까지 그래도 법적으론 내 남편이라고 욕은 하지 않았던 나였다
헤어져도 아이의 아빠이기에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미친놈아니야?'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사실 그 말을 진작 들었어도 모지랄 사람이였다
그 사람의 잘못을 그 행동들을 일일히 나열하기 부끄러울 지경이다
와중에 그래도 비난의 말, 욕설은 하지 않았는데
이제 나도 참을만큼 참아서 폭발 직전의 상태가 된 것이다
원활한 이혼을 위해
이혼 이후 아이 만나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게
뭐든 협조하고 군소리 안했더니
그걸 또 만만하게 보고 함부러해되된다고 생각하는
상대의 태도에 진저리가 났다
"처리하고 정리할껀 제대로 깔끔하게 하자.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적당히 해라."
상대도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홧김'에 하는 말이 절대 아님을
양육비를 받아야한다는 아쉬움 하나가 남아있기도 했고
그간 살아온 경험의 바탕이 있었기에 상대는 나의 경고에 쫄아 잠시나마 온순해졌다
그래 사람이 변할리가 없다
살아온 시간동안도 내 그러지 않았는가
권리는 취하고 책임은 피하고
그가 자라온 환경자체가 그랬다
그렇기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였고
자기사람을 대하는데 매우 미성숙했던 것이다
이혼했다는건 '남남'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책임도 권리도 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본인이 필요한 순간만큼은 아직도 '착각'을 하는 듯 했다
생각해보면 내 잘못도 있다
나도 그간 살아온 습관처럼 모든걸 해결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안에는 혹시 아이를 만나는데 협조해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미 아이 만나는걸로 몇번이고 협박을 했던 사람이였다)
'그 어떤걸 들어줘서도 해줘서도 안되는구나.....'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 나도 놓쳤던 것이다
10년이 넘는 오랜시간이였으니
서로 상호작용하던 방식이 헤어졌다고 당장 바뀔리 없는 것이였다
나부터 바뀌어야했다
아니면 상대가 끊임없이 당연하게 본인의 책임을 내게 떠 넘길지도 몰랐다
"나는 이제 상관도 없는 일이고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 해라."
그 말에 그는 매우 당황스러워 했고 한편으로 화가 난 듯도 보였다
하지만 그런걸로 화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있는 듯 했다
알고 보면 그는 스스로 감당도 책임도 질 수 없는 것들에 욕심만 내었던 것이다
이제는 나도 잘못되든가 말든가 눈감고 귀닫고 관심을 끊어야 할 것이다
'저러면 안되는데...'하며 나도 모르게 움찔하는 순간들이 있지만
두 주먹을 쥐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이제 정신차려'하며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오직 하나, 아이에 관한 문제 만큼은 외면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딱히 내 말을 듣는 인간도 아니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짜피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의 애를 써봤자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서류 정리가 끝나고도 이래 저래 치우지며 지긋 지긋한 일을 겪고 나자
그제서야 나도 상대에 대한 모든 끈을 끊고 내려놓게 되는 것 같았다
후련했다
시원했다
자유로웠다
'아내'로써는 이혼을 하길 너무 잘 했다고
'여자'로써는 이혼을 하길 너무 잘했다고
상대의 못남은 부족함은
속 좁은 그 모든 행동과 미숙한 마음들이
이별 이후에는 오히려 감사하게된다
그 하나의 미련도 없다
한 줌의 후회도 없다
그렇게 조금씩 더 진정 '남'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