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비밀일기 12편
꽃이 어느 날 말했다.
“내 꿀을 취하려면… 그만큼의 각오도 있었어야지.”
꿀벌은 당황했다.
꽃이 그동안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요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꿀벌은
“나는 꿀만 취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꿀벌의 머릿속엔
그 꽃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깊은 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꽃은 더 이상 예전처럼 활짝 열어주질 않았다
언제나 포근히 안아주던 꽃잎마져
“이젠 그러지 마”라며 서늘하게 손사래를 쳤다
꿀벌은 당혹스러웠다.
“갑자기 왜 이래…?”
하지만 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는 싫어.
이런 식이면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해.”
그런데 사실 꽃 또한 꿀벌의 그 온기를 잊지 못했다.
힘껏 닫아버리고 싶어도
꿀벌이 조금만 힘을 주면
다시 열려버리는 자신이 미웠다
꿀벌은 끝내 원하는 것을 얻으니
문제의식을 느낄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꽃만 아픈 채로 남이있을 뿐
뿌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꽃은
찾아오는 꿀벌을 막을 힘이 없었다
그 무력함 속에서 울었다
잃기 싫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되는 것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어쩌면 이제 '다음장'을 넘기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페이지를 넘어가지 못하게 꼭 누르고 있는 존재..
그 존재는 내 공간에서 머물고
내 시간, 마음, 몸을 앗아간다
하지만 결국은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버린다
내 삶에 분명히 차지하고 있는데
내 인생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이다
그의 마음과 몸 시간을 소유하지만
우리는 서로 어떠한 관계에도 책임에도 묶여있지 않다
이게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이제 설명하기도 귀찮아진다
내가 충분히 혼란스러울만 하지 않나...
네가 준 '온기'만 생각하면
주어진 내 현실을 견녀낼 수 있는 힘이되었다
마음과 몸이 깊어지는데 이름 없는 관계라는게
나에게 끊임없는 고통을 준다
이도 저도 아닌 관계로 시간만 흐르는데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끊어내지지도 않는데 맺어지지도 못하는 관계라니
세상에 또 이런 관계가 존재하긴 할까...?
세상에 표현하지 못할 수 많은 관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우리 같은 사연이 쉽지 만은 않을 것 같다
특별하게 느껴져서 더 놓지 못하는 것일까
특별하다는 착각일까
이젠.. 솔직히 모르겠다
너를 끊어보려 해도
네 보고싶다는 한마디에 무너져 버리고
만나서 얘기하자며 내 집으로 오는 널
나는 막을 수가 없었다
내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관계라는게 허망했다
이혼도 그랬다
나 혼자 의지로 지킬 수 있는 가정이 아니였다
그 허망하고 허탈한 무기력한 감정이 너를 통해 이어진다는게 싫었다
분명히 전혀 다른 사건과 사람인데도
내 존재를 느끼고 깨워주게 하며
내 속에 숨겨있던 욕망과 갈망을 일깨워 주는 사람
하지만 끝없이 허무하며 불안을 지속시키는 사람이라니
이 얼마나 이중성을 가진 관계란 말인가
'밝은면'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너무 밝아서 그림자가 더 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난 그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다
외면 했을때 언젠가 그 그림자에게 잠식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