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정의되는 관계들
'어떻게 불러야할까?'
이혼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같이 사는 남편을 '해주니'라 부르곤했었다
그 호칭도 몇달 썼다고 익숙해지고 입에 붙었다
이제는 '헤어질 준비'가 아닌 '헤어진'사람이지만
새로운 호칭을 만들기도 귀찮았고 '전남편'보다야 말하기도 듣기도 좋았기에 계속 쓰게 되었다
막상 전남편을 직접 불러야할 호칭이 참 애매했다
굳이 호칭을 안붙이려해도 아주 안쓸 수는 없었다
'오빠'란 말은 싫었다
내게는 익숙하지 않아서 입에 붙지도 않기도했지만
그 말은 왠지 '이성'을 의미하는 말 같기도 하고 다정하게 느껴져서 싫었다
'아저씨'라 부르것도 아닌 것 같고..
물론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 마치 'AI'가 쓴 듯한 딱딱한 문체를 보냈으므로
정도 없게 느껴지고 생판 남을 호칭하는 '아저씨'가 딱 맞았을지도 모른다
(본인이 필요할 때는 또 평상시 말투를 쓰곤 했다)
상대의 행동에 따라 내 생각과 행동을 결정짓는 성격의 내가 아니였다
본인이야 그러든 말든 난 내 마음에 편하거나 납득이 되게 행동했었다
그런 성격이니 그 사람과 14년 가까이를 살 수 있었다
'그냥 이름을 부르자.'
성까지 붙여서 부르면 왠지 정없게 느껴진다는 국룰(?)이 있기도 했고
이름석자에 '000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익숙한 사람이지만 낯선 호칭을 쓴다
평소처럼 말하기도 어색하고 너무 남처럼 말하는 것도 싫어서
그냥 그 상황과 상대의 분위기에 맞춰 대화했다
헤어져도 결국 맞춰야하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아이를 만나야 하는 '을'의 입장이였던 것도 있지만
맞춰온 시간이 길었기에 나도 모르게 그런것도 있었다
그와 헤어졌는데
그의 가족과 모두 남이 되었다
'이혼'얘기가 나오고 서류가 정리될때까지 약 100일의 시간이 걸렸다
양쪽 가족 그 누구도 둘의 이혼에 간섭하거나 첨언하거나 할 수 없었다
내가 못 살겠다고 했으면 그의 가족들은 날 설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이 나와 못 살겠다고 한 상황이라
그의 가족들은 나에게 전화 한통도 없었다
솔직히 그것이 조금은 섭섭했다
그의 가족은 애정이 넘치고 서로를 위하며
때로는 가족을 위해 손해를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가족인 '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뿐
그와 남이 되는 순간 나에게는 당연히 해당되지 않은 이야기였다
진짜 가족이라 생각했던 그 긴 시간이 참 허무하고 허망했다
아들을 만나면 일상 대화하듯 그 가족의 이야기를 하곤했다
일부러 하지도 않았고 일부러 안하지도 않았다
어버이날에 가족끼리 다 같이 모였었냐고 물었고
고모의 첫째 딸이 올해 대학 입학했을 근황을 물었다
일상생활에 원래도 대화할만한 얘기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건냈다
익숙한 얘기이지만 '남'이라고 생각하고 건내는 말은 사실 좀 낯설었다
"아들. 엄마랑은 남이 되었지만 너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변함없고 온전하니
항상 그 사랑에 감사하고 살아 알았지?"
그 말은 진심이였다
그 말은 오로지 내 아이를 위해 한 말이였다
나는 내 아이가 그의 가족들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기 원하지 않았다
(사실을 안다면 그러고도 남을 상황이였다)
나와는 남이지만
내 아이의 할아버지,할머지,고모,삼촌..들이라 생각하면 그리 밉지도 않았다
내 아이가 소중하기에 그냥 그들도 내 아이에게 소중한 가족들이라 생각. 딱 그것이였다
엄마가 얼마전 무거운 케리어 하나를 2층 가파른 계단에서 내리셔야해서 나를 부르신 일이 있었다
아마 2층에 사는분이 세입자고 엄마나이대의 아주머니가 살고 계셨으면
분명 도와줬을 남편이였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 엄마는 제외가 되었다
물론 부탁을 하면 같은 집에 사니 도와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단순한 부탁이라도 헤어진 사위에게 말하는건
엄마로써 자존심상할 일이였을 것이다
그 일을 겪고나니 조금은 받아들여졌다
전 남편이 남보다 더 못한 사람으로 나를 대할 때
참 한편으론 어의도 없고 기분이 나빴는데
'남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되는게 맞구나'하고 이해가 됐달까
결혼이 두 사람의 결혼이 아니 가족간의 결합이라 얘기하듯
이혼도 그런 것이였다
분명 두 사람이 헤어졌는데
많은 사람과 이별한다
그 모든 이별이 아프겠지만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아이와 떨어져야 하는
'엄마로써의 이별'이 가장 아팠다
이혼으로 이별하는 모든 사람은 나와 '남'인 사람이지만
유일하게 '남'이 아닌 존재가 아이였다
그 누구보다 긴밀하고 가깝고 부대끼며 지냈을 사람이였다
모든 이별이 받아들여지고 익숙해지겠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을 슬픔과 아픔과 허망함이
아이의 빈자리 일 것이다
그 누가 알겠는가
내 자식을 매일 보지 않는 고통을
그래도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래도 살아있지 않는가
그러니 또 만날 수 있지 않은가
자식의 먼저 하늘로 보냈을
부모들의 상처가 더 크다고
내 아픔이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만날 수 있음을 안을 수 있음을 감사해야하는 것도 사실이기에
아이에게 나 역시도 죽을 그날까지 '엄마'이겠지만
매일을 함께 할 수는 없는 그런 엄마가 되었다
나는 분명 그와 헤어진 것인데
감당할 수 없는 이별을 겪는다
마흔넷 나이까지 살면 많은 이별을 이미 겪었다
아빠가 돌아가신지도 벌써 만 4년이 되던해였다
'시간이 약'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겪어보았다
하지만 지금 아픈 것도
'이혼'에 대한 현타가 밀려오는 것도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쏟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아직은 익숙해질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시간은 빠른 것 같은데
고통은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어서 빨리 지나가라고 재촉하고 싶으면서도
이상하게도 두렵기도 한 시간들이다
내 모든 것이 낯설다
내 삶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달라져버렸다
가끔은 그래서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이 것은 현실이다
내가 온전히 혼자가 된 것은
어서 익숙해지고 싶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아직은 낯선,
나의 삶, 나의 아픔, 나의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