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연결고리
서류정리만 끝나면 끝일줄만 알았다
적어도 이혼에서 발생하는 관계적인 고통은...
아이 양육권을 상대가 가지고 있었고
아이를 만나야하는 나는 약자였다
상대는 그것을 권리로 생각했고
부탁이든 조율이든 해야하는 상황이 되면
이때다 하고 기다린듯 나를 또 괴롭혀왔다
'이래서 아이를 자기가 키운다고 했구나...'
평소에 관심은 없는 것 같아도 자식에 대한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
그래서 아이를 자기가 키운다고 했을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귀한'이유만은 아니였다
헤어져도 내 우위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
그것이 아이였던 것이다
TV에서 이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아이를 만나지 않는 엄마들의 사연을 접하곤 한다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을 안보고 사는 저들의 마음과 생각은 무엇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난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애가 안보고 싶은게 아니였구나...'
상대를 내 남은 삶에서 완전히 끊어버리려하니
어쩔수 없이 자식을 끊는 그런 사연이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헤어져도 이렇게 심적 고통을 계속 안겨준다면
어쩌면..아이를 보지 않을 그런 결심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마음의 고통이 내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 있었던 상태였다
서류가 정리될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살아남은 내가 대단할 정도였달까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던 고통이 또 다시 찾아오자
더는 견딜수가 없을 것 같았다
'부부'로써는 끝나지만 '부모'로써는 계속 된다
아이에 관한 의논이든 고민이든 뭐든 좋으니 언제든지 얘기하고
'부모'로써는 부족함 없이 최선을 다해보자
내가 상대에게 했던 말이였다
내 아이는 발달이 늦어 한때는 특수교육대상자였다
다소 일반적이진 않았고 마음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더 심혈을 기울여야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 두고 이혼을 하게 되었으니
애를 썼던 만큼 얼마나 눈이 밟혔겠는가
올해 중학교 입학하는 아이였다
생에 첫 교복을 내 손으로 입히지 못한 것이 평생의 후회로 남을 것 같았다
아들의 교복입은 모습을 보내준 사진으로만 봐야했다
교복입은 모습을 실제로는 한번도 보지도 못했다
그 사실이 사무치게 아팠다
엄마의 마음이란 그랬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해주지 못하는 그런 아픔이 있는 것이였다
면접교섭권은 2주에 한번 일요일 5시간만 허락되어있었다
아이 만나는것 만큼은 언제든 만나는 것에 대해 상대도 동의했었던 부분이였다
그래서 분가를 해도 아이가 학교에서 도보로 올 수 있는 집을 구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도 말이다
내가 선임했던 변호사는 면접교섭권 시간이 최소한의 시간도 모르는 수준의 시간이라고
상대 변호사가 이렇게 쓰도록 내버둔 자체가 직무유기라고 했다
물론 면접교섭권도 다시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이였다
상대 변호사가 보낸 답변서가 너무 수준 이하였고
싸울 의지 조차도 꺾어버린 상황이였다
빨리 끝내기위해
큰 문제만 없다면 상대의 요구를 거의 맞춰서 진행하게 되었고
면접교섭권 또한 그랬다
그런걸 조율하는데 시간을 또 보낼 수가 없었달까
막상 이혼하고 나니 상대가 왜 면접교섭권을 최초한으로 했는지 그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아이를 만나기위해 내가 아쉬운 소리할 상황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내 우위에 있다고 느낄테니...
면접교섭권 외의 시간에 만나야 하거나
면접교섭권인 날에 일이 생겨 일정을 조율해야하는 일은 끊임 없이 생겼고
그때마다 부탁을 해야하는 난 '을'의 입장이였다
나는 낮은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고
아이를 원활하게 만나기 위해서는 상대의 '비위'를 맞춰줘야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볼 수 있다
괜찮다. 비위를 맞춰주는 정도는
하지만 아직 분노에 휩싸여있는 상대가
날 의도적으로 말도 안되게 마음의 고통을 주는건 다른 문제였다
그 분노가 얼마나 갈지 예측도 되지 않았다
워낙 감정적인 사람이였고
하루에도 몇번씩 감정이 널을 뛰는 사람이였기에..
개인적으로 뭔가 안풀리는 날에도 그 감정을 내 탓으로 돌리며 쏟아낼 사람이였다
그사람의 감정 쓰레기를 더 받아내기 싫어 빠르게 진행한 이혼이였는데.....
본인이 필요한 순간은 아직 '마누라'인듯 행동했고
필요없는 순간은 전혀 모르는 남보다 더 못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게 그 사람의 인격이였고 수준이였다
고통속에서 끊임없이 마음속에 되내이고 되새겼다
'이런 사람이랑 헤어지길 정말 잘한 거라고'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의 손길은 더욱 필요없게 되겠지만
군대를 간다거나 결혼을 하게 되는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
부모의 자리가 필요한 순간들에
내가 있어줄 수 없을 수도 없다는 생각에 슬픔이 쏟아져내렸다
이혼에 있어 오로지 슬픈 자리는 '엄마'의 자리였다
후회되는 자리도 되돌리고 싶은 자리도 오직 '엄마'의 자리였다
'부부'로써 끝내고 싶은 거지 '엄마'의 자리를 빼앗기고 싶었던게 아니니까
하지만 이혼이란 결혼만큼이나 '현실'이였고 잔인했다
자식이 있기에 상대는 완전히 끊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아이가 크고 성인이 되면 어느정도까지는 단절이 되긴 하겠지만
아이의 눈과 입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는 전달될지도 모른다
내가 눈을 감는 그날까지 '엄마'임이 변하지 않듯
죽는 그날까지 같은 자식을 둔 '부부'로써는 끊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서 뗴어내기 위해 끊어내기 위해 이혼을 하지만
자식이 있으면 그 이별은 온전하지 못하다
그렇기에 더 아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부모'의 자리는 지켜내야 하는 것을
그것이 아무 잘못없이 가장 아플 내 아이에 대한 책임이자 도리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