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정신이 번쩍하고 들더라
생각해보니 나..다시 만난 너에 대해 별로 아는게 없더라고
그동안 내안에 쌓여있는 얘기들 다 쏟아내느라
솔직히 의식도 못 하고 있었거든?
너에대해서는 전혀 묻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물론 오랜 시간을 건너 만났으니
서로의 가벼운 근황같은건 얘기하긴 했지만
그 외에는 전혀 아는게 없더라고
난 이미 너에게 알 필요없는 얘기까지 다 쏟아냈는데 말이야
아마 이제서야 조금 정신이 들기 시작하는 거겠지?
폭풍우처럼 몰아치던 일들이 어쨌든 드디어 끝이 보이고
너와 마주 앉아 많이 울기도 하면서 내 얘기를 그토록 쏟아냈으니
이제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거라
까놓고 말해서 내 상황이 너무 안좋을땐 자식도 눈에 안들어오드라고...
넌 어떻게 그동안 그렇게 내 얘기를 들어주기만 할 수 있었나 싶어 감격스러우면서도
나는 무슨 신뢰로 너에게 내 얘기를 다 했을까
아무리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였다해도 지금의 너는 잘 모를 수도 있는데
그 누구라도 붙들고 울면서 얘기하고 싶던 내 마음이
생각치도 않게 너를 만나 덜컥 문이 열려버려서 나도 모르게 쏟아져나온걸까
그 긴 세월을 건너 다시 만나 기껏 보여주는 모습이란게 이런거라니
이제서야 그런 내 모습이 너무 못나고 부끄러워서 못 견디는 나에게
'그건도 네 모습이지. 뭐가 어때서'라고 말해주던 너
그래 너를 만났을 그때도 너는 그런 사람이였어
그냥 그대로를 인정할줄 아는 사람
그때는 그게 좀 이상하고 때론 불안하게 느껴졌거든
뭐든 '그럴수도있지'하는 네게 '내가 이렇게까지 해도 괜찮다고 할까?'하는
어린 마음에 그런 오기가 있었던 것 같아
분명 '절대안돼'라고 말해줄만도 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런 순간에도 '그럴수도 있지'하고 말하는 네가
날 덜 사랑해서 그런건 아닐까 생각하곤 했었어
그런 허용의 스펙트럼이 꼭 나에게만 적용되는건 아닐꺼라고
네 자신에게도 그렇게 '괜찮다'고 하는 범위가 넓을꺼라고
그런 불안이 널 만나는 동안 계속 되었고
그게 서로를 지치게 하고 마음을 갉아먹었던게 아닐까 생각해
내 후회는 내 불안들로 인해 보였던 미숙한 모습들이였던 것 같아
15년을 지나 40대를 넘은 지금의 나이가 되서야
너는 그냥 항상 그대로 어떤 편견도 판단도 없이 봐주는 사람이였다는 생각이 드는거라
지금처럼 조금이라도 성숙한 모습으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했어
난 사실 뒤돌아보는 성격이 아니고
누굴 만나더라도 내 최선을 다해서 끝나고도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였거든
유일하게 후회되는게 너라는 사람이였어
그래서 잊을만 하다가도 드문 드문 널 떠올리며 그리워 한거지
성숙한 모습으로 온전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을 한다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해봤던 것 같애
그런 너를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내가 이렇게 엉망진창이라니
사실 내가 조금 달라졌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살았던 모습과 다르게 행동한다는 이유로
10년넘게같이 산 사람도 못 살겠다고 그렇게 이혼을 당했단 말이야
그런데 넌 왜 가장 밑바닥의 내 모습을 보여줘도 '그럴수도 있지'하고 하는 걸까
한편으로 그녀는 생각했다
시간은 모든것을 '미화'시킨다
그렇기에 그와 보냈던 과거의 시간들이 다 좋게만 느껴지는거라고
10년을 같이 산 사람이 너무 엉망진창인 사람이라
상대가 조금만 괜찮아도 그녀 스스로가 느끼기엔 크게 다가왔었다
(실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직장 동료,선배들이 사소한 것에도 멋져보였으니까)
더욱이나 자신을 '여자'로 만드는 그였기에 더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뿐이라고
그녀는 이제껏 겪었던것과 너무 이질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다
게다가 상황적으로나 타이밍적으로나 너무 기가막혔다
그 모든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지금 하필 만난게 그리워했던 그였던 것이다
처음엔 그것이 그녀에게 일어난 '기적'같았고
어쩌면 드디어 그녀의 삶에 온 '선물'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현실과 이성의 끈을 잡아 갈수록
사실은 그가 단지 또 한번 인생에 그져 스쳐가는 사람일뿐이라 생각이 드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